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 그날의 재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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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하 훈련을 마친 공수부대원 신순용 씨

5·18의 진실을 얘기하는

계엄군 신순용 씨의 증언

광주항쟁이 일어난 지 40년이 되는 지난 5월 18일, 옛 전남도청 앞에서 광주 시민은 진상규명이 안 돼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같은 시간 현충원에서는 누군가는 “5·18은 폭동이다. 김대중 졸개와 북한 간첩이 일으켰다”고 막말을 했다.

오월의 진실은 무엇일까? 어째서 같은 사건을 이렇게 다르게 보는 것일까? 오늘날 우리의 과제는 무엇일까? 5·18 민주화운동 당시 제3공수여단 11대대 4지역대장의 신분으로 그 날의 광주에 왔던 신순용(72) 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지스트신문은 1980년 5월 광주의 세 가지 장면을 재구성함으로써 40년 전의 진실을 마주할 수 있었다.

강하 훈련을 마친 공수부대원 신순용 씨
강하 훈련을 마친 공수부대원 신순용 씨

S#1. 오월, 모두의 가슴에 남은 피멍
신순용 씨는 3년 전 언론을 통해 광주 시민군 3명을 사살해 암매장했다고 고백했다. 그런 그를 약속 장소에서 기다리면서 우리는 조금 긴장했다. 다시 생각해보면 침묵을 깨고 증언하러 나온 그에게는 더 큰 용기가 필요했으리라. 그에게 증언하게 된 계기를 물었다.

“청문회 때 옆 부대 선후배가 나와서 자기들 위주, 전부 군인 입장에서만 말하는 것이 답답했습니다. 광주 시민으로서는 도저히 용납 안 되는 상황이거든요.”

그는 87년 5공 청문회를 보면서 언젠가 진실을 밝히고 싶었다고 한다. 이후 우연히 5·18 기념재단에서 연락이 와서 보고 들은 것을 말하게 됐다고 했다.

신 씨가 소속됐던 3공수여단은 1980년 5월 20일 새벽에 광주에 내려왔다. 시민들은 그들에게 친절했다고 한다.

“시민들이 모금 활동을 해서 빵, 음료수 같은 거를 트럭 한 차분 있더라고요. 밥도 못 먹고 있는 우리한테 음식을 제공해줘서 요기할 수 있었어요.”

신순용 씨는 자신의 지역대가 광주역에서 3만 명 군중에게 둘러싸인 일을 회상했다. 전날 7공수여단과 11공수여단이 시위를 잔혹하게 진압한 탓에 분노한 시민들은 돌을 던지고 각목을 휘둘렀다. 고심 끝에 그는 메가폰을 들고 “우리 3공수여단은 오늘 광주에 와서 교통정리만 했고 누구 하나 해친 일이 없습니다”라고 외쳤다. 그러자 모세의 기적처럼 길이 터졌다고 한다.

금남로 사거리에 배치된 뒤 지역대장으로서 그는 부하들에게 “주민에게 불편한 이야기를 일절 하지 말고 공손히 대해라. 주민들과 마찰이 있으면 용서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한다는 군인의 본분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3공수여단이 광주외곽봉쇄작전으로 광주교도소에 배치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당시 매복 병사들은 도로를 지나는 시민을 향해 총을 쏘라는 명령을 받았다. 신순용 씨는 부하들에게 사람을 향해서는 쏘는 대신 타이어를 맞춰 차량을 정지시키라고 당부했지만 그 말을 따르는 건 그가 지휘하던 지역대원들뿐이었다. 결과적으로는 많은 사람이 죽었고 그는 명령에 따라 시체를 암매장해야 했다.

아픈 과거를 떠올릴 것이 걱정돼 “계엄군 출신에게도 상처였겠다”라고 위로의 말을 건네자 그는 고개를 저었다.

“광주 사람한테 뼈아픈 일이지요. 시민들이 뚜드려 맞아서 죽고 피해는 다 보고 폭도로 몰려서 말하지도 못했잖습니까? 얼마나 그 속이 답답했겠어요?”

S#2. 오늘, 광주항쟁은 현재진행형
“처음에는 몇 명이 쏘는 것 같아요. 그러다가 ‘드드드득’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총소리가 나고 조명탄 대여섯 발이 발사됐어요.”

신순용 씨는 5월 20일 오후 11시경 한일빌딩 뒷골목에서 대기하고 있을 때 총소리가 들렸다고 말했다. 그는 광주역에서 있었던 최초의 집단 발포를 생생하게 기억했다.

신 씨에게 시민군에 대해서도 물었다. 그는 광주교도소에서 시민군이 총을 쏘는 모습도 목격했다고 대답했다.

“만약 우리를 향해 쐈다면 ‘쉬이익’ 총알 지나가는 소리가 들려야 하거든요. 그런 게 전혀 없었어요. 총구를 위로 두고 쏜 겁니다. 헤치려고 그런 게 아니라 ‘계엄군 나가라’ 이런 의미로.”

그는 시민이 먼저 쐈으면 폭도이고 군이 먼저 쐈으면 학살이라며, 누가 먼저 발포했는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계엄군의 첫 사격이 이루어진 것은 19일. 당시 군은 장갑차 해치를 열려고 하는 학생을 총으로 쐈다. 신 씨는 시민들이 스스로 무장하기 시작한 것은 21일 도청 앞 무차별 집단 발포 뒤이므로 군이 자위권을 주장하는 것은 터무니없다고 말했다.

그는 헬기 사격에 대해서도 말을 꺼냈다. 직접 보진 않아 장담할 수 없다면서도 전일빌딩은 상무충정작전의 목표였고 기선제압을 위해 빌딩으로 근접 엄호 사격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무장 헬기는 대량 살상 능력을 갖춘 무기이기 때문에 군이 이를 동원했다면 변명할 수 없는 시민 학살의 진실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신순용 씨에게 젊은 세대 가운데 온라인상에서 5·18을 폄훼하는 이들이 있다고 말했다.

“민주화의 중요성과 독재의 폐단을 충분하게 가르치지 않으니 자유가 그냥 얻어지는 것처럼 생각하고 말도 함부로 하는 거죠. 민주화에 관한 교육이 부족한 상황에서 몇몇 젊은이들이 뚜렷한 자기의식 없이 부모나 친구가 한 얘기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신 씨에게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에 관해서 묻자 “만약 북한군 특수부대가 있었다면 어떻게 광주 시민이 우리한테 요깃거리를 주고 길을 터주고 할 수 있어요?”라며 되물었다.

“있지도 않은 걸 어떻게 있다고 만들려고 그럴까요? 광주에 갔다 온 나도 그런 사실이 없다고 하는데 왜 터무니없는 말을 지어내는지 모르겠어요.”

그는 광주항쟁을 깎아내리는 것은 자신이 얻을 혜택을 위해 타인, 진실, 자신의 양심마저도 버린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그런 사람 가운데 현역 대령 출신 국회의원도 있다면서 혀를 끌끌 찼다. 5·18 민주화운동은 현재진행형이다. 광주 시민에게 또다시 상처를 입히는 폄하와 싸워야 하는 이 시대 우리의 과제,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S#3 내일, 손을 마주 잡을 그날
신순용 씨는 광주 시민과 군이 힘차게 밝은 미래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사태의 원인이 된 상명하복식의 권위주의적 군대 문화를 해결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그에게서 흥미로운 주장도 들을 수 있었다.

“당시 광주에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부사관이 많았어요. 요즘 베트남전 마을 집단 학살의 실태가 나오잖아요. 그때 상황이 옮겨진 거로 생각해요. 안 해봤으면 절대 못 쏴요. 어떻게 산 사람한테 방아쇠를 당기겠어요. 자기가 이미 경험했으니까 자연스럽게 당겨지는 겁니다.”

그는 세 시간이 넘는 대화 내내 5·18 진상규명을 강조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증언이 필요한데 군인들은 친목 관계를 중요시하기 때문에 나서지 않는다고 말했다.

“동기생과 선후배끼리 다 만나는데 잘못하면 외톨이 되고 배신자 취급받고 그럴 수 있으니까 꺼리는 거지요.”

신순용 씨는 전동인 부여단장으로부터 3공수여단을 대표해 도청탈환 작전에 투입될 것을 권유받았지만 광주에서 학교를 나와 광주를 고향처럼 생각하고 있었기에 이를 거절했다. 그가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총을 든 부대원들이 자기 살려고 그냥 먼저 쏴요. 그런 사고가 일어날 게 뻔하잖아요. 내 가슴이 너무 아플 것 같더라고요. 중대장이 임무를 수행하고 와서 그러더라고. 나오면 그냥 쏴버렸다고요.”

우리는 신 씨에게 유가족이나 부상자를 만난 적 있는지 물어봤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광주교도소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지역대원들에게 차량의 바퀴에만 총을 쏘라고 당부했지만, 사격 잘못으로 소방차 탑승자 가운데 한 명이 관통상을 당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 의무병을 시켜서 치료한 뒤 의무대로 보낸 일이 있었다.

신순용 씨는 5·18 기념재단에 그를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재단은 사람을 찾았지만, 부상자는 만남을 거절했다. 신 씨는 피해자가 살아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만남이 아직 성사되지 않고 있는데 언젠가는 만나지겠죠. 당신이 피해를 봐서 나는 너무나 부끄럽고 대단히 미안하다고 용서를 빌고 싶어요.”

내년에도 오월은 다시 온다. 그때까지 철저하게 진상을 밝혀 광주항쟁을 폄훼하는 사람이 발붙일 곳이 없도록 해야 한다. 그날이 오면 신순용 씨와 그가 만나고 싶다고 했던 부상자가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