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숨 붓질에 시대의 정신을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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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희 작가가 작업실에서 그의 그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민병희 작가가 작업실에서 그의 그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민병희 작가가 작업실에서 그의 그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지난 11월, GIST 도서관에서 약 2주간 묵정 민병희 작가 초대전이 열렸다. 일상의 찰나에서 그가 발견한 여운이 담긴 작품들이 전시됐다. 간결한 선들 사이에는 그만의 철학과 사유가 녹아 있다. <지스트신문>은 묵정 민병희 작가를 만나 그의 예술관과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문인화가 어떤 분야인지 간단히 설명 부탁드린다
문인화는 예전 학문을 익히던 선비나 사대부들이 여가를 위해 그리던 그림에서 유래했다. 공부하다 잠시 쉬기 위해 주변에 있는 난이나 대나무 등을 순간적으로 ‘치던’ 것이다.

문인화에는 시, 서, 화라는 세 가지 요소가 있다. 시의(詩意)는 작품에 담긴 문학적 소양이나 철학을 가리킨다. 꼭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작품을 보고 시적인 감흥을 느꼈다면 그것도 시의에 포함된다. 서력(書力)은 필력이라고도 하는데 오랫동안 쌓인 붓을 다루는 능력을 말한다. 마지막으로 조형과 이미지를 창출해내는 능력인 화공(畵功 )이 있다.

이러한 요소를 바탕으로 넓게는 우주, 자연의 이치를, 좁게는 우리 생활에서 볼 수 있는 대상들을 간결, 담백하게 표현해낸 것을 문인화라고 한다. 시의를 담는다하여 시의화(詩意畵), 또는 외형만을 중시하여 그리기 보다는 내면의 뜻을 그린다하여 사의화(寫意畵)라고도 한다

문인화를 그리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4대째 문인화, 서예를 해오던 집안이라고 들었는데, 그러한 가풍의 영향이 있었는지?

당연히 환경의 영향이 있었다. 아주 어릴 때부터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작업하시는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봤다. 나무도, 하늘도 온갖 색이 가득한 세상에서 하얀 종이 위에 검은 먹으로 공간을 지배해나가는 모습이 신기했다. 종이를 펼치고 선을 그을 때의 고요한 자태도 좋았다.

학교에 다니면서 다른 일들을 이것저것 해봤지만 잘 맞지 않았다. 그러다 아버님 밑으로 들어가 본격적으로 서예를 수학하게 됐다. 처음엔 아버님께서 직접 서예를 가르쳐주시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배우는 걸 보고 거의 독학하다시피 해야 했다. 그런 과정을 겪어가며 나중엔 아버님께 인정을 받게 됐다.

그때 아버님이 운영하시던 서예원 주변에 ‘남도예술회관’이라는 큰 전시장이 있었다. 거기서 문인화를 보게 됐는데, 서예만 하던 입장에서 무척 신기하게 느껴졌다. 서예는 대체로 종이 위 공간을 채우고 장악하면서 자신을 드러내는 특성을 가진 예술이다. 반면 문인화는 공간을 채우는 한편으로 허허로운 여백을 더불어 만들어내는, 즉 비워내는 작업이다. 문인화를 하며 마음이 여유로워지고 맑아지는 것에 매력을 느꼈고 그때 시작한 공부가 지금까지 이어져 오게 됐다.

가장 아끼는 작품을 꼽는다면?
다 아낀다. 큰 작품이든, 작은 작품이든 자기 혼을 싣는 것이지 않나. 그러니 어떻게 아깝지 않을 수 있겠나. 다만 완성도가 한층 더 높은 작품, 여러 상황이 맞아떨어져서 잘 표현된 작품은 있을 수도 있다.

GIST에서 전시하기도 한 ‘먼지’라는 작품이 그렇다. 무의식적으로 그렸는데 조화롭게 잘 나왔다. 이 작품은 존경하는 분께 선물하기 위해 그리기 시작했다. 그림 그릴 준비를 하며 먹을 갈고 화선지를 펼쳐서 놓았는데, 그날따라 밖에서 들어오는 빛에 화선지의 먼지들이 뿌옇게 날아다녔다. 그 모습에 순간적으로 영감이 떠올랐다. 먼지라는 것이 왜 존재하는가에 대한. 어떻게 보면 지저분한 것일 수도 있지만 우주 안에서 필요 없는 것은 없다. 티끌이지만 광대한 우주하고도 연결이 된다. 그런 이치를 깨닫고 작품으로 만들어보게 됐다. 우주적인 이치에 대해 접근할 수 있게 해준 의미가 큰 작품이다.

작품에 대한 영감이나 발상은 어떻게 얻나?

영감이란 것은 얻고 싶다고 아무 때나 얻어지지 않는다. 밤하늘에 유성이 떨어지는 것처럼 순간 지나가는 것이다. 그것에 대해 항상 마음을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먼지’를 그릴 때도 마찬가지였다. 평소엔 그냥 지나치던 먼지였지만 그날따라 빛을 받아 움직이는 모습이 순간 마음속에 들어왔다. 그 찰나를 낚아챈 거다. 어떨 때는 꿈꾸면서 작품 소재가 나올 때도 있다. 그런 것들을 항상 고민하고 갈구해야 영감이 떠오르는 순간 그것을 자기화할 수 있는 것이다.

어떤 면에선 학문과도 비슷할 것 같다. 공부하면서 순간적으로 습득이 되거나 빠르게 이해가 되는 것, 이런 것과 근본적인 부분이 상통하지 않을까.

예술을 통해 추구하고자 하는 바가 있다면?
예술의 궁극적인 목표는 자기완성이다. 처음 그림을 배울 땐 모방도 하고 정해진 것들을 공부하지만, 점차 그것을 토대로 자기 안의 것을 끄집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전통적인 문인화만 답습할 것이 아니라, 그 한계를 깨뜨리고 자기 자신을 녹여내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그다음은 자기가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을 관객들과 공유하는 것이다. 이번에 GIST에서 전시할 때도 많은 분이 왔다 가셨다. 쓱 보고 지나가는 분도 있고, 작품을 보고 좋아하시는 분도 계셨다. 그런 모습을 보며 작품을 통해 즐거움, 기쁨, 위로, 위안을 주는 것, 이것도 예술가가 가야 하는 길이란 생각이 들었다. 혼자 작업해서 무언가 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결과물을 펼쳐놓고 다른 사람과 공감하는 것도 중요한 것 같다.

세 번째는 사회 참여 정신이다. 사회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는데 제일 중요한 사람들이 정치인이다. 그런데 정치인들이 사회에 고통을 안겨줄 때, 그때 나설 수 있는 사람들이 예술가다. 예를 들어 몇 년 전 광우병 사태 때는 ‘아름답지 못한 만남’이란 작품을 그린 적이 있다. 나는 꼭 아름다운 것만 작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름답지 못한 일이라도 시사하는 바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시대를 살아가며 잘못된 것을 비판하고 문제시하는 것도 예술가가 가진 또 다른 숙제인 셈이다.

전통을 뿌리로 삼되, 현대의 삶에 관해 이야기하는 문인화를 그리고 싶다고 했다. 어떤 뜻인지?
전통을 뿌리 삼는다는 것은 정신적인 부분을 말한다. 소재에 국한되지 않고 현대의 사물에도 얼마든지 자기 철학과 사유를 녹여낼 수 있다. 예를 들어 안경을 그리면서 안경 쓴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을 끄집어내 작품화한다거나 말이다.

문인화의 정신성에는 두 축이 있다. 하나는 맑음이다. 문인화에서 중요한 요소로 담백함, 간결함, 여운 등이 있는데 모두 맑음을 위한 것이다. 전통적인 문인화를 보면 단아하고 절제된 아름다움이 있다.

그러나 나는 문인화가 오로지 맑아야만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 다른 축은 앞서 말한 사회 참여 정신인데, 이런 것들은 맑음만 가지고는 나타내기 어렵다. 그런 작품은 형태가 거칠거나 강렬할 수 있다. 사회와 더불어 살아가려면 때로 투쟁도 필요하다. 선비들도 학문만 하는 게 아니고 필요할 땐 조정에 나아가 상소도 하고 하지 않았나. 그런 정신성을 말하는 것이다. 아름다움은 아름다움대로 귀한 것이고, 추한 모습이라도 그 안에 의미가 있다면 그것도 담아내는 것이 작가정신이다. 그런 의미에서 맑음과 사회 참여 정신 두 가지가 모두 필요하다.

GIST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과학은 물질문명, 문화 예술은 정신문명을 선도해나간다고 볼 수 있다. 분야만 다를 뿐 둘 다 인류 문화의 발전을 위해 기여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과학과 예술은 동양 철학의 음양, 수레바퀴의 양쪽 바퀴에 해당한다.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고 서로 조화를 이룰 때 서로 완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문화예술계는 지금 삭풍이 몰아치는 겨울이다. 순수 전업 작가의 70%가 월 백만 원도 안 되는 수입으로 살고 있다고 한다. 그런 상황이 너무 안타깝다. 문명만 발전하고 정신문화가 없어진다면 사회의 장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가 정책을 펼치는 것도 필요하지만 결국 대중들이 관심을 가져줘야 한다. GIST 학생들은 이 시대를 짊어지고 나갈 주체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큰 안목을 갖고 문화 예술이 함께 발전할 수 있도록 힘을 복돋아주면 좋겠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관심을 가진다면 그것이 사회적인 분위기로 이어질 것이고, 우리 문화예술이 다시 향기롭게 꽃피는 봄이 다가올 것이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