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중립 화장실 그리고 총학생회

0
1817
(화학,16) 김완진

존재하되 드러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사회가 두려워 자신을 부정하고 숨기기도 하고, 스스로가 자신의 신념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좌절하는 이들. 어렵게 자신을 긍정하더라도 주위 사람들에 의해 자신을 부정당하는 사람들이 있다. 성 소수자들이 그러하다.

존재를 부정당하거나 부정하고 불결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도 물론 불쾌하지만, 이들은 좀 더 현실적인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집단 린치, 강간, 감금과 폭행. 가시화되지 않을 뿐 이들이 겪는 현실은 아직도 참혹하다. 이러한 폭력에 가장 노출되기 쉬운 부류는 아마 트랜스젠더, 젠더퀴어다. 태어나 의사에게 지정받은 성별과 자신의 자아상이 다른 이들은 한 가지 고충을 겪는다. 공중화장실 이용이다.

성전환이 완료되기 전까지 젠더퀴어가 느끼는 자신의 성은 다른 사람들이 보는 것과 다르다. 모든 젠더퀴어가 자신의 법적 성별과 신체 유형을 바꾸려고 하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화장실은, 이분법적인 성 관념이 가장 고착화된 장소 중 하나이다.

사람을 두 부류로 나누어 한쪽은 이곳을, 다른 한쪽은 저곳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관념이 지배적인 이 공간에서 젠더퀴어는 어느 쪽을 이용해야 할까? 여전히 성 이분법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는 이들의 자리는 어디에 있는가?

이들은 자신의 정체성이 노출되어 폭력을 당할 위험을 감수하는 대신에 차라리 공중화장실을 이용하지 않는 쪽을 택한다. 이로 인해 이들은 방광염을 비롯한 각종 질병에 시달릴 수 있으며 이는 분명 성 소수자의 삶의 질을 하락시키는 요인이다.

이러한 이유로 성중립 화장실이 필요하다. 성중립 화장실이란, 성별과 관계없이 사용할 수 있는 공중화장실을 뜻한다. 즉, 어떠한 사회적 성별이나 성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라도 이곳을 이용할 수 있다. 2017년 성공회대학교의 학생회는 이와 같은 요구를 인지하여 ‘모두를 위한 화장실’ 운영을 시도했다.

흔한 인식과 달리 성중립 화장실은 ‘양성’이 공용으로 이용하는 화장실이 아니다. 기존 이분법적 화장실을 폐쇄하고 설치하는 것도 아니다. 성중립 화장실은 사회의 성 이분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공간이며 성중립 화장실을 설치하자는 주장은 성 소수자들이 억압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작은 공간을 마련해달라는 호소다.

이곳 GIST에도 성중립 화장실을 설치하자는 의견을 개진하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원은 성 소수자 의제에 대해 이야기 나누기에 좋은 장소는 아닌 것 같다. 소수자 관련 정책을 만들고 사업을 시행할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나 총학생회 집행부, 총여학생회 같은 학생 단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GIST는 성 소수자나 앨라이 스스로 나서기에는 사람들의 손가락질이 더욱 더 두려울 수밖에 없는 작은 사회다.

성 소수자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학내 기구가 이 학교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당장 소수자 개인 대신 움직여줄 수 있는 기구가 없다면 그런 기구가 자연스럽게 존재할 수 있는 풍토라도 조성되어야 할 것이다. 적어도 사회에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억압이 존재하는 한 말이다. 나는 이 역시 총학생회의 역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총학생회는 학생을 대변하는 기구이다. GIST에도 소수자 학생들이 있다. 따라서 총학생회는 소수자 학생들을 인지하고 그들을 향한 눈총과 손가락질을 막아내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총학생회는 학생들을 위해 구성된 조직이다. 총학생회가 소수자 학생들을 외면하는 것은 총학생회의 목적과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다양한 어려움이 있을 것이고 특정 학내 구성원들의 반대에 부딪힐 수도 있다. 페이스북 페이지 ‘카이스트 대신 전해드립니다’ 등에서 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해 퍼레이드를 함께한 KAIST 학생회에 비난이 쏟아진 것처럼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반발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성 소수자를 포함한 여러 소수자들도 총학생회의 일원이다. 소수자를 위해 움직일 수 있는 총학생회 집행부가 재구성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화학,16) 김완진
(화학,16) 김완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