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상 발생하면 대처할 수 있을까?
대학생·대학원생 예방교육 전혀 없다
성희롱 발생 시 상황별 대처법
제대로 대처 안 하면 재발 위험 높아
*성희롱·성폭력
우리나라의 현행법에서 ‘성폭력범죄’는 형사상의 범죄이고 ‘성희롱’은 성적 수치심 또는 혐오감을 일으키는 일체의 행위라는 의미로 구분된다. 본 기사에서 사용된 ‘성희롱·성폭력’은 다양한 성 인권 침해 양상을 모두 포괄하는, ‘피해자 동의 없이 행해지는 성적 자기결정권의 침해행위’라는 넓은 의미이다.
지스트에서도 성희롱·성폭력이 발생한다
“XX학번 남자들이 있는 단체 카카오톡 대화방에서 끊임없이 성희롱이 이루어지고 있다”
– <2017 지스트신문 설문조사> 응답
“선배님이 나한테 준 것들을 하나하나 되짚어 보니까 성추행에, 트라우마에…”
– 익명 페이스북 페이지 <GIST 대나무숲>
A양은 동아리 선배들과 술을 마시다 다들 술이 어느 정도 취했을 때 한 선배가 옆으로 다가와 어깨와 손을 만지는 것을 경험했다. A양은 매우 당황스럽고 불편했지만, 술자리 분위기를 망칠까 봐, 선배와 서먹해질까 봐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넘겼다.
– 성희롱성폭력 사례집 재구성
<2017 지스트신문 설문조사>에 지스트의 다양한 성희롱·성폭력 사례들이 나왔다. 그 중엔 최근 서울대, 연세대, 홍익대 등 대학을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논란이 되는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단톡방) 성희롱 문제도 제기되었다. 언어적 성희롱뿐만 아니라 신체적 성희롱, 강제 추행, 스토킹 등도 지스트에서 발생했다. 조성은 상담경력개발센터 상담실장은 “내담자의 보호를 위해 빈도나 사례를 말해줄 수는 없지만 지스트에서도 성과 관련된 문제들이 일어나고 있으며 한 번쯤 생각할 필요성은 있다”라고 밝혔다. 실제로 성희롱·성폭력 사건으로 원내에서 징계가 내려진 적이 있다.
대처방법, ‘참고 넘긴다’ 응답이 제일 많아
성희롱·성폭력이 막상 발생해도 많은 사람은 참고 넘긴다. 한 조사에 따르면 대학 성희롱·성폭력 피해자의 66.5%가 피해 발생 후 ‘그냥 참고 넘긴다’고 답했다. (취업정보업체 커리어, 2010) 다른 조사에서는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42.1%이며 ‘친구나 선배와 의논’이 20.8%, ‘당사자에게 얘기한다’가 21.7%로 나타났다. (아주대학교성폭력상담센터, 2015) 아주대 조사에서 성희롱·성폭력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이유는 피해사실 노출이 싫어서(26.1%), 방법을 몰라서(24.6%), 문제제기 해도 소용이 없을 것 같아서(21.1%), 행위자가 상급자여서(20.4%)라고 답했다.
한편, 자신이 성희롱·성폭력을 당했는지 잘 모르는 경우도 있다. 조 상담실장은 “상대방의 어떤 행위 때문에 기분이 언짢은데 이것이 성희롱인지 잘 알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부족한 원내 성희롱·성폭력 예방교육
성희롱·성폭력을 예방하기 위해 항상 거론되는 방법이 예방교육 시행이다. 조 상담실장은 “교육이 꼭 필요하다. 원내 구성원이면 누구든지 정기적인 교육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교육부가 2015년 발표한 <<대학 성희롱·성폭력 예방 및 피해 구제 강화를 위한 방안>>에서도 예방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지스트 원규의 『성희롱·성폭력예방과 처리에 관한 지침』 제4조에 따르면 지스트의 전체 구성원은 성희롱예방교육을 연 1회 이상 시행하라고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현재 지스트에서는 교직원만을 대상으로 예방교육이 시행되고 있다. 직원의 경우 정규직과 무기계약직인 직원은 인사고과에 반영되기 때문에 거의 모두 참여하나 계약직은 이수를 강제하지는 않는다. 교원은 매년 워크숍에서 성희롱예방교육을 하고 있으나 영어 교육 자료가 없기에 외국인 교원은 이수할 수 없다. 지스트 구성원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대학생, 대학원생, 연구원은 예방교육이 아예 없는 실정이다. <2017년 지스트신문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81.7%가 지난 1년 동안 예방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고 대답했다.
지스트신문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지스트 재학 또는 재직 중에 겪은 성희롱·성폭력 피해 경험은 4.6%이며, 가해 경험은 1.1%였다. 이것은 대학생을 대상으로 조사한 교육부의 설문조사의 피해경험 78%와 가해경험 59.5%와 크게 차이나는 결과이다. 다만 교육부 설문조사는 12가지 성희롱·성폭력 유형을 세분화하여 각 유형을 조사했다. 이 차이는 지스트신문의 설문조사로 신분이 노출될 염려 때문일 수도 있고, 지스트 구성원이 성희롱·성폭력의 범위를 잘 모르기 때문일 수도 있다. 실제로 설문조사 응답 중엔 “외모 평가가 성희롱임? 어이가 없다”라는 응답도 있었다. 원내 구성원의 성희롱·성폭력 인식이 부족하다면 성희롱예방교육이 더욱 필요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피해자의 대처법 : 의사를 표시하기
성희롱·성폭력의 잘못은 모두 가해자에게 있으나 피해자는 그에 잘 대처해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피해자는 성희롱·성폭력을 당했다는 것을 인지하면 즉각적으로 거부 의사를 분명히 표시해야 한다. 이것은 명확하게 의사를 전달하며 행위를 중지시키기 위해서이다. 소극적인 대응이나 불분명한 의사표시로는 성희롱·성폭력을 저지하기 힘들 수 있다. 성폭행 등 긴급한 위기 상황에는 즉시 경찰에 신고하고 의료기관을 찾아간다. 여성긴급센터(국번 없이 1366)에 연락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피해자가 성희롱·성폭력을 당하면 두려움을 느끼거나 당황할 수 있고 즉각적으로 수치심이 들지 않을 수도 있다. 또는 분위기에 휩쓸려 적극적으로 거부를 표현할 용기가 없을 수 있다. 즉시 거부 의사를 표시할 수 없다면, 그 자리를 피한 후 거부 의사를 담은 메시지를 보낼 수도 있다.
성희롱·성폭력의 경우 대개 목격자나 증거를 확보하기 어렵다. 성희롱·성폭력을 인지한 이후에는 가급적 가해자와의 대화나 통화는 녹음하는 것이 좋다. 만일을 대비하여 사건이 발생한 시간·장소, 구체적인 행위, 자신이 느꼈던 느낌, 사건의 경과 등을 기록해둔다면 추후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할 때 도움이 될 수 있다.
피해자는 가해자에게 사과와 재발 방지를 요구한다. 추가로 비밀 유지, 공간 분리, 가해자 교육, 물질적 보상을 요구할 수도 있다. 이런 내용은 서약서나 합의문을 작성하여 약속할 수 있다. 만약 가해자의 공식적인 징계나 처벌을 원한다면 원내에 공식적인 창구(지스트의 경우 의무실)로 성희롱·성폭력 사건을 접수해야 한다. 피해자는 가해자를 만나기 전에 가해자에게 무엇을 요구할 것인지 미리 생각해두는 것이 좋다.
피해자는 대처하는 내내 용기가 많이 필요하다. 정신적으로 많이 지쳐있을 수 있고,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힘들 수도 있다. 그럴 경우엔 신뢰할만한 지인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원내 상담센터에서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가해자의 대처법 : 인정하고 사과하기
가해자의 경우도 심리적으로 아주 괴로울 수 있다. 가해자가 되었다면 가해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책임져야 하며 피해자의 상처가 아물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자신의 행위를 변명·축소하기보다는 즉시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이 좋다. 단, 사과하기 위해 무작정 피해자를 찾아가거나 연락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피해자에게 어떻게 행동하면 좋을지 물어보는 것이 좋다. 피해자가 연락을 받지 않을 때는 메시지를 보내거나 제3자를 통하여 사과의 말을 전해 놓는다. 이때 자신의 행위를 기록으로 남겨두면 공식적인 조사가 시행될 때 자료로 사용될 수 있다.
피해자의 요구 조건을 최대한 들어주되, 요구사항이 너무 과도한 경우 요구사항의 수정을 요청하거나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피해자와 합의에 이르지 못한다면 공식적으로 사건이 조사될 것을 고려해둬야 한다.
제3자의 대처법 : 당사자의 입장 고려하기
사건을 들은 당사자의 지인이나 목격자 등 제3자는 사건의 해결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사건을 알게 된 제3자가 피해자를 나무라면서 사건을 은폐하려 하거나 가해자의 인간성을 총체적으로 매도하려 한다면 사건을 해결하기 어려워진다. 일단 피해자가 죄책감을 느낄 수 있는 말은 피하고 정신적인 안정을 되찾도록 도와준다.
제3자는 당사자들의 입장을 최대한 고려해야만 사건해결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당사자들의 동의 없이 사건을 해결하려 한다면 오히려 당사자가 힘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반대로 당사자끼리의 일이라며 아예 신경 쓰지 않는 것도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제3자는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공동체가 함께 해결해야 할 ‘정당한 문제 제기’로 받아들이도록 한다.
본인이 목격자라면 피해 사실을 잘 기억·기록해두면 문제 해결에 소중한 자료로 쓰일 수 있다. 당사자가 문제 해결에 어려움을 겪으면, 제3자는 상담센터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을 방문하도록 권유한다. 사건의 비밀유지는 기본이다.
개인적 대처, 상담기관을 통한 대처, 사법적 대처
성희롱·성폭력이 발생한 이후 대처방법에는 크게 3가지가 있다. 먼저 개인적 대처는 당사자끼리, 또는 제3자를 통해서 해결하는 비공식적인 방법이다. 이 경우, 피해를 봤다는 사실이 외부로 알려지지 않는다. 피해자의 요구사항을 당사자끼리 합의하여 마무리할 수 있다. 피해자가 직접 가해자를 만나기 어렵다면 제3자의 도움과 중재를 받을 수 있다.
두 번째는 상담기관을 통한 대처이다. 만약 당사자들이 원활히 합의에 이를 수 없는 경우 원내에서 이용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원내 상담센터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상담기관은 중재 또는 사건 접수를 통해 성희롱·성폭력 문제를 해결한다. 중재의 경우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요구 조건을 전달하고 이행하도록 한다. 중재는 비공식적인 절차이므로 상담기관 이외에는 사건의 발생 사실이 노출되지 않는다. 그러나 중재에서 마무리가 안 된 경우는 사건을 원내 ‘성희롱·성폭력 대책위원회’로 접수한다. 이것은 공식적인 대처방법으로, 조사위원회의 조사를 거쳐 죄가 인정되면 징계위원회에서 가해자를 징계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사법적 대처는 사법기관이 개입된다. 손해배상을 받고 싶다면 민사소송을, 형사처벌을 원한다면 형사소송을 할 수 있다. 다만 이 경우 사건 해결을 위해서 돈과 시간을 많이 투자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
제대로 대처 안 하면 일상생활 힘들어져… 재발 위험도
B양은 별일 아니라고 생각하고 넘어가려 했으나 수치심과 우울감이 몰려왔다. 성희롱이 본인이 원인을 제공해서,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서 일어난 일이라고 느끼며 죄책감과 후회도 생겼다. B양은 가해자를 볼 때마다 불편했지만, 그런 자신과 달리 아무렇지도 않게 학교생활을 하는 가해자를 보고 분노가 일어났다. 문제를 제기하려고 했으나 증인과 증거가 없어서 입증하기도 힘들었다.
– <<대학 성폭력 피해자 지원 및 사건처리 매뉴얼 개발 연구>> 사례
성희롱·성폭력을 당했을 때 제대로 대처하지 않으면, 오히려 피해자의 일상생활이 망가질 수 있다. 위의 사례처럼 피해자는 수치심과 굴욕감뿐만 아니라 죄책감에 괴로워하기도 한다. 사건 이후 피해자는 가해자를 피해다니며 많은 스트레스를 느낄 수도 있다. 가해자와 업무 등으로 자주 만나야 하는 상황이면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수 있다. 만약 그냥 참고 넘어간다면 가해자가 성희롱·성폭력을 다시 일으킬 가능성도 높다. 그러므로 성희롱·성폭력이 발생하면 적절히 대처할 필요가 있다. 조 상담실장은 “성희롱을 당했을 때 적절히 막지 못한다면 더 큰 위험에 자신을 내어주는 것이고 다른 사람이 똑같은 일을 당하는 것을 방조하게 될 수도 있다. 성범죄는 재발률이 상당히 높다”라고 말했다.
성희롱·성폭력은 언제나 일어날 수 있다. 성희롱·성폭력은 지스트의 모든 구성원이 관심을 가지고 예방과 대처에 관심을 기울여야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박희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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