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 하나에는 수많은 연구 결과가 담겨 있다. 간단한 안정성 검사부터 줄기세포 기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구가 성능을 뒷받침한다. 그리고 여기에 자신의 전공을 살려 화장품을 만드는 과학자가 있다. 이번 호 <동문회 사람들>에서는 ‘(주)바이오에프디엔씨’의 대표로 재직 중인 정대현(04, 생명과학과 박사) 동문을 만났다.
화장품 만드는 생명공학자
정대현 대표는 2004년 생명과학과(현 생명과학부) 박사 학위를 받고, 2005년 화장품 원료를 생산하는 ‘바이오에프디엔씨’를 창업했다. 식물에서 찾아낸 다양한 펩타이드, 재조합 단백질뿐만 아니라 줄기세포로 화장품 원료를 개발하는 연구를 맡아왔다. 그는 바쁜 회사생활 중 연구 업무에 대해 “창업하면 연구에서 멀어진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연구실 시절보다 더 많은 실험을 한다. 물론 옛날보다 실용적인 실험에 조금 집중하는 차이가 있긴 하다”고 전했다.
그는 대학원 시절부터 창업에 뜻이 있었다. 대학원에서 배우는 동안 박사 후 연구원으로 일하기보다 사회 진출을 결정했다. 박사 과정을 마칠 즈음 우연한 기회에 메디포스트 책임연구원으로 입사하게 됐다. 당시 메디포스트는 상장 직전의 바이오 전문 벤처기업으로 여러모로 배울 점이 많았다.
당시 맡은 업무는 줄기세포를 이용한 치료제 개발이었다. 골수 이식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두 번째 수술이 실패하면 치료를 포기하게 된다. 그의 목표는 골수 이식 성공률을 높일 수 있는 줄기세포 의약품을 만드는 것이었다. 바쁜 연구원 생활이었지만 기업의 비전과 목표를 구체화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결국, 몸담았던 회사를 나와 화장품 원료를 개발하는 지금의 연구소를 창업했다.
임상 프로젝트를 맡으면서 지금껏 배웠던 학문을 실용적으로 다루는 요령을 익혔다. 대학원 시절부터 해왔던 연구를 바탕으로 다양한 물질을 개발하는 데 힘쓰고 있다. “화장품 원료에 당장 필요한 원재료가 10가지 정도라면 실제 주문하는 물질은 30여 종류다. 당장은 쓸모없어 보이는 연구지만, 이런 노력이 쌓여 사업의 원동력이 됐다.”
창업을 준비하는 동안 일어났던 황우석 사건으로 고초를 겪었던 일화도 전했다. 당시에 그는 회사에서 근무하며 창업을 준비했다. 6시에 업무를 마치고 투자자를 만나러 다니는 바쁜 생활이었다. 줄기세포 전문 기업에서 핵심 사업을 맡아왔었고, 바이오산업이 장밋빛 그림을 그릴 때였다. 덕분에 생각보다 많은 투자를 받았고, 사업은 순탄하게 풀리는 듯했다. 그런데 황우석 논란이 터지면서 절반 가까운 투자가 취소됐다. 어쩔 수 없이 적은 돈으로 창업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굉장히 논란이 많았던 시기에 바이오 회사를 차렸다. 당시 사건으로 줄기세포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는 약해졌지만, 줄기세포가 화장품 시장에서 크게 활약하리라 믿었다. 무엇보다 황우석 박사는 인간 배아 줄기세포에 집중했지만, 나는 식물 줄기세포의 잠재력을 연구했다는 차이도 있다. 결국, 이런 사회 변화에 맞춰 시장도 능동적으로 변했다고 생각한다.”
“주목받지 못한 연구자라도 인정받을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정대현 대표는 창업을 적극적으로 권했다. 광주과학기술원 학생이라면 열에 아홉 정도는 성공할 수 있는데, 창업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덧붙였다.
“생명과학 분야에서 실제 의약품이나 사회에 직접적으로 쓰이는 연구는 만 개 중에 하나다. 안타깝게 성공에 이르지 못한 연구더라도 모든 노력을 쏟은 연구자가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받을 수 있는가는 또 다른 문제다. 결국, 정말 필요한 하나의 연구를 뒷받침하는 연구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학계가 주목하지 않은 나머지 연구에도 학자 나름의 삶은 있다. 자신의 연구 결과가 핵심적인 논문이 되지 못하고 이론적 배경이 되더라도 하나의 연구다. 그렇다면 사회에서 실용적인 기술로 인정받는 게 더 만족스러운 삶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실용적인 부분을 잘 다루는 과학자라면 사회로 진출하는 것도 좋은 선택이다. 기업과 연구실에서 똑같은 원천 기술을 활용하지만, 몇 가지 절차만 다를 뿐이다.”
또한, 자수성가의 관점에서 창업을 바라볼 것을 조언했다. “내가 연구한 기술과 얻어낸 성과가 소속 기관보다 내게 집중된다는 점에서도 창업을 고려해볼 만하다. 내가 곧 회사의 대주주나 대표이기 때문이다.
연구직으로 취업하면 회사가 특허 대부분을 소유하는 것과는 정반대다. 그리고 벤처기업에서는 연구비를 스스로 책정할 수 있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연구실이다.”
그는 박사 과정에 있는 학생들이 창업하기 좋은 시기에 있다고 말했다. 대학원생은 크게 석사, 박사, 박사 후 사회 진출로 나눌 수 있는데, 적기는 박사를 마친 후라고 설명했다.
“창업을 할 수 있는 시점은 크게 3가지다. 석사에서 박사를 넘어갈 때, 박사를 졸업할 때, 사회생활을 하던 중이다. 다만, 학사 졸업생은 연구하기에 충분한 역량을 갖추기 어렵다. 석사는 2년 정도로 능력을 기르기에 짧은 시간이고, 박사 후 과정 등 사회생활을 할 때는 대개 가정이 있어서 창업하기 쉽지 않다. 그렇다면 박사 학위를 받은 후가 부담도 적고 적절하다.”
특히 박사 과정에서 있는 학생이라면 4년에서 5년 정도의 시간을 통해 학문을 계속할지, 사회로 진출할지 정도는 판단할 수 있다고 전했다. 사회로 진출할 마음을 굳혔다면, 수업 때 몇 가지 부분을 명확하게 짚고 넘어갈 수 있다는 장점도 덧붙였다.
“당시 김재일 교수님 수업에서 펩타이드 합성을 배웠다. 이때 배웠던 고체상합성법 기술은 지금도 사용한다. 더 많은 원료와 더 큰 규모에서 생산하는, 상업적인 활용이 고려되었다는 차이만 있다. 만약 창업을 염두에 둔다면 이런 점을 고려해서 배워야 한다. 특히 기술의 절차나 과정에 집중하면 좋다. 이런 부분을 알고 수업 듣는 것과 모르고 흘려보내는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마지막으로 제도를 통해 학생의 창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불과 이십 년 전만 하더라도 학생의 창업을 좋게 보지 않았는데, 이제 사회도 바뀌고 있으니 창업을 적극적으로 장려하면 좋겠다고 전했다.
“GIST에서 창업을 지원하고는 있지만, 아예 커리큘럼에 창업을 포함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한다. 박사 1, 2년에는 한 명당 벤처기업를 하나씩 소유하도록 제도화하고, 남은 시간 동안 학문과 창업의 두 갈래 중 고민하면 좋겠다. 지금보다도 더 과감하게 창업을 지원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후배에게 조언하는 선배 과학자로서
정대현 대표는 총동문회 부회장이면서, 성공한 벤처기업 사업가로서 후배들에게 해줄 말이 많았다. GIST 총동문회를 어떻게 평가하냐고 묻자, “지금까지 GIST는 대학원 중심으로 돌아가곤 했다. 하지만 최근 학부가 생기면서 동문회를 비롯해 GIST의 조직 자체가 큰 변화를 겪었다. 사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동문회가 명맥만 유지하는 수준이었지만, 학부 졸업생이 나타나면서 실질적인 동문회 활동을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금까지의 동문회는 광주라는 지역적 한계와 이공계의 개인주의, 두 가지 난관에 힘들어했었다. 이제 비교적 애교심 강한 학부생 동문이 생기면서 개인주의적 성향이 많이 해소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그는 ‘지역 사회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GIST가 되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약 20여 년간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세계 최고의 기술력과 연구력이라는 자긍심으로 난관을 헤쳐왔다. 이제 시대가 변하는 만큼 이런 자존심을 낮추고 지역 사회와 함께하는 GIST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