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이 없는 문제를 정의하는 주재영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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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의 진로에 대해 이야기하는 주재영 박사

인문·사회 분야도 공부하는
창의적인 인재가 되길

주어진 문제를 정석대로 해결하지 않고, 본인만의 생각으로 문제를 새롭게 바라보기란 쉽지 않다. <지스트신문>에서는 어려운 길을 꾸준히 헤치며 본인만의 삶을 개척한 주재영 동문을 만났다.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 이야기하는 주재영 박사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 이야기하는 주재영 박사

독특한 길을 걸어온 박쥐 같은 과학자
주재영 동문은 2011년 조명광학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지금은 한국광기술원에 재직하고 있다. 그는 독특하게도 자신을 박쥐 같은 과학자라고 소개했다. 박쥐는 새라고 부르기도, 포유류라고 부르기 애매하면서 이런 모습이 본인의 정체성과 닮았다고 했다. 이런 모습은 그의 경력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학부는 기계과를 졸업했는데 박사과정은 전혀 다른 분야인 광학설계를, 박사 이후에는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그는 본인의 폭넓은 지식을 직무에 십분 활용하고 있었다. 그는 “나는 광학설계를 전공했지만 실제로 지금 하는 일은 제조에 더 가깝다. 하지만 제조도, 설계도 잘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많다. 나만의 능력이 업무에 도움이 되는 것이다. 만약 설계에서 문제가 생기면 제조 측면에서 해결할 수 있고, 그 반대도 가능하다. 하지만 이렇게 문제를 해결하려면 중요한 부분을 정확히 어디인지, 무엇이 어긋났는지를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기술과 경영, 그 사이 어딘가에서
주재영 박사는 경영대학원을 가면서 많은 깨우침을 얻었다고 말했다. 그는 “개발한 기술이 제품이나 서비스로 탄생하고, 기업의 실제 수익까지 이어지는 과정에서 기술 자체의 비중은 얼마나 될까?”라고 질문했다. 자신의 기억을 되짚어보며 대학원 입학 때는 90% 정도 차지하리라 생각했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박사로 넘어오면서 70%로 낮아졌고, 경영대학원에 입학하니 기술은 절반도 채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고 전했다. “아무리 좋은 기술을 만들어 기업에 전수해도 좋은 성과로 연결이 안 되는 경우가 있다. 이것이 바로 시장과 경영에 대한 전체적인 이해가 부족하면 생기는 문제”라며 기술 외적인 것에 대한 이해가 중요함을 강조했다.

인생에서 필요한 것은
주재영 박사는 인생에서 중요한 요소로 세 가지를 꼽았다. ‘축적, 선택과 자질’이다. 본인이 스스로 노력하면서 기량을 몸 안에 ‘축적’하고, 노력을 어디까지 할 것이며 어떤 길을 택할지 ‘선택’한 뒤, 본인의 능력과 역량을 분명히 이해하는 ‘자질’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본인의 역량을 철저하게 분석하고, 자신의 노력 여하를 명확히 결정하는 과정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

이러한 판단을 위해선 본인을 객관적으로 계량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런 작업을 어떻게 해왔는지 묻자 “스스로 분야별 점수를 매겨보면 된다. 그러면 어떤 길을 선택할지 어느 정도 판단하기 쉽다”고 조언했다. 본인 역량을 벗어난 분야에서도 피나는 노력 끝에 성취할 수 있지만, 자질을 극복하기 위해선 너무나 많은 노력이 필요하기에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고 전했다.

자신의 역량을 벗어나 모든 걸 다 잘하려고 하는 사람을 향해서도 간단히 조언했다. “웬만해서는 자신의 판단에 따라 역량에 맞는 노력을 기울이라고 말하고 싶다. 사실 본인과 맞지 않는 일을 전부 다 해내기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로 자신이 좋아서 여러 가지를 한다면 그것 또한 본인의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믿는다. 어찌 됐든 본인이 확실히 만족할 수 있는 선택을 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문제 해결 방식에서도 그의 인생관을 엿볼 수 있었다. 그는 대학원 시절의 경험을 이야기해 주었다. “어떤 강의에서 총 3가지 유형의 답안지가 나온 적이 있었다. 총 30명 정도가 수강했는데, 그 중 15명은 A유형을, 14명은 B유형을 제출했고, 단 한 명만이 C유형을 냈다. 이 학생의 답은 오답이었고, 점수는 좋지 못했다. 그 학생이 바로 나였다. 말그대로 문제를 창의적으로 틀렸었다.”

일반적으로 다른 학생들이 푸는 정석이 아니라 자신만의 방식으로 문제를 풀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종종 나쁜 성적을 받는 한이 있더라도 그는 절대 요령을 피우지 않았다. 그는 이 경험을 이야기하며 “남들보다 먼 길을 돌아오는 한이 있더라도 자신 스스로 문제를 정의하고 판단할 수 있는 안목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광기술원과 ‘월화수목금금금’생활
주재영 박사는 현재에 충실하게 살아왔더니 지금의 내가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대학원 진학부터 시작한 많은 선택이 생계와 관련한 선택이었다고 전했다. 그는 박사과정이 끝나갈 때쯤 한 LED 기업에도 합격했었지만, 결국에는 한국광기술원을 선택했다. 다른 쪽에서 제시한 두 배 가까이 되는 연봉을 포기한 선택이었다.

그가 면접 중에 임원과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그는 기술에 대한 임원들의 전반적인 이해가 부족하다고 느꼈다. “만약 이 기업에 들어가서 기술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상상해봤다. 이런 상태라면 벽에다 이야기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직감이 들었다. 그래서 큰 고민 없이 포기했다”며 당시 했던 생각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연봉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었고 그의 아내를 설득해야 했다. 다행히도 아내가 그의 선택을 존중해 주었지만 한 가지 조건을 걸었다. 포기한 그 기업에서 제시한 연봉만큼 한국광기술원에서 받아 오라는 것이었다. 그는 이 조건을 맞추기 위해 일주일을 ‘월화수목금금금’으로 살았다고 말했다. 지금껏 주말도 없이 일했고, 그렇게 일한 덕분에 목표치를 달성할 수 있었다고 유쾌하게 말했다.

자신이 지금껏 맡아온 업무 중 사업성이 엿보이는 기술을 개발하는 사업에 관해 이야기했다. “가장 처음에는 10년 이내에 시장이 필요로 할 기술을 탐색하고, 그중 7년 이내에 시장이 필요로 할 기술들을 분류한다. 그중에서도 5년 이내에 필요하게 될 기술만을 선정해 2~3년 동안 개발한다. 그 이후 1~2년 동안 기업이 그 기술로 이윤을 창출할 수 있도록 돕는다”며 자신의 사업 과정을 전했다.

후배에게 전하고 싶은 말
주재영 박사는 의사소통의 중요성을 하루빨리 깨우치길 원했다. 그는 “의사소통을 잘한다는 말은 영어와 같은 외국어에 능통하다는 뜻이 아니다. 학제적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라고 이해해야 한다. 기술을 이해할 때는, 단순히 과학기술 지식만으로 이해하기보다는 인문 사회 분야와 같은 관점에서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앞으로의 사회는 이런 소양을 갖춘 사람을 원하고 있다”며 인문 사회와 같은 지식도 공부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또한 “문제를 스스로 정의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 우리는 대학원을 졸업하기까지 세상에 떠돌아다니는 문제와 접근 방법을 공부한다. 이런 모습은 계단을 올라가는 과정에 비유할 수 있다. 문제를 하나 풀 때마다 계단을 한 발 씩 올라간다고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계단을 끝까지 올라가서 더 높은 곳을 바라본다면, 스스로 계단을 쌓아가며 올라가는 수밖에 없다. 답이 없는 문제를 스스로 정의하고, 풀어낼 수 있는 창의적인 능력을 갖추길 바란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