제주어, 어디까지 알고있수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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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0월 9일은 한글 창제를 기념하고 한글의 우수성을 기리는 한글날이다. 한글은 시간이 흐르면서 지금의 우리가 알고 있는 형태로 변화해왔고, 지역마다 고유 특색을 가진 방언으로 분화됐다. 그중에서도 제주 방언은 표준어나 다른 방언에 비해 형태 면에서 큰 차이가 있어 유네스코에 의해 ‘제주어’로 분류될 정도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제주어가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원형과 가장 많이 닮아있다.

바다 위 고립된 역사 ‘제주어’
제주어는 다른 방언과는 달리 고어(古語)가 많이 보존되어 있다. 특히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문자인 아래아(•), 반치음(∆), 순경음 비읍(ㅸ) 등의 표기 방식이 아직도 남아있다. 이 문자들은 발음 또한 변형되지 않은 채로 사용된다. 중세 국어에서 아래아(•)는 ‘아’와 ‘오’의 중간 형태로 발음됐지만 현대 국어에서는 ‘아’로 합쳐졌다. 이런 아래아(•)가 제주어에서는 여전히 아래아(•)는 ‘아’와 ‘오’의 중간 형태로 발음된다. ‘ㅎㆍㄴ저옵서예’가 ‘한저옵서예’가 아닌 ‘혼저옵서예’에 가깝게 발음되는 것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제주어에는 중세국어에서 사용하던 어휘가 많이 남아 있어 한국어의 원형과 한글의 제작원리를 보여준다. 중세국어는 훈민정음이 창제된 15세기 중반에서 16세기 후반까지의 한국어로 현대어에 없는 표기와 발음의 단어들이 있다. ‘일흠’은 ‘이름’을 의미하는 제주어로, 중세국어 단계의 단어 형태가 아직까지 남아있는 것이다. 또한 중세국어 ‘딤ㅊㆍㅣ’는 ‘짐치’에서 ‘김치’로 변화했는데 아직까지 제주에서는 중간단계인 ‘짐치’를 사용하고 있다. 이런 특징 때문에 국어학자나 언어학자들은 제주어의 가치를 주목하고 있다.

제주어는 언어학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제주 사람들의 문화와 역사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보존 가치가 매우 높다. 제주어는 바다라는 주변 환경과 관련된 문화적 특징을 갖고 있다. 대표적 예로 해녀를 뜻하는 ‘잠녀’, 물속 채취 작업을 뜻하는 ‘물질’, 해녀의 작업 도구 ‘테왁’, 해녀가 채취한 해산물을 담아 두는 그물로 된 그릇을 의미하는 ‘망사리’ 등의 어휘가 있다.

역사적 배경 역시 제주어의 독특한 특징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조선 시대, 성종에서 인조에 이르는 약 150년간 기근 등으로 인해 제주 사람들이 제주도를 떠나 인구가 급격히 감소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조정에서는 국법으로 폐쇄적인 생활을 강요하는 조치를 취하게 되는데 이것이 출륙금지령(1629-1830)이다. 거의 200년간 지속된 금지령으로 인해 제주 사람들은 타지방과 연결이 단절되어 폐쇄된 생활을 영위해야만 했다. 한반도와는 분리된 제주의 지리적 환경이 제주어 형성의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한다면, 출륙금지령으로 인한 인위적 단절은 제주어의 독자성을 촉진한 역사적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왜 ‘제주어’인가?
우리는 다른 지역 방언을 전라도 사투리, 경상도 사투리와 같이 ‘사투리’라고 부르기 때문에 제주 방언을 ‘제주도 사투리’가 아닌 ‘제주어’로 부르는 것이 익숙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최근 학술계에선 제주어를 한국어족에 속한 표준어와 별개의 언어로 보고 있다.

언어학적 관점으로 봤을 때, 방언과 언어의 구별은 상호의사소통의 가능 여부에 초점을 두고 있다. 표준어를 사용하는 사람과 방언을 사용하는 사람 간의 의사소통은 어휘나 억양 면에서 일부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능하다. 하지만 완전한 제주어를 사용하는 사람의 경우에는 표준어를 사용하는 사람과의 소통이 불가능한 수준이다. 그 때문에 현재 유네스코와 제주도 의회, 국제표준화기구에서는 ‘제주도 방언’이 아닌 ‘제주어’로 분류를 하고 있다.

하지만 학계의 의견과 달리, 일상에서는 제주어를 별개의 언어로 보지 않고 한국어의 방언으로 보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여기에는 통일을 중시하는 문화가 짙게 깔려있다. 한국어와 제주어를 별개의 언어로 구분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제주도가 한국과 분리된 영역이라는 느낌을 준다. 이는 정치적 단합을 중시하는 우리나라에서는 꺼려진다.

이러한 이유로 아직 국립국어원은 ‘제주어’에 대해 일부 학회의 주장이라고 여기며 ‘제주어’를 ‘제주도 방언’으로 보고 있다. 학술적으로는 제주어가 통용되는 추세이나, 일상에선 아직 제주 방언, 제주 사투리로 부르기 때문에, ‘제주어’라는 단어에 대한 논쟁은 계속되고 있다.

멸종 위기의 ‘제주어’
현재 제주어는 유네스코에 의해 소멸 위기의 언어 5단계 중 4단계인 ‘아주 심각하게 위기에 처한 언어(critically endangered language)’로 분류된다. 제주도민 중 30대 이하 연령층에선 반말 어미와 일부 특정 어휘를 제외하고는 제주어가 거의 전멸한 상태이며, 외부인 유입이 많은 지역에서는 대부분 표준어를 사용하고 있다.

타지방의 방언과 달리 제주어가 소멸 직전의 상태에 이르게 된 데에는 제주 4.3 사건이라는 역사적 배경이 존재한다. 다른 지역들은 문화와 교통의 발달, 표준어의 보급 등의 외부적 요인으로 인해 지역 방언이 점차 바뀌어 왔다. 하지만 제주도는 오랜 시간 인위적으로 고립됐고 탄압받았다. 제주도민들은 4.3 사건 이후 차별의 시선을 이겨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스스로 제주 방언의 사용을 줄이기 시작했다.

이와 더불어 1970년대 들어 표준어를 사용하도록 지도하는 교육 표준화 정책이 시행되면서 제주어 사용이 눈에 띄게 줄었다. 그래서 현재 원형이 남아있는 제주어는 8~90대의 노년층에게서나 들을 수 있다.

이렇게 사라져가는 제주어를 보존하기 위해 제주도는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현재 제주도는 유네스코 언어 정책에 맞춰 제주어를 보전하고 활용하기 위해 제주어발전위원회를 구성했다. 제주어발전위원회는 제주어 활용 실태를 조사하고 관련 예술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또, 제주어연구소를 설립해 제주어에 관한 조사와 연구를 진행하고 제주어 교실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제주어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고 있다.

한 언어의 소멸은 단순히 언어 형태만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 언어 속에 담겨있는 문화와 역사가 함께 사라지는 것이다. 한글 창제 당시의 훈민정음 형태와 제주의 역사·문화를 간직한 제주어가 소멸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 개개인이 관심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삽화 = 오주영 기자
삽화 = 오주영 기자

이건우 기자 rjsdn4497@gist.ac.kr
정희찬 기자 hchwjd2017@gi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