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9월 6일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동에서 제1회 전국 STS-STP 학부생 학술대회가 개최됐다.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전국의 학부생과 과학학 전공 대학원생이 참여해 관심을 모았다.
‘경계를 넘나드는‘ 학문, 과학학
개회사는 부산대 현재환 교수가 맡았다. 현재환 교수는 한국의 1세대 과학학 전공자로, 사학과 철학을 전공하고 사회 정의로서의 과학에 주목하여 과학학에 입문했다. 그는 “과학학이란 과학 그 자체를 연구하는 대상으로 하는 학문으로, 과학과 사회가 충돌하며 발생하는 사회 및 정치, 역사적 모순을 해결할 수 있다. 1세대 과학학 전공자로서 과학학을 통한 다양한 진로 설계가 가능함을 알려주고 싶다”라며 개회사를 마무리했다.
이공계 대학생의 시선에서 본 과학학
오전 세션에서는 과학계 내 소수자성과 과학사 서술에 대한 발표가 진행됐다. POSTECH 최서연 학생은 과학계 내 여성의 타자화를 비판하며 과학계 내에서 소외된 여성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려는 구조적 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전북대 김서현 학생은 이민자 출신 여성 과학인 김국화 박사의 일생을 소개하며 기존의 과학사 서술이 기득권층의 시선에서 좌우됐음을 비판했다. 이어 “과학사의 생략된 인물을 다시 조명하는 시도가 이어져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과학기술정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제기됐다. 서울대 김준엽 학생은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예시로 들어 과학계와 정부, 사법부의 책임 회피를 지적했다. 그는 “기관 간 소통 단절과 책임 회피는 피해자들에 대한 사각지대를 만든다”라며 상설 과학-사법 연계위원회 등 별도 기구 설립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AI는 인간과 어떻게 공생하는가
GIST에서는 두 명의 학생이 연장에 올랐다. GIST 배연우(전컴, 23) 학생은 일러스트 업계 내 AI의 영향을 다뤘다. 배연우 학생은 일러스트레이터들이 AI에 가지는 반감을 단순히 러다이트 운동으로 해석하기는 어렵다며 개발자 업계와 일러스트레이터 업계의 문화적 차이에 주목했다. 그는 ‘AI와 일러스트레이터’라는 독특한 주제를 선정하게 된 이유에 대해 “최근의 생성형 AI는 인터넷에서 대량의 데이터를 학습하고 인간을 모방해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것에 특화됐다. 다양한 직업을 대체하리라는 인식도 널리 퍼져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런 방식의 데이터 학습과 무분별한 인간 모방, 일자리 대체에 대한 단편적 시각이 사회적 갈등과 우려를 빚어내고 있다. 이에 이미지 생성 AI와 일러스트레이터 간의 갈등도 주목할 필요성이 있어 이러한 주제를 선택했다”라고 밝혔다. 또한 발표 후 그는 학술대회 준비위원이자 발표자로서의 경험에 대해 “올해 한국과학기술학회 전기 학술대회에서 학부생 학술대회가 개최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GIST에서 STS를 연구하시는 하대청 교수님께서 타교 교수님들을 통해 GIST도 함께하자는 제안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어, 이에 GIST 학생 대표로 참가하게 됐다. 이번이 첫 개최였고 단기간에 준비해야 했기에 여러모로 우여곡절이 많았으나 무사히 마친 것에 보람을 느낀다. 또한 전체 학생 수 대비 GIST 학부생들의 일반 참가 비율이 예상보다 매우 높아서 놀랐다”라고 답했다. 또한 이공계생에게 과학은 가치중립적이고 사회와 무관한 것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다양한 사례를 접하며 되려 반대라고 느꼈다며, 문제를 인식했다면 어떤 식으로든 행동해야 한다며 STS를 공부하는 의미에 대해 당부의 말을 전했다.
GIST 유승민(생명, 22) 학생은 최근 EU에서 제정한 EU AI Act를 주제로 발표를 진행하며, 해당 법안이 사회적 약자에게 부당한 인권 침해를 가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한 EU의 AI 관련 법안이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인권 침해 위협을 간과하였다는 점을 알리며 대중에게 무분별한 AI 기술 사용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웠다. 유승민 학생은 “AI 기술이 사회적 약자인 난민에게 제약 없이 사용됐을 때 심각한 인권 침해가 일어날 수 있다는 여러 연구 및 시민단체들의 주장에 공감했다”라며 해당 주제를 발표하게 됐다고 전했다.
발표 후 인터뷰에서 그는 “학우들이 자신이 공부하는 과학기술이 사회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도 생각하는 안목을 길렀으면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21세기는 눈부신 기술 발전의 시대이지만 그 산물인 AI는 사회적 약자를 짓밟는 식민적 사회구조를 강화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이처럼 과학기술 발전이 인간을 자멸시킬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시민사회 내에서 강해진다면, 시민들은 더 이상 무책임하게 기술을 양산하는 과학자들을 반기지 않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그는 과학을 배우는 학문적 태도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내가 공부하는 과학 지식이 어떻게 생산되는지, 그리고 어떻게 합리화되고 있는지, 이것이 정말 ‘의심할 수 없는 진리인지’ 재고하는 시간도 필요하다”라며, 과학 내의 질문들에만 얽매이지 않고 과학이라는 틀 자체에 대한 의구심을 가져보기를 권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과학은 분명 흥미로운 학문이며, 우리 삶의 윤택함을 제고하여 준 학문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과학기술을 덮어두고 절대적인 진리로 받아들일 때, 그리고 시민사회의 담론이 과학기술의 발전에만 매몰될 때, 우리가 많은 이들의 고통을 놓치게 된다”라며 과학도로서의 태도에 대해 조언했다.
현업 과학학 전공자들의 이야기
마지막 세션에는 현 과학학 전공 대학원생과 학부생 간 Q&A 세션이 마련됐다. 해당 세션에서는 과학학을 전공으로 선택한 계기, 진행 중인 연구에 대한 질문부터 연구로부터 겪는 개인적인 어려움, 극복 방법까지 진솔한 대화가 오갔다. KAIST 과학학 대학원생 A 씨는 “다른 이공계 전공에 비해 글을 쓰고 읽는 시간이 많다. 일주일에 거의 1, 000쪽에 달하는 분량의 논문을 읽고 정리해 가기도 했다. 하지만 덕분에 내 의견을 글로 표현하는 법, 조리 있는 글을 쓰는 능력은 많이 좋아졌다”라며 과학학 전공 대학원생의 생활에 대해 전했다.
또 다른 대학원생 B씨는 “학생과 연구원 사이 애매한 신분이 가장 힘들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 힘든 건 담아두지 않고 주변 동료에게 털어놓는 것이 가장 좋은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무거웠던 고민이 사실 모두가 앓고 있었던 것일 수도 있다”라고 연구 중 어려움을 극복했던 경험에 대해 말했다.
오늘날 과학 기술은 더 이상 문명 발전의 수단에만 머물지 않고 경제, 정치, 역사 등 사회 구조에 밀접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이번 학술대회를 계기로 사회 가치로서의 과학에 관심을 쏟아보는 것은 어떨까.
1. STS: Science and Technology Studies(과학기술학)의 약어
2. STP: Science and Technology Policy(과학기술정책)의 약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