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7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과학기술 인재 확보 전략 및 연구개발(R&D) 생태계 혁신 방안을 발표했다. 정부는 ‘국가과학자’ 제도 신설과 대학원생 장학금 수혜율 확대 등으로 우수 과학기술 인재를 확보할 것이라고 밝혔다.
과학 인재 유출, 연구 생태계 강화로 대응
한국은 글로벌 기술패권 경쟁 속에서 큰 위기를 겪고 있다. 한국은행은 과학 인재 유출을 한국 경제의 기술 혁신과 성장 약화 요인으로 보고, 11월 3일 ‘이공계 인력의 해외 유출 결정요인과 정책적 대응 방향’을 공개했다. 해당 자료에 따르면 국내 체류 중인 우리나라 이공계 석박사급 연구자 1,916명 중 42.6%가 향후 3년 내 해외 이직을 고려하고 있다. 특히 20~30대의 해외 이직 고려 비율은 70%에 달한다.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과학 인재 위기의 근본 원인으로 ▲의대 쏠림 현상 ▲과학의 학문적 어려움 ▲과학기술 전공 후 안정적인 일자리에 대한 불안감을 꼽았다.
이에 정부는 이공계 인재 육성부터 연구개발(R&D) 평가 시스템, 해외 인재 유입을 위해 과학자가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연구 생태계를 강화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특히 정부는 우수 인재가 혁신적 성과를 창출하고 그 성과가 다시 인재를 유인하는 선순환 체계를 구축하고자 한다.
정부의 대책 발표
지난 11월 7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대전 국립중앙과학관에서 열린 ‘다시 과학기술인을 꿈꾸는 대한민국 국민보고회’에서 과학기술 인재 확보 전략 및 연구개발(R&D) 생태계 혁신 방안을 발표했다. 먼저 우수 과학기술 인재 확보를 위해 ▲과학자 위상 ▲AI 차세대 인재 ▲해외 인재 측면의 정책을 제시했다. 과학자 위상을 높이고자 새로운 이공계 롤 모델인 국가과학자 제도를 신설한다. 또한 AI 인재 확보를 위해 과학기술-AI 융합인재를 신규 양성하고 지역 과학기술원의 AX(인공지능 전환, AI Transformation) 혁신을 적극적으로 장려할 계획이다. 해외 인재 정책은 2030년까지 해외 인재 2,000명 유치와 유학비자 개선 등을 통한 유학생 정착 지원을 목표로 한다.
안정적인 연구개발 생태계 조성을 위해서 ▲이공계 학생 ▲청년신진 연구자 ▲재직 연구자를 위한 정책을 발표했다. 먼저 대학원 장학금 수혜율을 기존 1.3%에서 2030년까지 10%로 높인다. 또한, 이공계 대학원생에게 지원되는 모든 종류의 연구생활장려금을 관리지원하는 한국형 Stipend를 기존 35개교에서 2026년까지 55개교로 확대할 방침이다. 한편 청년신진 연구자를 위해 공공부문 일자리 확대와 창업 등 민간일자리 창출 정책도 추진하며 재직 연구자를 위해 기초연구 확대, 주요사업 연구 기간 연장과 학연 겸직을 활성화하고자 한다.
이 외에도 R&D 예산을 정부 총지출 대비 5% 수준으로 확대하고 연구 몰입을 위해 PBS(Project Based System)의 단계적 폐지 등을 추진한다. PBS는 연구 과제 중심 운영 제도로 정부출연연구기관이 인건비와 연구 운영비 상당 부분을 개별 연구 과제 수주를 통해 확보하도록 한 제도다. 이는 경쟁을 통해 연구 성과를 높인다는 취지로 시작됐으나 최호철 한국화학연구원 단장은 PBS가 연구의 자율성을 심각하게 저해했다며 지적하기도 했다.
국가과학자 제도란?
국가과학자 제도는 국내 이공계 인재 유출이 심화하자 범부처 차원에서 마련한 과학기술인 영예 지원제도다. 정부는 지난 11월 24일 열린 제1회 과학기술관계장관회의에서 세계적 수준의 연구 업적을 보유한 과학자공학자를 ‘리더급 국가과학자’, 성장 가능성이 높은 박사 학위 취득 7년 이내의 산학연 초기 연구자를 ‘젊은 국가과학자’로 선발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2030년까지 매년 20여 명씩 5년간 약 100명을 리더급 국가과학자로 선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리더급 국가과학자에게는 대통령 인증서와 연 1억 원의 연구활동지원금이 제공되며 지원금은 연구비뿐 아니라 대외활동비 등으로 자유롭게 쓸 수 있다. 이들은 R&D를 비롯한 국가 과학기술 정책 설계에 기획 및 평가 위원으로 참여하며 이들에 대한 공항 패스트트랙 등의 예우도 부여된다. 젊은 국가과학자는 노벨상과 같은 세계적 과학상 수상 가능성이 큰 분야나 AI 등 국가 주력 산업과 직결된 분야 연구자 중 매년 수백 명 단위로 선발할 예정이다. 이들에게는 대통령 펠로우십과 국가과학자지원금을 제공하는 등 리더급 국가과학자로의 도약을 지원한다. 정부는 ‘국가과학자’ 제도를 안정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이공계지원특별법 개정 등을 추진할 예정이다.
한편 이 제도가 2005~2008년 운영됐던 ‘국가석학 제도’와 큰 차이가 없다는 평가도 있다. 당시 정부는 노벨상에 가까운 과학자를 키우기 위해 4년간 총 38명의 국가석학을 선정해 연 1억~2억 원의 연구비를 지원했지만, 2008년 과학기술부와 교육인적자원부의 통합 과정에서 사실상 폐지됐다. 이후 지원받던 학자들은 연구 기반을 잃었으며 해외로 떠나기도 했다. 이 때문에 국가과학자 제도가 과거의 사례를 되풀이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국가과학자 제도에 대한 전문가 의견
이와 관련한 전문가의 시각을 듣기 위해 전북대 과학학과 신유정 교수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신 교수는 과학기술학과 과학기술정책을 전공한 학자다.
Q: 과학기술학(Science and Technology Studies, STS)을 전공하신 학자로서 국가과학자 제도를 접했을 때 어떤 생각이 드셨는지 궁금합니다.
A: 국가과학자 제도는 분명 상징적으로는 국가가 나서서 과학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과학기술인의 사회적 위상을 높이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고무적입니다. 그러나 과학기술학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즉 과학은 어떻게 발전하는지, 과학자들은 어떤 방식으로 활동하는지, 그것이 분야마다 나라마다 어떻게 달라지는지와 같은 문제를 공부해 온 사람으로서, 이 제도가 가질 실질적인 효과에 대해서는 여러 우려를 하고 있습니다.
Q: 국가과학자 제도는 대통령 인증서, 1억 원가량의 연구비 지원 등과 함께 파격적인 예우가 동반됩니다. 그만큼 선정 과정에도 관심이 쏠릴 것 같은데, 교수님께서는 어떤 기준이 가장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A: ‘세계적인 연구 성과’를 판단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문제입니다. 분야마다 연구 성과가 쌓이는 방식과 주기가 다르고, 논문 수나 IF 지수와 같은 양적 지표로는 혁신적인 연구 성과를 가려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20명을 선정한다고 하는 순간 이런 어려움을 안고 가는 셈입니다. 분야 간 차이를 어떻게 조정할지, 경력과 나이에 따른 편차를 어떻게 고려할지, 상징적인 부분을 제외하고 이런 선택적인 예우 방식이 지금의 과학 생태계에 정말 필요한지 한 번 고려해 볼 필요는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아직도 과학계의 ‘히어로’를 원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지금 필요한 것은 한두 명의 ‘영웅’을 발굴해 특별히 대우하는 방식이 아니라, 평범한 수많은 과학 종사자가 안정적이고 행복하게 연구할 수 있는 환경과 지원을 만드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Q: 정부는 이 제도가 ‘의대 쏠림’을 완화하고 이공계 진학을 장려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과연 이 제도가 과학 분야의 인력 유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책이 될 수 있을까요?
A: 이런 상황에서 이 제도가 의대 쏠림을 완화할 수 있을지는 솔직히 의문입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과학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얼마나 많이 만들어낼 수 있는가, 그리고 그것이 지속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드는가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제도는 파격적인 예우나 연구비 같은 물질적 보상을 통해 사람들을 유인하려는 경향이 강해 보입니다. 그러나 과거 과학자 사례들이 보여주듯 그것만으로 과학을 선택할 충분한 이유가 되기는 어렵습니다.
Q: 미래 과학기술에 기여할 이공계 학생들이 국가과학자 제도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조언 부탁드립니다. 단순히 과학기술 지원 제도의 등장에 긍정적으로 보는 것을 넘어 이 제도가 한국 사회에 끼칠 영향에 대비해 어떤 생각인 가치관을 가져야 할까요?
A: 최근 이러한 논의 자체는 고무적입니다. 하지만 학생들이 이 제도에 과도한 기대를 하기보다는, 국가 제도 속에 어떤 과학·과학자 이미지가 투영되어 있는지 비판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실제 과학·과학자의 모습, 현장이 어떠했는지 관심을 두고 살펴보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를 통해 과거의 다양한 과학자들이나 연구자들이 어떤 동기와 가치로 활동했는지 들여다보고, 나는 어떤 일을 하고 어떤 가치를 가지고 살아가고 싶은지 성찰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과학기술정책 분야 전문가의 우려가 있는 만큼 국가과학자 제도가 앞으로 한국의 과학 인재 확보에 영향력 있는 효과를 얻을 수 있을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이번 정책을 통해 한국이 과학기술 강국으로 거듭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