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주부로 살아오신 엄마가 어느새 배우고 싶은 것들이 생겨나고 도전하고 싶은 일들이 생긴다는 것은 나에겐 큰 기쁨이었다. 항상 엄마의 도전을 응원해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집안일 외의 다른 것들에 대해 생각할 때가 온 엄마가 집안일을 걱정하는 게 보여 그저 걱정 말라고 한마디를 건넸다. 무슨 자신감으로 내뱉은 말인지 잘 모르겠다.
교육을 받으시느라 바빠지신 엄마는 집안일에 시간과 힘을 쏟을 수가 없었다. 집안일을 주체적으로 하시던 엄마의 빈자리는 생각보다 컸다. 나는 집 안에 있는 시간이 많았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을 책임질 각오를 했고. 두 달 동안이지만 전업주부로 살아보기로 했다.
첫 번째 과제는 식사였다. 점심은 동생과 단둘이 먹었기 때문에 평소에 혼자서 해 먹던 김치볶음밥과 스파게티 같은 것으로 간단하게 때울 수 있었지만, 가족들이 모두 모여서 먹는 저녁의 경우 준비하는 것이 상당히 까다로웠다. 둘째 날을 넘어선 순간부터는 저녁 메뉴가 큰 고민이 되었다. 평소에 아무 생각 없이 먹었던 저녁 메뉴가 그렇게 큰 고민거리가 될 줄 난 알지 못했다.
일주일에 한 번 장을 보면서 음식 재료를 샀지만, 요리하다 보면 항상 부족한 재료가 생기기 마련이었다. 더군다나 밥을 먹은 뒤 나른함에 설거지를 안 한 날에는 식기가 부족했기 때문에 설거지를 끝낸 뒤 요리를 시작해야 했다. 놀랍게도 이렇게 요리를 준비하는 과정부터 마무리하는 순간까지 2시간이 걸렸다.
식사는 다 같이 했지만, 이 모든 2시간의 과정을 한사람이 감당하는 것이 몸뿐만 아니라 심적으로도 상당히 힘든 일이란 것을 점점 알게 됐다. 밥을 다 먹은 후 자신의 식기를 정리하지 않는 문제로 잔소리를 하시던 엄마는 우리에게 얼마나 작은 부분을 원했던 것인가?
처음에는 빨래를 세탁기에 넣고 돌리면 말끔해진 채로 나오는 줄 알았다. 어떤 것은 세탁기에 돌리면 늘어나기 때문에 손빨래해야 한다는 것, 빨랫감을 색깔별로 구분해서 빨아야 색이 안 물든다는 것, 그리고 속옷과 같은 것들은 세균 제거를 위해 삶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빨래도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빨래하는 날이면 빨래 바구니 앞에 앉아서 옷을 하나씩 꺼내 가며 분류해야 했다.
우리 가족들은 가끔씩 옷 안에 돈을 넣어두기 때문에 주머니가 있는 옷이라면 몽땅 주머니를 뒤집어놔야 했다. 물론 내 주머니에서 가장 많은 물건이 나왔다. 세탁기에서 꺼내온 옷들을 털어 널고 말린 후에 예쁘게 접어서 분류해 옷장 안에 넣어두면 빨래가 끝난다. 가끔 텔레비전을 보던 가족들이 빨래를 개는 것을 도와주면 일이 얼마나 쉽게 느껴지는지 모른다.
점점 집안일에 대한 책임감이 커지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유나 양파, 계란 등과 같은 식자재가 언제 떨어질지 예상되고 평소에는 알지 못하게 늘어나는 음식물 쓰레기, 그리고 방바닥에 붙어있는 먼지도 점점 눈에 들어왔다. 습관적으로 밖에 나갈 일이 생기면 쓰레기봉투를 확인하고 재활용 쓰레기를 챙겨나갔다. 해야 할 집안일을 직접 찾으며 책임감을 느끼고 집안일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지금까지 집안일을 잘 도와주는 아들이었다. 엄마는 그것에 상당히 고마워하셨고 나도 나 자신이 정말 잘하고 있다고 느꼈다. 그렇다. 난 그저 집안일을 잘 ‘도와주는’ 그런 아들이었다. 단 한 번도 직접적으로 책임감을 가지고 집안일을 해본 적은 없었다. 항상 시키는 일만을 해왔고 그마저도 귀찮아서 투덜거린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저 가끔 설거지해주고 빨래를 개면서 ‘요즘 시대에 참 괜찮은 생각을 가졌다’고 자부하던 내가 조금은 부끄럽게 느껴진다. 내 변화에 대해 기뻐하며 친구들에게 자랑하듯 말씀하시는 엄마를 보며 그동안 그러지 못했던 미안함과 지금까지 엄마의 수고에 대한 고마움 등의 감정이 교차했다.
가족이 있음으로써 느낄 수 있는 모든 행복 뒤에는 책임과 의무가 따른다는 것을 어릴 적에는 알지 못했다. 그리고 이제는 집안일이라는 공동의 책임을 엄마 혼자 감당하게 하고 싶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점을 깨닫고 자신의 위치에 대해 책임감을 가지는 어른으로의 한 발짝을 도약하길 깊게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