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된 폭염 속 방치된 노동자

0
6

매해 여름, 폭염으로 인한 온열질환으로 노동자 사망 사고가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그동안 실효성 부족으로 비판받아 온 제도가 개정되었음에도 여전히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존재한다.

해가 갈수록 증가하는 폭염 강도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해 일 최고기온이 33도가 넘는 폭염일수는 30.1일로 14.2일인 2023년에 비해 2배 이상 증가했다. 특히 2018년 31일로 정점을 찍은 후 감소했으나 2022년부터 지난해까지 꾸준히 다시 증가했다. 기상청은 주요 원인으로 북태평양 고기압의 영향 아래 고온다습한 공기 유입과 강한 일사를 지목했다.

폭염에 따른 노동자의 산업재해도 늘고 있다. 지난해 온열질환으로 산업재해를 당한 노동자는 10년 중 가장 많은 수였다. 질병관리청의 응급실 온열질환 감시 통계에 따르면 2024년 전국 온열질환자는 2018년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다. 온열질환 산재 승인은 42건으로 35건인 2018년보다 늘었다. 이는 산재 승인 제도의 변화와 이에 관한 사회적 인식 강화의 결과일 수 있지만, 기후 위기로 인한 폭염일수와 온열질환자의 증가가 이유일 가능성도 있다. 폭염 속에서 제대로 된 휴식을 제공받지 못하는 노동자의 희생이 여전히 발생하고 있기에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

폭염 속 연이은 노동자 사망 사고

지난 7월 7일, 경북 구미시 한 아파트 공사장에서 23세 일용직 노동자가 지하 1층에 앉은 채 쓰러져 끝내 숨졌다. 그의 체온은 40.2도였으며 당일 낮 최고기온은 37.2도였다. 고용노동부 구미지청은 해당 공사 현장에 전면 작업 중지 명령을 내렸으며 온열질환 관련 안전 조치 사항 등을 준수했는지 조사할 예정이라 밝혔다. 해당 현장은 공사 금액 50억 원 이상으로 중대재해법 적용 대상이다. 더불어 해당 노동자는 하청업체 소속으로 베트남 국적이었기에 이주 노동자의 열약한 노동환경에 대한 지적이 들리고 있다. ‘대구경북 이주노동자 인권노동권 실현을 위한 연대회의’는 성명을 통해 이 사건이 “이주노동자에 대한 구조적 차별과 정부의 무책임이 빚어낸 명백한 사회적 타살이다”라고 규탄했다. 또한, “폭염, 고소작업, 밀폐공간, 야간노동 등 노동의 가장 열악한 조건은 대부분 이주노동자의 몫”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한편 7월 24일, 전북 김제시 하천 인근 고압 가스관 매설 구간에서 배관 수심을 측정하던 50대 노동자가 쓰러진 뒤 결국 숨졌다. 당시 그의 체온은 40도 이상이었으며 김제 지역은 오후 1시 기준 체감온도가 34.3도에 달해 폭염경보가 발효 중이었다. 해당 노동자는 온열질환에 의해 숨진 것으로 확인됐기에 경찰과 고용노동부는 해당 측량업체가 5인 이상 사업장인 만큼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여부를 검토한다고 했다. 민주노총 전북본부는 성명을 통해 이는 “예견된 재난이자 기업의 욕심이 부른 타살”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온열질환 산업 재해 관련 법 및 지침

고용노동부는 지난 6월 23일부터 건설조선물류 등 폭염 고위험사업장 등을 중심으로 「폭염 안전 5대 기본수칙」 준수 여부에 대해 지도감독을 실시했다. 점검 항목은 ▲물 제공, ▲바람그늘 확보, ▲규칙적 휴식(2시간마다 20분 이상), ▲보냉 장구 비치, ▲응급조치 체계 구축으로 이뤄져 있다.

한편 고용노동부는 7월 17일부터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개정안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이번 개정안은 과거 권고에 그쳐 직접적인 처벌이 불가한 사항들을 규칙으로 명백히 밝혔단 점에 의의가 있다. 사업주는 체감온도 31도 이상일 경우 냉방통풍장치, 근무시간 조정, 주기적 휴식 중 하나 이상을 반드시 시행해야 한다. 33도 이상에서는 2시간마다 20분, 혹은 1시간마다 10분 이상의 휴식을 법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이번에 마련된 규칙 개정안이 현장에서 준수될 수 있도록 고용노동부는 불시 지도점검을 강화했다.

그러나 지난 7월 23일, ‘폭염 속 온열질환 예장 국회토론회’에서 현장 노동자의 증언이 쏟아졌다. 그들은 제도적 변화가 있었으나 현장에서는 ‘공정상 곤란’으로 기준이 무력화되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연속공정과 같은 상황에서 제조를 완수하기 위해 휴식이 미뤄지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또한, 휴식 대신 개인 냉방장비 지급으로 대체하는 등의 예외조항이 문제가 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체감온도의 기준을 지적하기도 했다. 실제 건설현장 등에서 노동자가 느끼는 실온은 훨씬 높으며 일부 현장에서는 온도계를 비교적 서늘한 곳에 설치하거나 측정을 하지 않는 사례도 확인됐다. 이에 전문가들은 기온, 습도, 복사열, 풍속 등을 종합적으로 측정하는 WBGT(습구흑구온도지수) 등의 실측 기준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의 개정을 통해 폭염 속 노동자의 근무환경이 서서히 변화되고는 있다. 하지만 실제 노동 현장에서는 여전히 문제가 되는 사항이 많다. 더 이상의 희생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 정부와 사업주는 강력한 안전 의식을 갖추고 노동자 보호에 책임을 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