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연 PD, “제3의 언어를 사용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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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에서 SBS 스페셜 <동일본대지진 1년 후, 봄은 아직 오지 않았다>를 제작하던 황성연 PD
후쿠시마에서 SBS 스페셜 를 제작하던 황성연 PD
후쿠시마에서 SBS 스페셜 <동일본대지진 1년 후, 봄은 아직 오지 않았다>를 제작하던 황성연 PD

9월 29일, 신재생에너지연구동 2층에 있는 황성연 PD의 사무실에 들어서자 각종 카메라 장비로 가득 찬 캐리어가 눈에 들어왔다. 황 PD가 GIST를 떠나는 날, 그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나는 방송 PD가 많이 배출된 일본 토호학원에서 방송예술학을 전공했다. 이후 MBC 예능PD로 이 일을 시작했다. SBS, KBS, EBS를 포함한 지상파 4사의 특집 다큐멘터리를 전부 해본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2019년 5월부터 전략홍보위원으로 자문 활동을 했다. 10월부터는 홍보팀에서 각종 영상 제작을 담당했다. 유튜브 학교에서 영상 강의를 하기도 했다. 원내 IPTV나 유튜브 채널 등에 나오는 영상 대부분을 직접 제작한다.

영상을 시작한 계기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매주 토요일마다 학교에서 방송반 활동을 하면서 일찍이 영상에 뜻을 뒀다. 그러다가 저녁 8시에 방영되는 MBC <인간시대>를 보면서 눈물을 많이 흘렸다. 결국 KBS <인간극장>을 하게 됐지만, 그 당시에는 <인간시대>의 PD를 하고 싶었다. 그만큼 ‘인간’에 관심이 많았다.

이후 영화감독을 많이 배출하는 토호학원으로 유학가서는 영화감독을 꿈꿨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의 감독으로 유명한 유키시다 감독이 2년 선배다. <미션>이라는 영화를 보고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영화를 만들겠다고 생각했다.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타이타닉> 제작진으로부터 조감독을 하지 않겠냐는 요청이 왔다. 그러나 비자가 나오지 않아 무산됐고 이후 MBC 프로덕션으로 들어갔다.

일하면서 보람을 느꼈을 때는?
2000년대 초부터 SBS에서 <물은 생명이다>라는 환경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면서 환경 문제에 관심을 두게 됐다. 인도로 단기 선교를 했을 때 식수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때 의료 봉사를 온 아내와 만나 결혼했다. 그때까지 역사나 휴먼 다큐멘터리를 오래 했는데 <물은 생명이다> 이후 환경 PD로 유명해졌다.

세계 물의 날 특집으로 <빗물의 가치>와 <2리터의 축복, 빗물>을 연출해서 서울대 한무영 교수와 빗물 식수화 시스템을 도입하는 데 이바지했을 때 큰 보람을 느꼈다. 그때를 계기로 서울시물순환시민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 주변에서 3년간 현장 기록을 한 후 SBS 스페셜 <동일본대지진 1년 후, 봄은 아직 오지 않았다>를 연출한 적이 있다. 지금까지 관련 활동에서 치고 빠지는 사례는 많았지만, 장기간 현장 기록은 유일하다. 후대에 역사 기록을 남기고 공익적인 일을 많이 했다는 점에서 보람을 느낀다.

후쿠시마에서 진부한 패러다임에 집착하면 안 된다는 것을 느꼈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 때 원자력 에너지의 문제가 제기됐다. 그런데도 당장 불편하지 않고 이미 인프라가 있으니까 문제가 있는 방식을 고집한 것이다. 한 마디로 과거에 집착하다가 사고가 터진 것이다. 우리는 항상 터진 다음에 바꾼다.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행동으로 옮겨야 하는데 그러지 않는다.

언어도 마찬가지다. 파워포인트가 진부하다는 것은 모두가 안다. 신문 보는 사람은 계속 줄고 있다. 더 함축적이고 직관적인 이미지, 영상 언어에 밀려 텍스트는 완전히 퇴화할 것이다. ‘우는 얼굴’ 이모티콘을 보내면 되는데 슬프다고 길게 타자할 이유가 없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그렇게 안 해도 되는데 왜 실험해야 하냐?”, “다른 학교에 성공적으로 정착하면 따라가자.” 남들이 다 바뀌고 나서 바꾸려고 하면 늦는다. 이제 영상이라는 언어에 투자해야 한다.

영상도 언어로 볼 수 있나?
역사상 전 세계를 장악한 첫 언어는 영어, 두 번째 언어는 프로그래밍 언어다. 제3의 언어는 영상이라고 생각한다. 전공할 때 영상은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종합 예술이라고 배웠다. 이제 영상은 예술을 뛰어넘은 것 같다. 영상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과는 상관이 없는 일상 그 자체다. 제3의 언어로서의 영상은 기존의 영상과 달리 쌍방소통, 다자간 소통이 가능하다. 시뮬레이션, 홀로그램 영상이 시도되는 등 기존의 틀이 지속해서 파괴되고 있다.

제3의 언어에 문법도 있고 문학이 있다. 세계를 장악한 언어인 만큼 영어, 프로그래밍 언어와 마찬가지로 필수이든 선택이든 학교에서 배워야 한다. 영상은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독학할 수 있는 부분이 있고 체계적으로 학습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 제작 기술을 배우는 것보다 영상이 언어라는 것을 배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

‘영상’이라고 하면 하찮게 생각하는 인식이 제3의 언어가 발전하는 것을 방해한다. 영상이 수도꼭지에서 물이 나오듯 너무 흔하니까 값싸다고 생각해 그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 영상을 존중하고 귀하게 생각하는 정서로 바뀌어야 한다. 영상이 어마어마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다 안다. 영어와 코딩에 투자하는 것만큼 투자해야 한다.

유튜브에 소비성이 강한 영상이 많은 것도 영상을 가볍게 생각하는 원인이다. 지금 만들어지는 많은 영상은 제대로 된 언어 소통이 아니다. 아직 아노미 상태인 것 같다. B급 정서 영상은 유행을 타기 때문에 오래가지 못한다. 사람은 질 좋은 영상을 찾기 마련이다.

반대로 영상이 어렵다 생각하는 것도 문제다. 흔히 영상을 전문분야라고 생각하는 데 아니다. 소통이고 일상이다. 높은 질의 영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해서 방송인처럼 하자는 것이 아니다. 기성 방송은 청년 세대의 새로운 정서와 영상 감각을 전혀 따라가지 못해 진부하다. 높은 질의 영상을 만들어내려면 영상의 기초, 역사부터 알아야 한다. 정보기술(IT)과 OTT(Over the Top), 코딩 등을 알고 제3의 언어를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기존 영상보다 기술적으로 진보할 뿐만 아니라 더 창의적이고 더 유익하며 스토리텔링을 추구하는 플랫폼이 제3의 언어다. 영상이 인공지능이나 홀로그램, 가전제품이나 자율주행차와 같은 과학을 만나고 있다. 지금의 틀을 완전히 깨야 한다. 심지어 영상이 2차원이라는 생각까지도. 영상 언어의 환경을 만드는 것은 과학자의 몫이다.

또한, 모든 곳이 극장이 되고 모든 것이 시놉시스로 바뀐다. 사람 한명 한명이 다 콘텐츠가 되고 일상이 정보나 휴먼 다큐멘터리, 예능이 되는 것이다. 혼자 힘으로 이런 플랫폼을 만들 수 없다. GIST를 시험대 삼아 시장과 세상을 주도하는 플랫폼을 만들 수 있다고 본다.

결국, 나도 기성세대라 새로운 감각을 따라가지 못해 제3의 언어를 완전히 설명할 수 없다. 새로운 시장을 이끌어가는 청년 세대가 답을 찾아가야 한다.

GIST를 떠나면서 하고 싶은 말은?
영상을 예술로 표현하는 시대는 지났다. 이제 제3의 언어는 과학이다. 영상과 과학이 만나는 접경지대인 GIST는 제3의 언어가 태동하고 발전하는 샘터라고 생각한다. GIST가 새 시대를 주도할 수 있다. 절호의 기회가 온 것이다. 구성원 누구나 제3의 언어를 사용할 수 있으면 다른 학교와 차별화할 수 있다.

자신이 관심 있는 과학 분야를 영상과 연결하는 작업, 즉 융합과 연결이 필요하다. 이런 측면에서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DMZ 같이 풍부한 영상 환경이지만 융합을 하고 열매를 맺기에는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 이곳에서는 아직도 종이 논문을 쓰고 있다. 앞으로 영상 과목을 만들어 꾸준히 학습할 수 있게 하고 누구나 쉽게 기자재를 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논문 발표도 제3의 언어로 해야 한다.

영상을 만드는 학생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GIST에서 제3의 언어를 터득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많은 청년이 독학으로 영상을 배워 파워포인트처럼 영상을 만든다. 또는 뮤직비디오처럼 너무 감각적인 영상을 만든다. 또한, 조회 수를 늘리려고 흥미 위주의 자극적인 영상을 만들기도 한다.

높은 질의 영상을 만들기 위해 영상을 체계적으로 알아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또한, 몇몇 학생만 선별해 지원하면 그들에게 영상은 ‘업’이 된다. 마지못해 만드는 영상은 제3의 언어가 아니다. 아르바이트로 영상을 만들면 틀에 맞춰 쉽게 제작하게 되고 이는 기존 영상과 다르지 않다. 언어는 쥐어짜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넘쳐흘러야 한다.

GIST를 떠나지만, 유튜브 크리에이터 학교에서 강의를 계속할 것이다. 서울에서 강의 활동을 할 것 같다. 앞으로는 물순환에 매진할 것이다. 지금까지는 기록자와 문제 제기자로 여겨진다. 지금부터는 제3의 언어를 같이 생각하고 조력하는 사람이 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