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파문으로 곤혹을 치른 스웨덴 한림원이 올해 노벨상 수상자를 선정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노벨 문학상 선정기관인 스웨덴 한림원은 지난 5월 3일 성명을 통해 “올가을 예정된 노벨 문학상 수상자 발표는 취소됐다. 대신 2019년에 수상자를 2명 뽑겠다”고 밝혔다. 이는 한림원의 종신위원 집단 사퇴로 인해 수상자 선정에 필요한 정족수를 채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건의 발단은 여성 18명이 한림원 종신위원 카타리나 프로스텐손의 남편인 장클로드 아르노에게 성폭력을 당했다고 발표한 것이다. 사진작가인 장클로드 아르노는 ‘열아홉 번째 종신위원’으로 불릴 정도로 한림원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문화계 거물이었기에 그 여파가 컸다. 이후 한림원 종신위원 3명이 프로스텐손의 해임을 요구했으나 한림원은 이를 무시했다. 이에 반발한 종신위원 7명과 사무총장이 사퇴했다. 결국 한림원은 의사결정을 위한 정족수를 채우지 못했고, 문학상 시상을 내년으로 미루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종신위원의 집단 사퇴를 불러온 허울뿐인 종신위원제가 비판을 받고 있다. 한림원의 종신위원은 한번 선정되면 사퇴할 수 없고, 기존 위원이 사망한 후에야 만장일치 투표를 통해 새 종신위원을 뽑게 되어 있다. 나이가 많거나 개인적인 이유로 활동을 하지 않는 위원이 있더라도 새 종신위원을 뽑지 못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활동하는 종신위원의 수는 정해진 수보다 적었고, 정족수는 채웠으나 실제 의견을 내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다. 이 소수의 인원이 회의를 장악하다시피 한 상태였기 때문에 미투 사건 때 미온적인 대처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대처는 결국 종신위원들의 집단 사퇴까지 불러오게 됐다.
노벨 문학상 선정 과정의 폐쇄성과 비일관성도 도마 위에 올랐다. 노벨 문학상에는 뚜렷한 시상 기준이 없으며 수상자 선정 과정을 공개하지 않는다. 매해 수상자 예측은 도박 사이트의 배당률을 보는 것이 가장 정확할 정도로, 한림원은 일관성 없는 선정을 계속해왔다. 이에 대한 비판은 카타리나 프로스텐손이 지난 몇 년간 노벨상 수상자의 명단을 유출했다는 혐의를 받으며 더욱 가속되고 있다. 그동안의 폐쇄적이고 비일관적인 수상에 종신위원들의 비리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이에 노벨 재단의 라르스 하이켄스텐 사무총장은 “스웨덴 아카데미가 정당성을 다시 확보하지 못하면 우리는 다른 기관에 노벨문학상 선정을 책임지도록 요구할 수 있다”고 밝혔다. 스웨덴 한림원이 노벨 문학상 수상자를 결정하는 특권을 박탈당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스웨덴 한림원은 종신위원 사퇴를 허락하고 새 종신위원 2명을 뽑는 등 추락한 한림원의 권위를 되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장클로드 아르노는 현재 성폭력 혐의가 인정돼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한편 스웨덴에서는 작가와 배우, 언론인, 문화계 인사 등 100여 명이 ‘뉴 아카데미’라는 단체를 설립해 올 한해만 시상하는 ‘대안 문학상’을 제정했다. 대안 문학상 수상자는 스웨덴 전역의 도서관 사서들이 1차로 작가를 추천한 뒤 일반 시민이 참가하는 인터넷 투표를 통해 후보를 선발하고, 이를 뉴 아카데미 심사위원이 심사하는 방식으로 결정되었다. 최종 수상자로는 ‘세구’ 등의 작품을 집필한 마리즈 콩테가 선정됐다. 뉴 아카데미 창립위원인 기자 알렉산드라 파스칼리드는 “우리는 이 상이 노벨 문학상을 대신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도 “수상자 선정에 일반 시민도 참가함으로써 노벨문학상의 폐쇄적인 수상자 선정방식에 문제를 제기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