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 기록적인 폭염이 한국을 뒤흔들었다. 전력 사용량은 역대 최고치를 연일 경신했고 온열질환자도 속출했다. 이처럼 이례적인 올해 폭염의 주 원인으로는 고기압이 정체돼 더운 공기를 지면에 가두는 ‘열돔 현상’이 지목됐다.
전 세계를 강타한 유례없는 폭염 현상
한낮의 최고기온이 33도 이상인 날을 폭염일이라고 하는데 올해 6~8월 사이에 전국 평균 폭염일수는 31.3일로 역대 최고 기록을 세웠다. 일 최고기온이 35도 이상인 상태가 이틀 이상 지속될 때 발효되는 폭염경보는 한 달 동안 이어지기도 했다. 특히 지난 8월 1일에는 우리나라 기상 관측 사상 최악의 폭염을 기록했다. 8월 1일 서울 최고 기온은 39.6도였는데 이는 서울의 근대 기상 관측이 시작된 이래 111년 만에 가장 높은 기온이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폭염이 관측됐다. 일본, 북미지역, 심지어 북극권인 북유럽도 폭염에 시달렸다. 북유럽 국가의 예년 7~8월 최고기온은 20도 안팎으로 여름에도 선선하다. 하지만 올해는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일부 지역의 기온이 32도를 넘어서며 최고기온 기록을 연일 갈아치웠다.
원인은 ‘열돔 현상’
과학자들은 올해 폭염의 가장 큰 원인으로 열돔 현상을 들었다. 열돔 현상이란 지상 5~7km 높이의 대기권에서 발달한 고기압이 정체돼 뜨거운 공기를 지면에 가두는 현상이다. 땅에서 방출된 열로 데워진 뜨거운 공기가 마치 돔에 갇힌 듯 지면을 둘러싸기 때문에 열돔이라고 이름 붙여졌다. 한 번 열돔이 발달하면 고기압이 구름의 형성을 막기 때문에 일사량이 늘어나 대기의 온도는 더욱 상승한다.
우리나라에는 티베트 고기압과 북태평양 고기압이 겹쳐진 열돔이 만들어졌다. 티베트 고기압은 인도 북쪽에 있는 티베트에서 발달하는데 크게 확장할 경우 우리나라까지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올해는 지구온난화로 인해 해발고도가 높은 티베트 고원의 눈이 녹아 지표면이 햇빛에 직접 노출됐다. 이로 인해 이 지역이 평년보다 일찍 가열돼 티베트 고기압이 강하게 발달했다. 한반도 부근으로 확장된 이 고기압에 의해 우리나라 대류권 상층으로 뜨거운 공기가 유입됐다.
대류권 중하층에는 북태평양 고기압이 확장해 덥고 습한 공기가 유입됐다. 올해 서태평양의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높게 유지돼 필리핀해 부근에서 상승기류가 활발해졌다. 이 기류가 우리나라 남쪽 해상에서 하강기류로 바뀌면서 북태평양 고기압이 강화됐다. 이렇게 상층에는 티베트 고기압으로 하층에는 북태평양 고기압으로 인한 뜨거운 공기가 모여 열돔을 형성했다.
두 고기압의 영향으로 형성된 열돔은 제트기류의 약화로 인해 우리나라 위에서 정체됐다. 대류권 상부나 성층권에 있는 좁고 빠른 바람대인 제트기류는 열돔과 같이 정체된 대기를 이동시킬 수 있다. 그러나 올해는 ‘양의 북극진동’ 현상이 일어나 중위도의 제트기류를 약화시켰다. 북극의 기온이 낮아지면 북극의 상층 대기압에 비해 중위도 지방의 상층 대기압이 더 높아지게 되는데 이 현상을 ‘양의 북극진동’이라고 한다. 바람은 기압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분다. 양의 북극진동 현상으로 인해 기압이 낮은 북극의 찬 공기가 중위도 지방으로 이동할 수 없었고 제트기류는 약해졌다. 결국 올해 여름 발달한 열돔은 높은 온도를 유지한 채 우리나라에 머물렀다.
폭염은 자연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현상이다. 하지만 자연적인 폭염은 더운 날씨가 며칠 지속했다가 완화되는 정도에 그친다. 지구환경공학부 윤진호 교수는 “올여름 폭염은 자연적인 현상으로만 설명하기에는 너무나 특이했다”고 설명했다. 티베트 고기압은 지구 온난화로 인해 강하게 발달했고, 제트기류의 약화 또한 지구온난화와 관련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결국 올해 폭염은 자연적 현상에 지구온난화라는 인위적 요인이 더해져 만들어진 것이다.
앞으로도 더운 여름 이어질 것,
이상기후 등 근본적 원인 해결 절실
과학자들은 이러한 폭염이 향후 계속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윤진호 교수는 “내년 여름이 올여름보다 더 더울지 덜 더울지는 지금 알 수 없다. 하지만 앞으로 10년 동안 올해처럼 더운 여름을 훨씬 더 자주 겪게 되리라는 것은 상당히 확실하다”고 말했다.
이상기후를 하루아침에 없앨 수는 없다. 하지만 이상기후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법 중에는 당장 실행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 예를 들어 정확한 예보, 경보 시스템을 개발하고 그에 기반한 체계적인 대응을 마련할 수 있다. 폭염의 경우 아직 장기예보는 불가능하지만 최소 하루 혹은 이틀 전에는 예보할 수 있다. 이 예보를 바탕으로 폭염 발생 시 지자체, 단체, 사업장별로 마련한 대응책을 따르면 폭염으로 인한 인명피해를 줄일 수 있다. 또한 한반도에 닥칠 기후변화의 영향을 예측하고, 재해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기후적응 프로그램을 개발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가장 필수적인 것은 지구온난화 등 이상기후의 근본적인 원인 해결이다. 이미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을 목표로 한 파리기후협정이 채택됐고 우리나라를 포함한 여러 국가에서 온실가스 저감 대책을 준비 중이다. 이러한 대책들이 실질적인 효과를 발휘할 수 있도록 사회 모든 부문과 우리의 일상생활에서의 통합적 노력이 필요하다.
서지희 기자 jiheeseo@gi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