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8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가 방사광가속기를 구축할 부지로 충청북도 청주시를 선정했다. 전라남도 나주시는 청주와 함께 최종후보지로 꼽혔으나 치열한 유치 경쟁 끝에 탈락이라는 결과를 받아들여야 했다. 과학기술계뿐만 아니라 지역사회 최대 화두로 떠오른 방사광가속기에 대해 알아보자.
‘빛 공장’ 방사광가속기
방사광가속기는 전자를 가속해 빛(방사광)을 내는 장치다. 전자가 가속도 운동을 하면 접선 방향으로 전자기파가 생성되는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방사광가속기는 전자빔의 전자를 전기장을 이용해 전자를 가속하고, 자기장을 이용해 전자를 여러 방향으로 휘어 빛을 발생시킨다. 이 빛을 방사광이라고 한다. 이때, 전자가 광속에 가깝게 가속되면 전자가 방사광과 거의 같은 속력으로 움직인다. 따라서 전자가 자기장을 지나며 발생한 빛(광자)은 디텍터에 거의 동시에 도착하는 효과를 일으키며, 이런 효과는 강력한 방사광을 발생시킨다.
방사광가속기는 넓게 보면 입자가속기의 한 종류지만, 일반적인 입자가속기와는 사용 목적이 다르다. 입자가속기는 가속된 입자를 표적에 충돌시켜 새로운 원자핵을 만들거나 기본 상호작용을 연구하는 장치이다. 즉, 입자가속기는 가속된 ‘입자’를 활용하는 장치인 반면 방사광가속기는 가속운동을 하는 입자에서 발생한 ‘빛’을 활용하는 장치다. 방사광가속기는 광원의 한 종류라 생각하면 된다.
방사광가속기의 탄생
방사광가속기의 역사는 입자가속기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최초의 입자가속기는 양성자 가속기로, 1930년에 콕크로프트(Cockcroft)와 월튼(Walton)이 개발했다. 이 입자가속기는 정류기와 콘덴서로 구성된 원통형 전극을 연결하는 방식으로 제작됐다. 이 입자가속기는 교류전류를 정류기와 콘덴서로 직류로 바꾼 뒤, 이 직류전류를 증폭시킨다. 그리고 증폭된 직류전류로 강력한 전기장을 만들어 양성자를 가속한다. 이 입자가속기를 이용해 리튬 원자핵에 양성자를 충돌시켜 알파입자 2개를 생성하는 최초의 인공적인 핵반응을 일으켰다.
이후 사이클로트론, 싱크로트론 등 다양한 형태의 입자가속기가 개발되며 입자물리학의 연구에 박차를 가했다. 그러다 1947년 미국의 회사 제너럴 일렉트릭(General Electric)이 제작한 전자 싱크로트론에서 이론적으로만 예측됐던 방사광이 처음으로 관측됐다. 하지만 당시 방사광은 오히려 입자물리학 연구를 방해하는 요소로 인식됐다. 방사광의 발생으로 가속하는 입자 자체의 에너지는 감소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방사광이 연구에 활용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부터다. 방사광에 포함된 X선은 기존의 X선 튜브 방식으로 발생시킨 X선의 여러 단점을 극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전자 싱크로트론에서 발생하는 방사광을 기생적으로 활용하는 것을 1세대 방사광가속기라고 한다.
방사광가속기의 발전: 더 강력한, 더 가지런한 빛
방사광가속기는 입자가속기에서 유래한 특징 때문에 입자가속기와 유사한 구조(선형가속기, 저장링)를 가진다. 선형가속기는 전자를 강력한 전기장으로 가속하는 장치이고, 저장링은 가속된 전자를 자기장으로 회전시켜 방사광을 발생시키는 장치이다. 방사광가속기는 추가적으로 방사광으로 실험을 진행하기 위한 빔라인이 설치된다.
1980년대에 들어서는 부산물로서의 방사광을 활용하는 것을 넘어서 아예 방사광 발생을 위한 방사광가속기를 짓기 시작했다. 이를 2세대 방사광가속기라고 하고, 방사광 중 주로 X선의 발생에 초점을 뒀다. 최초의 2세대 방사광가속기는 1980년 제작된 영국 데어즈베리 연구소(Daresbury Laboratory)의 SRS(Synchrotron Radiation Source)다. 2세대 방사광가속기는 저장링에서 휨자석(Bending magnet)으로 방사광을 발생시켰고, 발산도(emittance)1) 는 약 100nm-rad였다.
이후 1990년대에 들어서 전자빔 가공 기술의 발달과 함께 발산도를 약 10nm-rad까지 낮춘 3세대 방사광가속기가 탄생했다. 3세대 방사광가속기에는 저장링의 휨자석 사이의 직선구간에 삽입장치(Insertion device)가 설치된다. 삽입장치의 종류로는 위글러나 언듈레이터 등이 있는데, 이들은 주기적인 자석 배열로 구성된다. 전자가 삽입장치를 지나면 이리저리 휘면서 방사광을 방출하는데 그 빛이 서로 모여 휨자석보다 강력한 방사광을 만들어낸다. 이렇게 3세대 방사광가속기는 주로 삽입장치에서 방사광을 얻는다.
2000년대 들어서는 레이저처럼 결맞는(coherent) 방사광을 얻기 위해 4세대 방사광가속기가 개발됐다. 결맞는 방사광은 전자가 언듈레이터 내에서 다른 전자가 만들어낸 방사광에 의해 다시 가속을 받아 증폭되는 원리를 활용해 만들어진다. 이렇게 제작된 4세대 방사광가속기는 원형의 1~3세대 방사광가속기와 달리 선형으로도 제작 가능하다. 4세대 방사광가속기에서 발생되는 방사광은 3세대의 1억~10억 배에 달하는 밝기(휘도)를 가지며, 레이저와 같이 결맞는 빛이다. 하지만 4세대 방사광가속기는 전자 재사용이 불가능하며, 광원을 가속기당 1개밖에 못 만든다는 단점이 있다.
방사광가속기의 무궁무진한 활용
방사광가속기에서 발생하는 빛은 태양광의 수만 배에서 수억 배 정도로 밝다. 그리고 방사광가속기는 방사광의 파장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방사광가속기는 자연과학·공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된다.
생명과학에서는 방사광을 단백질이나 바이러스 등의 구조를 알아내는 데 쓰인다. 단백질 결정에 방사광을 주사하여 회절 무늬를 얻고, 그 무늬로 3차원 구조를 알아내는 것이다. 이를 이용해 신종플루 치료제 타미플루를 개발하기도 했다. 그리고 방사광은 ▲반도체의 전기적 특성을 분석하거나 ▲집적 회로 제작 ▲제올라이트, 그래핀 등 신소재 개발에도 적극적으로 활용된다.
그리고 4세대 방사광가속기의 개발로 더욱 선명하고 정확한 실험 결과를 얻게 되며 방사광가속기는 활용 범위가 더욱 넓어졌다. 그 예로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일어나는 펨토초 동역학 연구 ▲초고속 화학 반응의 세부적인 분석 ▲살아있는 세포 관측 등이 있다. 이 외에도 방사광가속기는 빛을 이용한 다양한 연구에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한국의 방사광가속기: 포항 그리고 청주
한국에서는 1988년 POSTECH에 포항가속기연구소가 들어서면서 이와 함께 방사광가속기 건설이 시작됐다. 이후 1994년 3세대 방사광가속기 PLS(Pohang Light Source)가 준공되며 첫 방사광가속기가 들어섰다. PLS는 2012년 성능을 향상시켜 PLS-II로 재단장했다. 이후 2016년 한국 최초이자 세계 3번째 4세대 방사광가속기인 PAL-XFEL(Pohang Accelerator Laboratory X-ray Free-electron Laser)가 운영을 시작했다.
그 후 올해 5월 8일 두 번째 방사광가속기 들어설 부지로 청주가 선정됐다. 청주 방사광가속기는 4세대 방사광가속기지만 선형인 PAL-XFEL과 달리 원형이다. 청주 방사광가속기 건설 사업은 예비타당성 조사를 거쳐 늦어도 2022년에는 착수될 계획이다. 2028년 청주 방사광가속기의 운영이 시작되면 포항 방사광가속기와의 협력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