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이전의 심리학자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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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곡진 인생을 통해
실험심리학에 씨앗을 뿌리다

역사를 보면 유독 험준한 인생의 골짜기를 지나며 인류에 큰 영향을 준 인물들이 있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구스타프 페히너(Gustav Fechner)가 바로 이런 인물의 범주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페히너는 1801년 독일 남부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다. 그는 20대 초반의 이른 나이에 의학 박사학위를 받지만 이 후, 물리학과 수학에 관심을 갖게 되어 30대 초반에 독일 라이프치히 대학 물리학과에서 정교수로 일하게 된다.

물리학자로서 각광받으며 탄탄대로를 달리던 그의 인생은 정신질환이라는 큰 암초를 만난다. 지금의 기준으로 볼 때 그는 심각한 불안 장애와 강박 장애에 해당하는 증상들로 심하게 고통 받았으며, 강의나 연구와 같은 교수로서의 일상적인 삶이 불가능한 지경에까지 이른다. 지난 호에서 소개한 메스머리즘을 비롯한 다양한 치료를 받아보지만 그의 병세는 계속 악화됐다. 이 와중에 잔상효과에 대한 연구를 하다 햇빛을 너무 많이 보는 바람에 빛 공포증까지 생겨 거의 시력을 잃게 된다. 약 3년 동안 검게 칠해진 방에서 빛도, 사람도, 어떤 외부의 자극과도 통제된 채 페히너는 지옥 같은 삶을 살게 된다.

하지만 기적적으로 그는 점점 나아지고 시력도 회복한다. 바로 이 때 페히너가 다시 보게 된 세상은 더 이상 예전의 세상이 아니었다. 새롭게 지각된 세상은 그에게 이전과 전혀 다른 지각적 경험을 불러일으킨다. 그가 다시 볼 수 있게 된 꽃은 더 이상 어제의 꽃이 아니었고, 하늘도 어제의 하늘이 아니었다.

각각의 물체가 발현하는 색상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했고, 마치 하나하나의 사물에 정신이 깃들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러한 경험은 페히너로 하여금 범신론적 사상을 갖게 했다. 또한 이러한 생각은 “물리적 세상에 대한 정신적 표상의 강도”를 수학적으로 연구하고자 하는 강한 동기가 되기도 하였다.

약 10여 년 동안 페히너는 자극을 제시하는 다양한 방법을 개발하고, 당시의 기준으로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모은다. 그는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범신론적 철학과 방대한 경험적 연구 결과가 잘 녹아든 『정신물리학의 요소』라는 책을 60세에 출판한다. 교수가 책 한 권 쓰는 것이 무슨 큰일이라도 되느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이 책은 다르다. 아직도 지각 심리학 교과서에는 페히너의 실험 방법들이 소개되고 있으며 160여 년이 지난 2019년 현재에도 많은 심리학자들은 페히너가 개발한 실험 절차를 이용하여 연구를 계속 하고 있다.

흔히들 심리학의 아버지라고 하면 빌헬름 분트나 윌리엄 제임스를 말한다. 후대의 심리학사가인 보링(Boring) 역시 페히너가 없었더라도 실험심리학은 비슷한 시기에 꽃을 피웠을 것이라 평가한다. 하지만 필자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정신장애와 신체적 질병이라는 역경을 극복하고 심리학이라는 학문의 탄생에 중요한 주춧돌을 놓은 페히너의 학문적 업적과 삶에 경의와 존경을 표하고 싶다.

<심리학 이전의 심리학자들> 시리즈를 마치며…
<지스트신문>에 3회에 걸쳐 심리학의 탄생에 영향을 준 세 명의 인물을 소개하였다. 시리즈를 마치며 이들 뿐만 아니라 지면 관계 상 소개하지 못한 수많은 철학자들, 의학자들, 그리고 생리학자들의 삶이 필자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이 학자들은 자신의 인생이 후대에 심리학이란 새로운 학문으로 탄생하는 마중물이 될 것이라 미처 생각치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묵묵히 자신의 학문 분야와 위치에서 연구를 통해 쏟아낸 이들의 열정은 시간이라는 함수를 통해 혁신과 창조로 거듭났다. 우리 GIST는 과연 후대에 어떤 혁신과 창조를 만들어 낼 지를 궁금해 하며, 그리고 기대하며 시리즈를 마친다.

최 원 일 교수 (기초교육학부, 심리학)
최 원 일 교수
(기초교육학부, 심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