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책 한 권을 골라 들고 햇볕이 따스한 곳에 자리를 잡는다. 차나 커피를 마셔도 좋고, 내키는 대로 맥주 한 잔을 곁들여도 좋다. 다달이 열리는 인문학 강좌나 낭독회 등에 참여할 수도 있다. 각양각색의 재미가 가득한 이곳은 바로 동네책방이다.
다양한 개성을 갖춘 동네 책방들이 독자들의 발길을 끌고 있다. 동네책방, 작은책방, 독립서점 등으로 불리는 이들은 대형서점과 달리 개인이 특색을 살려 운영하는 소규모 서점이다. 동네책방은 단순히 책을 판매하는 곳을 넘어 다양한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광주에도 이미 열일곱 곳 이상의 동네책방이 존재한다. 과연 광주에선 어떤 매력을 갖춘 동네책방들을 만나볼 수 있을까.
경험을 공유하는 서점, ‘동네책방 숨’
수완지구 어느 골목 사이, 베이지색 작은 집 같은 책방 ‘동네책방 숨’이 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카페 같은 서점과 작은 평화도서관이 맞아준다. 테이블 두어 개를 둘러싼 서가엔 책이 가득 꽂혀있다. 책들은 광주·전남, 세월호, 동네책방, 독립출판물 등 숨만의 기준에 따라 분류돼있다. 구석구석 숨은 재미도 쏠쏠하다. 이달의 책 필사 코너, 지인에게 책을 선물할 수 있는 ‘책 미리내’ 코너 등 구경만으로도 심심할 겨를이 없다.
동네책방 숨의 안석 대표는 책을 들여놓는 기준에 대해 “삶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책이 많다. 꼭 사회가 요구하는 삶, 주류가 아니어도 충분히 행복하게 살 수 있음을 알려준다”고 말했다. 그는 “또 다른 기준은 ‘평화’다. 5·18이나 세월호, 제주 4·3 사건 등을 평화의 관점에서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돕는 책들이다”라고 덧붙였다.
평화에 관련한 다양한 모임도 열린다. ‘평화책 꾸러미 모임’도 그중 하나다. 평화 이야기를 책과 놀이를 통해 전달하는 ‘책 꾸러미’를 만드는 모임이다. 동학농민운동 등 역사적 사건을 살펴보기 위한 평화기행을 떠나기도 한다. 이외에도 저자 초청 북토크, 공개방송 등 다양한 행사가 진행된다.
숨이 추구하는 중요한 가치는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다. 안 대표는 “책은 공산품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저자 한명 한명의 삶의 경험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저자와 독자의 삶의 경험이 만나게 하는 것, 그게 작은 책방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세련된 주인장의 취향이 가득, ‘메이드 인 아날로그’
‘메이드 인 아날로그’를 처음 방문한 사람은 이곳이 서점이 맞는지 고개를 갸우뚱할지도 모른다. 이곳은 서점인 동시에 디자인 문구 등을 판매하는 편집숍이다. 1층에선 액세서리, 문구류, 여행 서적 등을, 2층에선 문학, 인문학, 디자인 도서 등을 판매한다.
김하영 대표는 자신을 “성공한 덕후”라고 칭했다. 오랜 프리랜서 생활 동안 로망이었던 서점을 운영하며 자신이 좋아하는 물건들을 팔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1층에서 판매하는 물품들에 대해 “전부 내가 한 번 이상 써본 물건들이다. 좋아하는 브랜드의 정말 좋아하는 제품들”이라고 설명했다. 책장 또한 그가 좋아하는 책들로 채워져 있다. 김 대표는 “신작이 나오면 신뢰하는 작가나 출판사의 책 위주로 한두 권만 먼저 주문해본다. 읽고 마음에 드는 책들만 더 들여놓고 있다”고 말했다.
동네 책방의 매력을 묻자 김 대표는 “고민할 수고를 덜어준다는 점”이라고 답했다. 그는 “동네책방은 주인장이 추구하는 것에 따라 특성이 다 다르다. 나와 주인의 취향이 잘 맞는 그런 서점을 찾는다면, 좋아하는 책을 만나기 쉬워진다”고 말했다.
주인 없이 운영되는 독립서점, ‘연지책방’
‘연지책방’은 주인을 만날 수 없는 서점이다. 매일 오전 9시부터 밤 11시까지 무인으로 운영된다. 연지책방을 방문하고 싶다면 홈페이지에서 회원가입 후 출입 비밀번호를 확인해야 한다.
아무도 없는 서점엔 책들만 가만히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다. 연지책방에서 주로 다루는 서적은 독립출판물이다. 독립출판물은 작가가 직접 콘텐츠를 기획하고 편집, 제작, 유통하는 책들을 말한다. 연지책방의 민승원 대표는 “독립출판물 신간들을 최대한 소개하고 있다. 연지출판사에서 출간한 책들도 있다. 20대, 30대가 좋아할 단행본도 소개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광주에 독립출판물을 소개하고 싶어 연지책방을 열게 됐다. 독립출판물은 상업성, 대중성을 따르기보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기에 주제가 다양하다. 때론 지극히 사적인 내용이 담겨 친근하게 느껴진다. 광주에도 독립출판 문화가 많이 퍼져 독특한 창작물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민 대표는 독립서점의 매력으로 “독립서점만의 큐레이션을 볼 수 있다”는 점을 꼽았다. 그는 “대형서점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책들을 새롭게 조명하고, 대형서점에서 볼 수 없는 책들을 만날 수 있는 게 매력이라고 생각한다”며 “북스테이를 하는 책방, 향기를 파는 책방, 고양이를 전문으로 하는 책방 등 개성 있는 독립서점들이 많다. 특색 있는 행사도 자주 진행하기에 찾아가는 재미가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책과 함께 흘러가는 시간, ‘타인의 책 지음책방’
책을 읽으며 사색에 잠겨보고 싶다면 ‘타인의 책 지음책방’에 들러보는 건 어떨까. 지음책방에선 소장된 책 6000여 권을 무엇이든 자유롭게 읽을 수 있다. 차나 커피, 술, 식사도 주문할 수 있다. 책방 구조도 흥미롭다. 각 방이 반 층 간격을 두고 1층, 1.5층, 2층으로 연결돼있다. 마음에 드는 책과 음식, 장소를 골랐다면 이제 책 속에 빠져들 시간이다.
지음책방의 책들은 김 대표 부부가 91년도부터 모아온 것들이다. 문학, 교양과학, 미술, 만화 등 종류도 다양하다. 판매하는 책은 단 한 권이다. 매년 한 가지 주제를 정해 그에 관한 열두 권의 책을 차례대로 판매한다. 판매 중인 책이 다 팔리면 다음 책을 들여놓는 방식이다. 올해의 주제는 페미니즘이다. 이전에 다룬 주제로는 SF, 시 등이 있다.
김정국 대표는 “해보고 싶은 게 많다”고 말한다. 그는 “지음책방이란 이름엔 네 가지 의미가 있다. 책을 읽고 쓰는 ‘책 지음’,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다른 문화를 이해하는 ‘밥 지음’, 시를 낭송하는 ‘시 지음’, 성에 대한 토론과 책방 육아를 하는 ‘함께 지음’으로, 여러 활동을 조금씩 시작해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김 대표는 동네책방에 대해 “소수자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으로, 다양성이 갖는 매력이 있는 것 같다. 복합문화공간의 중심에도 동네책방이 있다고 생각한다. 톡톡 튀는 개성과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지역과 화합을 이뤄내고,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는 공간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전했다.
김예인 기자 smu04018@gi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