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물든 20대: 취업 준비 청년 수다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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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6월 6일 프로젝트 “PEOPLE-19”이 주최한 ‘취준 청년 수다회’의 내용을 바탕으로 재구성하였습니다.

청년 취업난이 심하다는 말,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테다. 이제 한국 사회에서는 ‘청년 취업=어렵다’라는 등식이 완전히 자리 잡은 듯하다.

2021년은 어떠한가? 코로나 팬데믹으로 경제 상황이 악화하자 또 한 번 청년 취업 시장에 한파가 불어 닥쳤다. 그전까지 청년들은 취업 준비기간이 길어지더라도 스펙을 키워 자신이 원하는 일자리에 진입하는 것을 합리적 선택으로 여겼다. 그러나 지금처럼 좋은 일자리는 고사하고 아르바이트 같은 임시 일자리마저 얻기 힘든 상황에서, 아예 구직을 포기한 청년들도 늘고 있다.

매일 아침 독서실과 학원에 출석 체크 하는 대학생, 책과 노트북을 옆구리에 끼고 대학가 카페를 전전하던 취준생, 자격증 취득과 면접 준비 등 각종 스터디 모임에 다니던 젊은이들은 코로나 시기를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 그들이 생각하는 ‘일’이란 무엇일까? 감염병 사태 속 취업 전선에 뛰어든 청년 4인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소영: 안녕하세요. 대전에서 일하고 있는 소영입니다.

지우: 저는 25살 지우입니다. 현재 글로벌 금융학과 3학년에 다니고 있습니다. 공인회계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회계법인에 들어가 경력을 쌓으려 합니다.

경은: 전남대 불어불문학과 4학년 2학기에 재학 중인 경은입니다. 전공과는 관련 없이 공기업 사무직이나 마케팅 및 MD 분야를 지망하고 있습니다.

은별: 반갑습니다. 전남대학교 불어불문학과 휴학생 은별입니다. 전공과 다르게 사무직과 공무원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전공 및 지망 분야와 관련해, 자신이 배운 것과 하고 싶은 것, 혹은 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소영: 저는 철학을 전공했고, 글 쓰는 직업을 갖고 싶었어요. 물론 ‘철학과 나왔으면 그래도 글 쓰는 게 좋지 않겠느냐’는 편견도 있지만, 관심 분야와 전공이 어느 정도 연결 지점이 있는 것 같아요. 또, 책을 많이 읽으면 불리하지는 않은 게 글 쓰는 직업이라고 생각했어요.

지우: 저는 지금 회계학을 공부하고 있어요. 회계사 시험을 통과하면 컨설팅 분야로 가거나 비즈니스언어를 배워 해외 영업에 특화할 수도 있는데요. 저는 어렸을 적부터 재무회계 분야에 관심이 많아서 은행원이나 펀드매니저 같은 분야로 진출하고 싶었거든요.

경은: 저는 불어에 관심이 많아 어학연수도 다녀오고, 유학도 준비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코로나19가 터지면서 유학을 못 하게 됐어요. 코로나가 끝날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리는 건 말도 되지 않아서 취업 준비를 시작했어요. 그래서 온갖 자격증 취득과 스펙 쌓기, NCS를 준비해야 해요. 전공과 지망 분야가 다른 이유는 불어불문학으로 취직하기 어렵기 때문이죠.

은별: 저는 프랑스 지역학을 전공하고 있고, 공무원을 준비 중입니다. 전공은 적성에 맞았는데 좋아하는 것과 업으로 삼는 것은 현실적으로 다른 차원인 것 같아서요.

여러분이 일하려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소영: 열정적인 삶을 지향하는 제 정체성과 연결되는 직업을 가지고 싶었어요. 그런데 구직활동을 하다 보니 이게 굉장히 어렵다는 걸 깨달았어요. 언론시험을 준비했는데, 시험이 매번 열리지도 않거니와 사람들이 우르르 타고 내리는 지하철역 같은 시험이었어요. 그래서 제가 꿈꾸는 삶을 포기했던 것 같아요.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점점 조급해졌고요.

지우: 저는 회계사가 많은 분석을 요구하는 직업이라는 점에서 흥미를 느꼈어요. 금전적인 부분도 무시할 수 없었죠. 전문직의 특성상 본인의 능력 여하에 따라 인센티브를 받는 게 장점이에요. 휴가도 길게 보장해줘서 여러 활동을 하고 싶은 제게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경은: 저는 일하고 싶은 이유가 돈뿐이에요. 아직까진 부모님 틈바구니에 살고 있지만 언젠간 저도 독립해야 하잖아요. 또 저는 비혼하고 싶은데, 혼자 살려면 무조건 돈이 있어야 해서 어쩔 수 없이 일자리를 구하려 해요.

은별: 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있어야 많은 권리와 기회를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도 비혼을 생각하고 있는데 다들 웃어요. “비혼 하려면 돈이 있어야지. 돈 없으면 그냥 또래 중에 아는 사람이랑 결혼해서 살아라’라는 말도 어른들께 많이 듣고 반항심이 생겨, 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코로나19 시기에 알바를 한 경험이 있나요? 취업 준비를 하면서 알바를 구하지 못해 버티기조차 힘든 지경에 놓인 적이 있나요?
소영: 저는 여러 알바를 해봤는데요. 대학 졸업 후 본가인 논산으로 거처를 옮길 때 코로나가 터져서 알바를 구하기 어려웠어요. 보통 알바 알선 앱으로 알바를 구하는데 논산에는 열 개 미만으로, 대부분 남성을 구하거나 여성의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없더라고요. 다행히 배달 전문식당이 늘면서 알바를 구할 수 있었고, 덕분에 어느 정도 생활은 가능했어요.

지우: 학교가 타지에 있어 자취했는데, 모아둔 돈이 없다 보니 부모님께 손 벌릴 수밖에 없었어요. 부모님이 학업에 열중하라고 용돈을 주셨는데, 과소비하거나 원치 않은 지출이 있는 달에는 메뉴를 한참 고민하고 손을 덜덜 떨어가며 결제했던 기억이 납니다. 월말에는 더욱더 그렇죠. 식비를 줄이려고 하루에 한 끼만 먹으면서 돈을 아꼈던 적도 있어요. 월세나 전공 서적 구매 같은 고정 지출이 특히 부담스러웠어요.

경은: 저도 타지에서 와서 부모님에게 월세와 용돈을 지원받았어요. 그런데 풍족하지는 않아서 근로 장학생을 했습니다. 지금은 휴학 중이라 수입이 없어서 그동안 모은 돈으로 주식 투자를 하다가 고점에 물렸어요. 용돈이 떨어졌을 때는 하루에 라면 한 끼로 버틴 적이 있어요.

은별: 저는 부모님 집에 얹혀사는데 눈치가 보여서 힘들어요. 1년 치 온라인 수강비로 200만 원 정도 들어가는데요. 예전에 알바했을 때는 제가 번 돈으로 모든 비용을 충당했는데 이젠 부모님이 비용을 대주셔서 죄송하더라고요. 교재비는 60~70만 원씩 나가고 모의고사
비용은 따로 들어가고 대학등록금도 마련해야 하는데, 이제 알바를 못 하다 보니 경제적 부담이 커요. 이제는 ‘그냥 취업 준비를 그만해야 하나’ 하는 심리적 압박감을 느끼고 있어요. 사실 코로나 이전에는 앱으로 원하는 알바 자리를 구하기 쉬웠는데, 지금은 알바를 구하기 힘들어요. 저번에 동생이 알바 구하는 걸 도와줬는데, 코로나 이전과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어요. 최저임금을 받으면 그나마 다행이고, 주휴수당은 절대 안 챙겨주더라고요.

여러분이 원하는 삶과 예상되는 삶은 무엇인지 듣고 싶어요.

소영: 일단 현재의 삶은 제가 원하는 게 아니에요. 돈은 벌고 있지만 진짜 제가 원해서 하는 것도 아니어서 단계적 이직을 준비하고 있어요. 저는 언론사 중에서도 질 좋은 언론사에 들어가고 싶어요. 규모가 정말 작더라도 좋은 기사를 생산하는 곳이요.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제가 직접 좋은 언론을 만들고 싶어요. 물론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환할 수도 있겠지만, 일단 예상되는 삶은 그렇습니다. 좋은 언론을 만나는 것 혹은 내가 좋은 언론을 만들어 가는 것.

지우: 제가 원하는 삶은 바짝 일하고, 쉴 수 있을 때를 정해서 쉬는 거예요. 또 주변 사람이 힘들 때 도울 수 있는 여력을 가지고 싶습니다. 그런데 예상되는 건 워라벨이 힘든 삶이에요. 서울에서 계속 살기도 쉽지 않고요.

은별: 제가 지금 원하는 삶은 철밥통이에요. 안정적이고, 예상 밖의 일이 일어나는 것을 아주 싫어하는 제 성격상 딱 좋습니다. 그래서 제 예상되는 삶은 공직생활이에요. 만약 시험 결과가 좋지 않으면 간호대로 편입해 긴박한 상황이 없는 중소 규모의 병원에서 일하고 싶어요.

경은: 제가 원하는 삶은 불로소득을 얻는 삶인데요.(웃음) 일하고 싶지 않거든요.(일동 웃음) 근데 이건 원하는 삶일 뿐이고 예상되는 삶은 월급쟁입니다. 불로소득을 얻는 사람은 이 세상에 별로 없잖아요.

여러분이 취업 준비를 하면서 내린 결심 가운데, 반드시 하기로 한 것과 하지 않기로 한 것은 무엇인가요?

소영: 저는 취업 준비를 하면서, 2020년에는 반드시 취업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어요. 지금도 현상이 유지되고 있지만, 당시 코로나 파동이 너무 컸고 취업의 문도 많이 열리지 않았거든요. 실제로 코로나의 영향 때문이었는지 취업이 1년 정도 늦어졌어요. 예전에 어떤 면접 하나를 봤는데 거기서 한국 언론의 진짜 모습을 마주했어요. 모 운동선수의 학교폭력이 사회적으로 화제가 된 적이 있는데요. 그 언론사가 그 사람들의 이름을 처음 까발렸다면서 자랑하더라고요. 부끄러운 행적이 아니라 성과라고 여기는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어요. 그래서 저는 하향취업을 하더라도 사람으로 남을 수 있는 직장에 갈 생각이에요.

지우: 저는 자기비하를 하지 않기로 했어요. 취업을 준비하는 모두가 불확실한 상태에 계시잖아요. 마땅한 결과가 없는 상황에서는 자신의 노력을 쉽사리 증명할 길이 없고, 미래에 대한 걱정은 늘어만 가니까 자기 연민에 빠지기 쉬운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저의 노력을 스스로 훼손하지 않으려 합니다.

경은: 저는 무리하게 공부했더니 취준을 제대로 시작한 지 얼마 안 가 몸이 망가졌어요. 건강이 가장 유의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취준 중에 하지 않기로 한 건 스트레스를 최대한 받지 않기로 한 것이에요. 저는 코로나로 일자리가 증발해 취업이 어려운 건 당연하다 인정하고, 크게 신경 쓰려 하지 않고 있어요.

은별: 저는 취준 중에서 멘탈 관리가 정말 중요하다는 걸 느꼈어요. 안 그래도 제가 정말 집순이인데 코로나19 이후에는 정말 1년 가까이 집 밖을 안 나갔어요. 그러다 보니 공부하면서 쌓인 스트레스도 풀기 어렵고, 세상과 단절된 기분이 계속 들더라고요. 코로나 이전보다도, 계획을 지키지 못했을 때 드는 죄책감과 우울감이 되게 컸어요. 그래서 저는 취준하는 친구들한테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 연락하자고 약속했어요.

여러분 주위에, 지금 이 사회에 전하는 당부의 말씀이 있나요? 혹은 코로나19와 청년 실업이 장기화하면서 우리 사회가 겪게 될 일을 말씀해주세요.

소영: 저는 취준하면서 대학생 때와는 조금 다른 위치에 서게 됐다고 느꼈어요. 대학생이라 해도 취업이나 자신의 이해관계와는 아예 무관하게 사고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대학생이라는 신분은 이 세계를 조금은 더 보편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취준생이 되니까, 작년까지는 사회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던 제가 제 이해에 안주하고 있더라고요. 예를 들어, 취업시장에 나가 경쟁하다 보니 제가 경쟁상품으로서 다른 사람보다 가치 있는지 계속 따지게 되는 것처럼요. 정말 슬픈 일이죠. 한국 사회는 다른 선진사회보다 경쟁의식이 더욱 만연하고 과도하다고 느낄 때가 있어요. 저는 이러한 부분을 조금이나마 지양하기 위해 제 옆의 친구들을 이해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지우: 저는 취준생분들에게 크게 말씀드릴 게 없어요.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니까요. 가끔 졸업한 동기의 소식을 들어보면 진짜 눈물이 앞을 가릴 것 같아요.너무 자신을 비난하지 말고 눈치 보지 말고 계속 노력하면은 언젠간 결실을 보지 않겠느냐는 희망 섞인 말밖에 할 수 없어 안타깝지만, 조심스럽게 꺼내 봅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는 청년들에게 충분한 투자와 기회를 제공해달라고 말하고 싶어요. 청년은 미래 사회를 이끌어갈 사람들인데 코로나 이후 취업난과 그로 인한 고통이 심해졌잖아요. 하루빨리 경기가 회복되면 좋겠고, 다양한 청년 정책으로 지금처럼 힘든 시기를 지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경은: 일자리를 많이 창출해줬으면 좋겠어요. 솔직히 지금의 일자리 대책은 표면적이고 단기적이잖아요. 어느 곳에 일자리가 얼마나 필요한지 근본적으로 파악하고, 스펙이 좋은 사람들마저 힘들어하는 비정상적인 사회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해요.

은별: 작년에 대입을 치른 남동생에게 대학교수들로부터 러브콜이 오더라고요. 학령인구가 감소했다지만 제 대입 때와는 너무 달라서 놀랐어요. 자연스레 ‘몇 년만 버티면 나에게도 취업의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지금 저희가 취준에 박 터지는 세대의 끝물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그래서 서로서로 위로해주고 같이 잘 헤쳐 나가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코로나 시대에 모두가 어려운 상황인데, 청년들을 너무 몰아세우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코로나 이전에도 대다수의 대외활동은 수도권에서만 이뤄졌는데, 지금은 어디에서도 쉽지 않게 되었어요. 제 주위에서 스펙을 쌓기 위해 가장 많이 따는 자격증은 한국
사 자격증과 컴퓨터활용능력 자격증인데, 아이돌 콘서트 티켓팅 뺨칠 정도로 시험 응시가 어려워요. 간혹 뉴스에서 신규채용인원을 늘렸다 해도 경쟁률이 어마어마하고, 지자체에서 시행하는 청년지원 프로그램도 신청조건이 까다로워요. 취준생들을 배려해줬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