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과학, 과학자들의 양심을 사들인 기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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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가습기 살균제가 국내에 처음 출시됐다. 가습기 살균제란 가습기 내부의 물에 타서 사용하는 방식의 살균제로, 2011년 임산부 및 소아에게 치명적인 폐 섬유화 증상의 원인으로 지목돼 판매가 중지됐다. 그러나 가장 많은 피해자를 낸 회사 옥시레킷벤키저는 2016년까지 처벌받지 않았다. 많은 전문가들은 처벌이 늦어진 것에 대해 한국의 행정적 실책을 지목했지만 이에는 최근 밝혀진 과학자들의 연구 조작행위도 주요했다.

서울대 조명행 수의과 교수는 2016년 5월 가습기 살균제 제품의 독성을 조작하여 보고서를 제출한 혐의로 체포됐다. 그가 연구부정행위를 실제로 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옥시 측이 그의 개인계좌로 수천만 원을 별다른 명목 없이 입금한 사실이 확인됐다. 이어 호서대에서 제출한 보고서 또한 조작혐의로 검찰에서 수사 중이다.

  잘 팔기 위한 과학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해 과학적 연구결과를 조작하는 현상에 대해 ‘쓰레기 과학’(junk science)이라는 용어가 존재한다. 이 용어는 해외에서 발생한 지구온난화 혹은 기후변화를 둘러싼 논쟁에서 유래했다. 이 논쟁에서 짐 인호페 미국 상원의원과 윌리 순 박사를 위시한 회의론자들은 인간이 지구온난화의 원인이라는 주장이 거짓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더 나아가 과학자들이 환경단체 등의 이익집단으로부터 돈을 받고 편향된 연구를 했다며 ‘쓰레기 과학’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그린피스와 가디언은 인호페 의원과 순 박사가 석유업체 등으로부터 후원을 받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회의론자들의 주장이 오히려 쓰레기 과학에 가까웠던 셈이다.

쓰레기 과학, 과학자들의 양심을 사들인 기업들 삽화

쓰레기 과학은 과학적인 정설에 의문을 제기하는 형태를 취한다. 조작된 연구결과를 통해 특정 사실을 모호하게 만들어 여론을 돌리고 정부 규제의 도입을 최대한 늦추는 것이다. 정설에 대한 과학적 회의도 물론 있을 수 있기에 전문가가 아닌 입장에서 이러한 의문제기는 건전한 의심과 구별하기 어렵다. 일례로 미국에서는 담배가 폐암을 유발시키므로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고개를 들자 도시화와 폐암의 상관관계 등 다른 원인을 찾는 연구가 쏟아졌다. 『청부과학』의 저자 데이비드 마이클스는 이러한 연구 행태를 “건강을 해친다는 비난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의심 만들어내기”라며 비판했다.

  돈의 출처에 좌우되는 연구결과

뇌물이나 불법적인 유착관계가 없더라도 과학자들의 연구결과는 누가 후원하는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과학자들은 기업에서 후원한 연구들이 그렇지 않은 연구들보다 기업에 유리한 결과를 내놓을 확률이 더 높음을 지적한다. 이러한 경향을 ‘후원 편향’(funding bias)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경향은 특히 규제와 직접 연관되는 의학계열의 연구에서 두드러진다.

안케 허스 등을 비롯한 연구자들은 ‘휴대전화 사용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논문 59건을 추출해 메타분석했다. 분석결과 기업에서 후원한 연구는 휴대전화가 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결과를 내놓을 확률이 기타 재원에서 후원한 연구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크리스티나 터너와 조지 J. 스필리치는 ‘니코틴의 지각력 향상’에 대한 연구를 메타분석했다. 결과는 비슷했다. 담배 회사가 후원한 연구에서 니코틴이 지각력 향상에 기여한다는 결과가 나올 확률이 높았던 것이다.

  가짜 지식의 상아탑에 선 과학자들

학계는 이러한 편향을 억제할 능력이 없을까. 과학계에서는 동료평가(peer review)라는 제도로 논문의 질을 결정한다. 해당 분야의 연구자들이 직접 논문의 질을 평가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학회지는 엄격한 동료평가를 통해 편향되거나 잘못된 방법론을 적용한 연구를 탈락시킨다. 그러나 동료평가의 효용 또한 학계에서 의견이 갈린다. 저명한 《영국의학저널》의 전 편집장 리처드 스미스는 “결함이 많은 시스템이며 최선이 아니라 차악이다“며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하는 한편, UCL의 생태학 교수 조지나 메이스는 동료평가의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어떠한 근거도 없다고 말한다.

엄격한 동료평가에도 불구하고 기업에서 후원한 편향된 연구가 학회지에 실리는 일은 적지 않다. 특히 통계적인 연구의 경우 결과에 대한 세밀한 조작을 동료평가과정에서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 황우석 박사의 논문이 《사이언스》에 게재된 일은 동료평가에 존재하는 맹점의 예이다. 가상의 동료평가자를 만들어 동료평가를 조작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학회지에 실린 논문 중에는 후원의 출처를 밝히지 않는 논문이 다수 존재하여 논문에 후원편향이 존재하는지 파악하는 것도 어렵다.

그러나 가장 커다란 문제는 기업의 보고서들이 이러한 동료평가 체계를 회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조명행 교수의 보고서는 오로지 검찰과 법정에만 제출되었으며 최근까지 일반에 공개되지 않았다. 이러한 경우 동료평가 체계는 무용지물이다. 불리한 보고서는 은폐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옥시는 불리한 내용의 보고서를 은폐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으며, 1930년경 듀폰은 자사의 염료가공용 화학약품과 방광암과의 관계에 대해 내부 연구진이 자사에 불리한 내용의 보고서를 계속 제출하자 연구진들을 해고하고 보고서를 은폐하려 시도한 바 있다.

요크 대학의 조엘 렉친은 의학연구에서의 후원편향을 연구한 그의 논문에서 “연구자와 돈의 직접적 연결을 막고, 중립적인 재원을 개발하는 것”을 그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한국의 현실은 열악하다. 《경향신문》은 최근 연구비를 놓고 경쟁해야 하는 연구자가 중립을 지키기 어렵다는 내용의 특집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제 2의 옥시사태를 막고 유사한 연구부정행위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열악한 환경을 개선하여 과학자들이 투명하고 건전한 연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시급해 보인다.

글 서승우 기자 chrd5273@gist.ac.kr

그림 채유정 디자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