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성’을 포기하면 될까?
이번 학기 지스트신문이 3회 발간되게 되어 4회로 예정한 ‘경제 이야기’도 3회로 줄이려고 합니다. 그래서 분배와 균형발전에 관한 원론적 이야기를 건너뛰고, 최근 이슈로 바로 들어가는 점에 독자의 양해를 구합니다.
올 1분기 실질 GDP 성장률이 전기 대비 –0.3%(전년 동기 대비는 1.8%)로 발표되자 보수 성향의 주요 언론들은 일제히 문재인 정부의 핵심경제정책인 ‘소주성’이 실패한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소주성’은 ‘소득주도성장’의 준말로서, 소득분배 개선을 통해 가계소비를 늘려 대외환경의 영향을 덜 받는 안정적인 성장을 뒷받침한다는 정책기조입니다. 그동안 수출대기업은 잘 나갔지만 가계소득 정체와 양극화로 내수(국내수요)가 부진했다는 판단에 기초한 것입니다. 현 정부가 ‘혁신적 포용국가’라는 비전을 제시하면서 창의적 혁신역량을 길러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드는 ‘혁신성장’을 함께 강조하고 있지만, 주로 부각되는 것은 소득주도성장입니다. 대선공약이었던 최저임금 대폭인상의 실행과 그 효과를 놓고 벌어진 논쟁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것을 보아도 그렇습니다.
소득주도성장론의 비판자들 중에는 기업 친화적인 정책이 펼쳐져야 경기가 활성화되고 경제성장이 잘 된다고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임금 인상이나 비정규직 축소에 반대하면서 기업에 대한 세금을 인하하고 각종 규제를 풀어 투자를 촉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박근혜 정부의 ‘줄푸세’(세금을 줄이고 규제를 풀고 법질서를 세운다) 공약도 이런 시각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대기업이 잘 나가도록 도와주면 떡고물이 중소기업이나 서민 등 아래쪽으로도 떨어질 것이라는 ‘낙수 효과’를 주장했는데, 역시 비슷한 관점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1990년대 후반부터 지난 20년 간 한국경제의 장기성장률(10년 이동평균)은 김영삼 정부 시절 6%, 김대중 정부 시절 5%, 노무현 정부 시절 4%, 이명박 정부 시절 3%, 박근혜 정부 시절 2%대로, 정권의 성향과 상관없이 체계적으로 하락해왔습니다. 경제성장론을 전공한 서울대 경제학부 김세직 교수는 이를 ‘5년 1%p 하락의 법칙’이라고 부르며, 그동안 장기성장률 추락의 근본원인을 극복하지 못하고 단기적인 경기부양책에만 의존해온 것을 비판한 바 있습니다.
김 교수의 진단에 따르면, 과거 1960년대부터 30여 년간 평균 7-8% 이상 고도성장하던 한국경제는 ‘내생적 성장’ 체제였습니다. 내생적 성장이란 교육을 통한 인적자본 축적과 투자를 통한 물적자본의 축적이 동시에 빠르게 이루어져 성장을 견인하는 것을 말합니다. 한국이 선진국을 추격하던 그 당시에 필요한 인적자본은 선진 기술과 지식, 제도 등을 빠르게 모방하는 능력이었는데, 이는 주입식 교육에 의해 효율적으로 길러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1990년대 들어 한국이 기술 프런티어에 접근하고, 중국과 아세안 등 저비용 생산이 가능한 새로운 추격자들이 나타나면서, 모방형 인적자본에 의존하던 성장전략이 한계에 부닥쳤습니다. 그 결과, 경제성장에서 인적자본의 역할은 급격히 약화되고 주로 물적자본의 투자에 의존하는 ‘신고전파 성장’ 체제로 전환했다는 것입니다. 경제성장이 물적자본 투자에만 의존하게 되면, 여러분이 경제학 수업에서 배운(배우게 될) ‘자본의 한계생산 체감 법칙’이 작동하여 성장률은 0% 수준까지 지속적으로 하락할 수 있습니다. 가령 모니터를 한 대 놓고 일할 때보다 여러 대 놓고 일할 때 업무처리량이 늘어날 수 있지만, 그걸 사용하는 사람의 역량이 그대로인 한, 모니터가 한 대 추가할 때마다 늘어나는 업무처리량의 증가분은 계속 줄어드는 것처럼 말입니다.
저도 이러한 진단에 동의합니다. 그래서 창의적 인적자본을 축적하여 경제성장의 체질을 바꾸지 않고, 가계소비 진작을 위해 임금만 올린다거나 기업투자 촉진을 위해 세금을 깎고 규제만 푸는 정책 모두에 치명적인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적자본 등 공급측면에 문제가 있는데, 혁신이 지지부진하고 경기부양만 하면 성장은 안 되고 물가만 상승하는 현상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낮은 임금, 저숙련 외국인력 도입, 물적자본 투입에 의존하는 요소투입형 성장전략은 성장에도 한계가 있지만 분배 악화를 방치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일까요? 지금처럼 경제성장의 체질을 바꾸지 못한 상황에서 거대한 해일처럼 밀려오는 초저출산, 급고령화의 도전 앞에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다음 칼럼에서 이야기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