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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GIST 과학인의 대화> 1차 신청[~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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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GIST 과학인의 대화: 경계를 넘어 다른 생각을 잇다>

지스트신문X인문사회과학부X빠띠

11월 14일, 지스트신문, 인문사회과학부 그리고 사회적협동조합 ‘빠띠’의 협업으로 <2025 GIST 과학인의 대화>가 개최됩니다.

참가 신청 링크(일시: 11월 14일 오후 4:30~6:30, 참가 대상: GIST 대학생 및 대학원생) https://docs.google.com/forms/d/e/1FAIpQLSebCQvnwjkb4RQijJel_pbv1v_yww9A7lZjb05sG9g1Z7Ht5w/viewform

‘나만 이렇게 생각하나? 다른 친구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인터넷에선 다들 극단적인 이야기만 하는데, 실제로도 그럴까?’ 같은 의문, 가져보신 적 없으신가요? <GIST 과학인 대화>는 다양한 주제에 대한 건강한 공론장 마련을 목표로 기획된 행사입니다.

디지털 기술로 민주주의 미래를 꿈꾸는 사회적협동조합 빠띠는 이제껏 많은 시민 대화를 이끌어왔습니다. 그중에서도 은하투표라는 시스템을 활용해 나와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과 1대 1대화를 매칭해주는 이 독특한 공론장은 한양대에서도 몇 차례 마련되어, 뜻 깊은 결과를 남기기도 했습니다(행사 진행 참고: https://talks.campaigns.do/posts/mbtqGY8).

이에 학내 민주주의를 위해 언론 활동을 하고 있는 지스트신문과 GIST의 인문사회과학적 소양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인문사회과학부가 빠띠와 협력하여 이번 행사를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GIST 학부생과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과학인’으로서 고민해볼 질문들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생성형 AI로 쓴 실험 보고서, 내가 쓴 보고서라고 할 수 있을까?”

“기후위기는 과학기술로 해결할 수 있을까? 아니면 더욱 심화될까?”

“과학자는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켜야 할까, 아니면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과학고처럼 소수의 과학기술인재를 양성해야 할까, 아니면 가능한 모두에게 동등한 교육 환경을 제공해야 할까?”

 

이밖에도 관심 있는 주제를 적어주시면 추후 질문 목록에 반영하고자 하며, 이처럼 과학기술, 민주주의, 평등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은 분들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11월 14일 오후 4시 30분~6시 30분 동안 진행되는 본 행사에서는 케이터링이 제공되니 참고해주세요.

 

참가 대상: GIST 재학 중인 대학생 혹은 대학원생

참가 인원: 선착순 50명

1차 신청 기간: 10월 30일까지(선착순 50명 모집이 완료될 경우 조기 종료될 수 있으나, 취소 인원에 대한 2차 신청이 11월 중에 진행될 예정입니다.)

 

기타 문의: bae-yeon-u@gm.gist.ac.kr

필요 이상 (제4회 광주과기원 문학상 – 산문 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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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 이상

신재룡(전컴,19)

난 필요 이상의 돈을 너에게 쓰는 버릇이 있지.
난 필요 이상의 맘을 너에게 주는 버릇이 있지, 어찌 보면 잘못된 버릇이 있지.
– <필요이상>, 천재노창

말보로의 끝은 밝게 타올랐다. ‘불 보듯 뻔하다’라는 말이 괜스레 나온 게 아니듯이 그 불빛이 얼마나 밝고 명확했는지는 구차 설명하지 않겠다. 명석은 마음이 답답할 때면 담배에 불을 붙이고 가만히 지켜본다. 불을 붙일 때를 제외하고는 절대 입에 물지 않는다. 그건 일종의 신조다. ‘사방이 어두워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릴 수 없을 때, 마음속에 불빛 하나를 킨다’는 명목의 의식이지만 실제로 효과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스물이 되어 처음 자기 의지로 들인 습관이다 보니 정이 든 것이다. 의식을 진행하는 때는 보통 사람들이 담배를 피우는 것과 비슷한 타이밍이다. 잠이 오지 않을 때, 시간이 붕 뜰 때, 가지각색의 순간에 명석은 담배에 불을 붙인다. 굵은 담배 한 개비가 환한 불 속에서 사라져가는 것을 보면 마치 시간이 멈춘 것 같다. 주위가 일시 멈춤 상태가 되고 모든 시간이 연기를 거슬러 불 한 점으로 흘러 들어가는 듯한 환상. 담배를 잡은 손마디가 뜨거워지면 그건 환상에서 빠져나와야 한다는 신호다. 발밑에 떨구고 밟아서 확실히 마무리하기 전 마지막으로 불씨를 본다. 꺼져가기 직전까지도 불은 밝고 명쾌하다. 담배 연기가 매캐하게 코를 찌른다. 보통 때라면 명석의 의식은 여기서 끝난다. 한 개비 이상을 한자리에서 태우는 것은 드문 일이다. 명석 스스로가 담배 연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까닭도 있고 단순히 시간을 때우는 용도라기엔 가격도 부담되기 때문이다. 5살 때쯤 할아버지 담배 심부름을 할 때는 가격이 엄청나게 쌌던 것 같은데 지금은 한 갑이 5,000원에 육박한다. 3분 남짓의 의식 한 번에 250원꼴이다. 집에서 받은 용돈으로 모든 걸 해결해야 하는 대학생 신분인 명석에겐 꽤나 사치인 셈이다. 그런데 오늘은 한 개비에서 그치지 않는다. 줄담배라도 피우는 것일까?

명석은 몇 분 전 이별 통보를 받았다. 그것도 전화로. 얼굴을 보고 얘기하자는 요지의 카톡을 보내봤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 않은데?’라는 답장이 돌아왔다. 이런, 씨발. 1년 동안 같이 먹은 밥이 몇 낀데 이렇게 얼굴 보기 힘든 사람인 줄은 여태 몰랐다. 사람이 어떻게 한순간에 돌아설 수 있지. 헤어진 것보다도, 일방적 통보 후에 보이는 지영의 전혀 다른 면모가 더 놀라웠다. 감탄스럽기까지 했다. 헤어지자는 말 한마디를 중심축으로 그녀의 성격은 180도 뒤집어졌다. 다신 명석을 볼 일 없다는 데까지 계산이 미치자 완전히 남으로 대하는 것 같았다. 하긴 전 남자 친구, 그것도 자신이 일방적으로 이별을 고한 전 남자 친구는 남보다 껄끄러울 테다. 이별 범죄도 간간이 일어나는 마당에 명석은 눈엣가시 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요즘 같은 시대에 살아남으려면 저 정도 처세술은 기본 소양이지. 연애의 마지막 순간에 명석은 그녀가 더 존경스러워졌다. 왠지 지영은 취업도 더 잘할 것 같다. 갑자기 샘이 난다. 여자애들은 인간관계에 대해서 어디서 따로 교육이라도 받아 오는 것일까? 그들은 마음속에 스위치라도 있어서 정이란 것을 켜고 끌 수 있는 게 아닐까 의심스럽다. 어제의 적이 오늘은 친구가 될 수 있고, 오랜 친구가 내일 또 적이 될 수도 있는, 그녀들의 복잡한 사정이 무서워졌다(실제로 명석은 지영이 흉보던 친구에게서 필기 자료를 살갑게 빌리는 걸 목격하기도 했다). 그런 사회적 지능이 만약 타고나는 것이라면 남자들한테 너무 불리하다. 헤어진 이유도 제대로 못 들은 명석은 이 사건을 철저히 관찰자 시점으로 접근했다. ‘21년 6월 13일 22세의 유지영 양은 같은 19학번 동기 김명석 군에게 이별을 통보했다.’ 이런 헤드라인을 접한 정도의 느낌일 뿐, 아직 명석은 그 파란 안에 들지 못했다. 알려지기만 하면 박종헌(명석의 대학에서 공신력 있는 소식통이다) 선정 1학기 최고의 스캔들이 될 사건의 중심에 서 있다는 것이 실감 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명석이 애먼 담배만 계속 태우며 어떠한 감정도 배제한 채 지영에 대한 순수한 평가를 내리고 있는 까닭이다. 이는 현명한 선택이라 할 수 있다. 어차피 고민해 봤자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상대 쪽에서 대화를 거부한 순간 헤어진 이유, 정확히 말하면 차인 이유를 명석이 밝혀낼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 그건 지영만 아는 채 영원히 묻힐 비밀이다. 아마 지영도 1년 뒤 6월 13일이 오면 까먹을지도 모른다. 아니 백 퍼센트 까먹을 것이다. 20대 젊은이들의 사랑이 끝나는 데엔 별 이유가 없는 법이다. 파스타를 국수처럼 먹는 것만으로도 정떨어질 수 있는 나이이기에.

지영에 대해 계속 생각하다 보니 지영이 보고 싶어졌다. 시각은 11시쯤. 일과는 끝났지만, 하루를 마무리하기엔 애매한 시각이 그들이 주로 만나던 때였다. 대학생들은 진작에 술을 마시러 나갔고, 대학원생들은 아직 랩실에서 풀려나지 못해 학교는 한적했다. 명석과 지영은 텅 빈 캠퍼스를 함께 거닐곤 했었다. 배꼽시계가 제때가 되면 울리듯 11시가 되자 지영을 부르고 싶어진 것이다. 교정에 핀 꽃들 사이를 한 번 걸어주고, 한적한 벤치를 찾아 캔맥주를 나눠 마셔야 하는데. 이러라고 비싼 돈을 주고 널 산 게 아니야. 명석은 울적해져 담배만 나무랐다. 잠시나마 차였다는 사실을 뇌에서 걷어내 준 게 바로 그 담배인데 말이다. 명석은 차였다는 사실이 스멀스멀 몸에 스며드는 것을 느꼈다. ‘헤어지자. 더 이상 니가 좋지 않아.’ 사투리 섞인 지영의 말이 주위를 맴돌다 이제야 고막에 닿은 듯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기침이 멈추질 않았다. 벌써 반 갑 분량을 태운 것이었다. 안 그래도 담배 연기에 예민한 명석은 눈물 콧물을 뺐다. 담배는 이만하면 됐다. 진득한 술이 당겼다.
명석은 방으로 돌아와 냉장고 문을 열었다. 안은 익숙한 상표의 맥주들로 가득 차 있었다. 성인이 되어서 처음 마셔본 맥주인 블랑부터, 무슨 맛인지 모를 기네스, 이제는 매그너스에게 최애 맥주 자리를 넘겨준 써머스비까지. 편의점의 세계 맥주 칸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했다. 언제든지 마시고 싶을 때 바로 마실 수 있게 명석이 신경 써서 채워놓기 때문이다. 치킨 냄새가 물씬 풍긴다. 룸메이트 종헌이 어제 먹다 남은 야식을 대충 쑤셔 넣어둔 탓이다. 음식물은 빨리빨리 치우라니까. 종헌은 물건을 아무렇게나 두는 버릇이 있다. 방을 더럽게 쓰는 것은 명석도 그러려니 하지만 맥주들의 소중한 보금자리를 함부로 대하는 것은 참을 수 없다. 하물며, 이상한 구석이 눈에 띄었다. 써머스비는 항상 짝수 개로 쟁여놓는 것이 명석만의 규칙인데 어째 한 캔밖에 안 남아 있는 것이었다. 종헌, 이 자식이 몰래 빼먹은 것이 분명했다. 지영과 산책을 할 때면 써머스비를 항상 두 캔씩 챙겨나갔었는데. 지영을 떠올리니 눈물이 핑 돌았다. 오늘은 화낼 기운조차 없어. 명석은 힘없이 냉장고 문을 닫았다. 오늘은 맥주로 안 될 날이다. 하는 수 없이 기숙사 1층으로 내려와 묶어둔 자전거를 풀었다. 명석의 학교는 외진 곳에 있어 뭐 하나 사려 해도 먼 길을 가야 한다. 지금 시각은 11시 23분. 편의점 말고는 다 문을 닫았을 시간이다. 아직 밤까진 여름이 미처 닿지 않아, 선선한 바람이 명석의 얼굴을 스쳤다. 적막한 교정을 노란빛 가로등들이 간간이 밝히고 있다. 꼭 달들이 떠 있는 것 같지 않아? 지영은 얼룩진 가로등들이 박힌 아스팔트 길을 달들이 비추는 거리로 바꾸는 여자였다.

명석은 습관적으로 정현에게 통화를 걸었다. 몇 번을 걸어도 정현은 받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명석은 신경질이 났다. 자전거를 멈춰 세우고 다시 한번 전화를 걸자 ‘삐’소리와 함께 ‘지금 거신 전화는 고객의 사정에 의해 당분간 착신이 정지되어 있습니다’란 문구가 흘러나왔다. 명석은 정현이 지난달 10일에 군대에 간 것을 떠올렸다. 머리도 직접 밀어줬었는데 여태 까먹고 있었던 것이다. 명석은 여자한테 차이면 정현에게 전화를 건다. 정현은 연애 한 번 못 해봤지만 꽤나 도움이 되는 조언을 해준다. 다 미디어의 힘이다. 보고 들은 게 많으니 연애고자도 남의 연애엔 척척박사다. 명석은 마지막 통화를 떠올렸다. 그때 명석은 지금과 같이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땐 사귀기도 전에 차였다는 것과 명석의 얼굴이 눈물범벅이었다는 점이다. 명석도 나름 경력이 쌓인 셈이다. 고백하기도 전에 차인 것들까지 경력으로 쳐준다면 명석도 차이는 데에는 나름 전문가다. 정현은 남들과 달리 현실적인 조언을 해준다. 이론만 빠삭한 전문가는 냉철한 진단을 내릴 수 있는 법이다. 경험해 보지 않아야만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분야가 세상엔 몇몇 있고 사랑도 그중 하나다. 정현은‘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세상의 반이 여자야’ 같은 식상한 조언은 절대 하지 않았다. 그의 처방은 뭐랄까, 알보칠 같았다. 바르면 죽을 듯한 고통을 주지만 효과는 직방이다. 자기도 발라봤다면 절대 추천할 수 없을 텐데. 중간 과정은 생각지 않고 장기적으로 가장 빨리 낫는 길을 제시해 준다.
“어차피 고통의 총량은 똑같아. 네가 감당해야 하는 양은 정해져 있단 말이지. 내 말 이해해?”
“꺼윽, 꺽….”
“그래, 그렇게라도 대답해. 괜히 안 슬픈 척 청승 떨지 마. 차라리 오늘 다 쏟아낸다고 생각해. 술이 왜 있는 줄 알아? 추출하라고 있는 거야, 감정을. 꽃들에서 향기를 빼낼 때 알코올에 녹여서 빼내잖아, 그거랑 비슷해. 술을 부어 뇌에. 푹 잠길 정도로. 그리고 울어. 몸에서 나오는 모든 물에서 술 냄새가 진동하면 정상이야. 충분히 절었다는 뜻이지. 그다음 날 깨면 싹 가셔 있을 거야. 그리움이든 슬픔이든 뭐든.”
술을 다 마시고 나면 뭐 해, 라고 묻고 싶었지만 그럴 필요는 없었다. 일단 시키는 대로 하고 나니 어느새 침대 위였다. 종헌이 옆 침대에서 째려보고 있었다.
모든 기억을 담은 듯한 똥을 쌌다. 한 달 남짓 불탔던 사랑의 끝이 이런 것이라니. 익숙한 구린내는 없고 술에 전 내만 났다. 저 안에도 미생물들이 살고 있을까? 내장들이 한바탕 소독된 듯했다. 리스테린으로 헹구고 난 입안이 그렇듯 화한 느낌만 나고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입을 열어봤다. 아으, 아. 울음도 더 이상 나오지 않는 듯했다. 정현의 조언에 반신반의했었지만 놀랍게도 괜찮아졌다. 정현이 왜 연애를 못 하는지 명석은 의문이었다.
명석은 정현의 가르침을 떠올리며 페달을 힘껏 밟았다. 12시가 되어가는 풍경은 한적하다 못해 을씨년스러웠다. 가장 가까운 편의점을 가는 데에도 꽤나 먼 길을 가야 한다. 학교에서 상점가로 가려면 작은 호수가 있는 공원 하나를 지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같이 걸을 누군가가 있을 때는 분위기 있는 곳이 되지만 혼자에겐 불필요한 동선 낭비일 뿐이다. 노란 간판이 얼핏 보이기 시작했다.
“‘미니 스탑’, 잠깐 멈춰서 들렀다가 가는 곳이라니 이름이 찰떡이지. 이런 데를 그냥 지나치는 것은 실례야.” 지영은 술에 취해 돌아오는 길이면 미니스탑에 들려 메로나를 먹었다. 잠에서 덜 깬 명석은 그냥 그런대로 수긍했다. 지영은 술자리가 잦았고 그때마다 명석은 데리러 나갔다. 몇 시에 술자리가 파하든 그런 건 명석에게 상관이 없었다. 지영이 메로나를 먹는 모습은 졸음을 참고 나가서라도 볼만한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평소 지영은 똑 부러지는 성격에 무뚝뚝한 편이다. 그런 지영도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는 때가 있었는데 바로 술이 들어갔을 때였다. 애교 섞인 목소리로 지영은 명석을 불러내었고 명석은 흔쾌히 달려 나갔다. 지영이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어 한다는 것, 그리고 그때 자신을 찾는다는 것이 그는 내심 뿌듯했다.

잭다니엘 허니? 이건 너무 달았었다. 얼핏 들어본 것부터 난생처음 보는 알코올들까지 온갖 술이 명석을 반겼다. 요즘 편의점은 너무 잘 되어있다니까. 학생 가에 위치했음에도 미니스탑은 대형마트 못지않게 양주 코너의 구색을 갖춰 놓았다. 이렇게 많은 종류의 술을 대면하는 것은 명석도 처음이었다. 대학생의 지갑 사정은 어딜 가나 비슷하고 소주라는 싸고 좋은 친구가 있으니까 말이다. 여럿이 모였을 때 싸게 마시기엔 소주만 한 게 없다. 그런데 오늘은 그저 그런 날이 아니었다. 명석은 빠르게, 더 빠르게 머리를 후려쳐 줄 몽둥이를 찾고 있었다. 매가 약이다. 정현의 가르침을 몸소 실현하며 나름대로 덧붙인 결론이다. 이렇게 필요 이상으로 지영을 떠올리고 아파하는 것은 머리가 멀쩡하기 때문이다. 명석은 도수가 높은 술을 필요로 했다. 선배들이 가끔 비싼 술이라며 양주를 들고 오는 경우가 있었기에 몇몇은 안면이 있었다.
“명석아, 형이 아껴둔 거야. 한번 마셔봐. 원래 양주는 한입에 들이키는 거야.”
비싼 거라길래 뭣도 모르고 꿀꺽꿀꺽 삼켰던 기억이 떠올랐다. 혀부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혀뿌리 뒤로 여러 굴곡을 지나 밑으로, 밑으로 향하는 알코올. 식도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게 된 날이었다. 체온보다 도수가 높은 알코올이 지나가는 길마다 불을 놓았기 때문이다. 맛은 끔찍했지만, 그에 대한 기억은 쉬이 증발해 버리고 배부터 화끈하게 올라왔던 온기의 여운은 오래 남았다. 오늘은 그 온기가 필요했다. 스미노프, 발렌타인, 잭다니엘, 시바스 리갈… 명석은 시바스 리갈을 쥐어 들었다. 이름부터 살벌하니 싹둑 필름을 끊어줄 것 같았다. 가격도 이름만큼 살벌하긴 했지만 아무렴 어떠랴. 딱히 술을 담을 데가 없어서 한 손엔 술병을 들고 한 손으로만 자전거를 모는 모양새가 되었다. 꼭 오늘만 사는 폭주족이 된 기분이었다. 돌아가는 길은 나올 때보다 한층 더 쓸쓸했다. 당장이라도 뚜껑을 따 들이키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명석은 일찍 죽고 싶진 않았다.

대학은 12시에도 밝았다. 아직도 꺼지지 않은 실험실의 불빛들을 보면 명석은 갑갑해진다. 곧 밤낮이 따로 없는 삶을 살게 될 자신의 미래가 그려졌다. 최대한 졸업 후의 생각은 미뤄두고 있었다. 줄지어 세워진 연구동 사이를 지나가기 싫어 명석은 대학원 기숙사 쪽으로 돌아갔다. 길은 좀 돌아가는 셈이지만 지금은 어떻게든 시간을 때울 수 있으면 좋다. 잠은 저만치 달아났고 밤은 길다. 페달을 몇 번 굴리자 도서관이 보인다. 콜로세움의 축소판 같은 모양새라 멀리서도 눈에 띈다. 로마 시대부터 갇혀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은 몰골의 사람들이 나온다. 도서관이 문을 닫는 지금 시간엔 피로에 전 사람들이 기숙사로 이어지는 행렬을 볼 수 있다. 야밤의 행렬은 일종의 종교의식 같기도 하다. 밤낮 없이 틀어박혀 수행하는 삶은 종교인과 크게 다를 바 없지. 저렇게 살고 싶지는 않지만 명석은 그들에게 묘한 존경심을 느꼈다. 무엇에 흠뻑 빠져있다는 것이 부러웠다. 사람은 어딘가 기댈 데가 필요하다. 그러나 종교와 학문, 그 무엇도 명석이 기댈 만한 곳은 아니었다. 도서관 뒤편에는 교수 아파트로 향하는 작은 샛길이 하나 나 있었다. 그 길을 따라가면 어린이들을 위한 놀이터와 정자가 있다. 이곳도 명석과 지영의 산책 포인트 중 하나였다. 지영은 신기하리만큼 항상 바빴다. 학교 축제 팸플릿을 디자인하고 대기 예측 프로그램을 짜고 화합물의 반응속도를 계산했다. 그동안 명석은 어린이 도서관 구석의 빈백을 차지하고 있었다. 원래 중학생 이상은 출입 금지이지만 사서분들께 인사성 밝은 명석은 예외였다. 만화책을 읽으며 나른한 오후를 즐기다 바쁜 지영을 꾀어 그네를 타는 것. 그것도 나름의 데이트였다. 둘은 대학원생들을 위한 아파트를 보며 기숙사를 빨리 탈출하자고 킬킬댔다.
“우리 랩실에 결혼하신 대학원생 선배가 있는데 완전 대박인 게 뭔 줄 알아? 딱 한 번 연애를 했는데 결혼까지 했다는 거야. 근데 상대분도 똑같이 첫 연애라는 거 있지. 대학원 동기였다는데 5년 동안 사귀다가 그대로 결혼까지 골인. 서로가 첫사랑이래, 대단하시지? 로맨틱하지 않아? 그래도 우린 대학생부터니까 우리가 이겼다, 그치.”
명석은 아무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잔을 두 잔 준비해서 도서관 뒤편의 정자로 나섰다. 잔이라 해봤자 종이컵 하나와 위스키 뚜껑 하나뿐이지만. 자기 앞에 한 잔, 정현의 몫으로 한 잔. 정현의 잔을 따르고 세 번 돌려야 하나 고민했지만 그 정도까진 하지 않기로 했다. 첫 잔은 원샷이라 배웠다. 혀에 스며들지 않고 코팅되어 겉도는 나무 향. 먹어선 안 될 것을 먹은 느낌이었다.
“지금과 같은 마음을 녹이려면 적어도 40도 정돈 되어야지. 우리 체온이 36도야. 소주? 17도밖에 안 돼. 그 정도로 취하겠냐. 이게 또 마시다 보면 달아.” 명석은 정현을 따라 하며 정현의 잔도 입에 털어 넣었다. 여기에 있었다면 그는 분명 이렇게 말했겠지. 정현은 술이 셌다.

하루는 명석이 물었다. 너는 그렇게 마셔도 안 취해?
“머리가 좋아서 그래. 멍청해지는 데 더 많은 알코올이 필요한 거지.” 정현은 당연한 걸 묻는다는 듯이 답했다.
정현은 명확한 음주론이 있었다. 어찌 보면 인생관이라고도 할 수 있다. 술은 그가 삶을 대하는 태도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명석아, 우리가 술을 왜 마실까?” 그가 귀한 걸 알려준다는 듯 능글맞게 웃으며 물었다.
“흠, 기분이 좋아지니까?”
“반은 맞고 반은 틀렸어. 기분이 좋아지는 건 맞는데 그 이유가 핵심이야. 왜 행복해질까? 알코올이 분해되고 뭐 어쩌고…. 다 때려치우고, 술을 마시면 멍청해져. 행복의 비밀은 바로 거기에 있는 거야. 술을 한 번이라도 마셔 본 사람들은 이걸 본능적으로 느낄 거야. 하지만 나서서 인정하진 못해. 없어 보이잖아. 꼭 자기가 멍청하다고 고백하는 것 같고. 그러니까 다들 얼버무리지. 술을 왜 마셔요? 스트레스가 풀려서요, 분위기가 좋아서요 등 이상한 답변만 하고 있는 거야. 인정하고 나면 행복해질 텐데 말이야. 요즘 다들 어떻게든 더 똑똑해지려고 아등바등하잖아. 학교, 학원, 독서실, 이 세 곳만 뺑뺑이처럼 돌다가 대학에 입학해서 좀 노나 싶었더니 다시 취업 준비. 취업해서도 자기 계발 한다고 새벽반 다니면서 영어 단어 외우고 있어. 왜 그런지 알아? 어려서부터 듣고 자란 말이 공부만 잘하면 잘 먹고 잘 산다였거든. 똑똑해지면 행복해지겠지란 생각이 몸에 밴 거야. 실상은 그 반댄데 말이지. 그게 비극의 시작이야. 출발지에서 반대로 뛰는데 어떻게 도착하겠어. 대대로 멍청이들은 행복해 왔어. 시대마다 가장 똑똑한 사람들이라던 철학자들이 고뇌하고 밤샐 때, 발 뻗고 잘 잤다고. 인생 어려울 게 없거든, 멍청하면. 그래, 아테네에서 제일 똑똑하다던 소크라테스 죽이고 걔네가 후회하면서 슬퍼했을까? 아니, 전혀. 쾌락의 도시에서 누릴 거 다 누리다 죽었을걸. 행복해지는 거 쉬워 술 마시고 멍청해지면 돼. 옛말 다 틀린 거 없다고, 인생사 어느 곳이 술잔 앞만 하겠냐.“
“야, 옛말에는 술을 멀리하란 말이 더 많지.”
“그런 젠체하는 놈들을 경계해야 해. 뭘 모르는 거거나 아니면 알면서도 부정하는 거거나, 둘 중 하나거든. 걔네들 레퍼토리야 뻔하지. 말끔한 이성으로 블라블라. 듣기야 좋아 그럴싸하잖아. 그런데 좀만 생각해 봐 인간이 각성 상태로 있으면 행복한가. 대부분의 상황은 바꿀 수 없는 경우가 많아. 그럴 땐 오히려 자신을 무뎌지게 하는 게 현명한 거야.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잖아. 술은 그걸 가능케 해. 어느 곳에서나 행복해질 수 있잖아. 봐봐. 만약 똑똑한 게 그리 좋은 거라면 술이 아니라 다 같이 커피를 마시며 회식을 했겠지. 각각 낮의 음료와 밤의 음료로 떡하니 구분되는 이유가 뭐겠어. 무의식적으로 다 안다고. 사람은 심리적으로 매력적인 건 밤에 즐기고 싶어 해. 여기엔 논쟁의 여지가 없어. 솔직함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그때는 아리까리 했는데, 지금 보니까 네 말이 맞는 것 같다.”
“자식, 내가 언제 틀린 말 한 적 있냐.”
명석은 1인 2역을 하며 술자리를 이어 나갔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자신의 입에서 정현이 늘 하던 말들이 술술 튀어나오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정현이 할 말을 상상하며 한 잔씩 주거니 받거니. 둘이 나눠 마시고 있다고 생각하니 취기도 반쯤 덜 오르는 듯한 착각도 들었다. 술은 비교적 빠른 템포로 사라져 갔다. 명석은 혀에서 얼얼함을 느꼈지만, 처음의 역함은 느끼지 못했다. 카라멜 색 병이 3분의 1쯤 맑아졌을 때, 잠시 술을 멈추고 배에서부터 올라오는 온기를 느꼈다. 바람은 한결 쌀쌀해졌지만, 밑에서부터 느껴지는 든든한 열기와 조화를 이뤄 노천탕이 따로 없었다. 사람들이 왜 굳이 일본까지 온천을 찾아갈까 명석은 의문이 들었다. 바다 건너온 위스키 한 병이면 비행깃값을 대신 할 수 있는데. 그들이 멍청한 것인지 이런 자신이 멍청한 것인지 혼란스러워졌다. 정현의 몫으로 담배 한 대에 불을 붙였다.
“그래서 왜 헤어졌는데.” 정현이 담배를 한 모금 내뱉으며 물었다.
그 질문은 담배 연기와 함께 명석의 얼굴 앞에서 흩어졌다.

“니는 내가 좋아서 만나는 게 아니라, 기댈 사람이 필요해서 만나는 것 같아.”
명석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벽지에 그려진 이상한 달팽이 무늬의 개수를 헤아리며 다음 말을 기다릴 뿐이었다. 크게 틀린 지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총 41개. 한쪽 벽면에 41개씩이니 이 방에는 대략 164개의 달팽이가 있구나. 명석이 계산을 끝마친 후에도 지영은 아무 말이 없었다. 통화가 끊긴 것인지 확인해보았지만 여전히 통화 중이었다. 명석은 숨죽인 채 머리를 굴려보았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무시무시한 정적은 1분이 채 안 가서 끝났지만, 체감상 몇 시간이나 지속된 것 같았다. 통화가 끝난 후에도 명석은 한동안 침대에 널브러져 있었다. 종헌의 목격담에 따르면 꼭 햇볕에 바짝 마른 달팽이 같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165마리의 달팽이가 있었던 거군. 명석은 계산을 수정했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오늘 지영이 이별 통보를 해 온 것이었다.
“나는 진짜 잘해주고 싶었는데. 실제로도 정말 잘해줬고. 술 마실 때마다 데리러 가, 가고 싶은데 있다 하면 같이 가줘, 힘들어할 때면 항상 옆에 있어 줬다고. 동기가 그렇게 중요한가. 이런 행동들이 사랑이지 뭐가 사랑이겠어. 필요해서 만나는 게 잘못이야? 아니, 그 전에 그렇지 않은 사랑이 있긴 해? 다들 필요해서 만나는 거지. 걔도 마찬가지야. 솔직해질 필요가 있어. 심심하고 무료하니까 연애를 하는 거지. 홀로서기 힘든 사람들끼리 기대는 건 당연한 거라고. 사랑도 결국은 실용적인 거야. 다이소에서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는 거랑 똑같다니까.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매장에서 그나마 가장 나은 거로 대충 때우는 거지. 물론 이상적이게 운명적 만남으로 천생연분을 만나면 좋겠지만, 그거 기다리다간 아무도 못 만나고 늙어버릴걸. 그럼 아무도 책임져 주지 않는다고. 동물들이 이거저거 복잡하게 재는 거 봤어? 달팽이들 봐봐. 걔네는 남녀도 안 따져. 아주 독한 놈들이지. 적기가 되면 아무나 잡고 일단 시도하는 거야. 상대도 어차피 자웅동체잖아. 너 말대로 너무 똑똑해져서 생기는 문제인 거 같아. 우리도 똑같이 동물인데 다르면 얼마나 다르다고. 여기서도 사랑, 저기서도 사랑하니까 진짜 특별한 게 있다고 환상에 빠져 있는 거 같아. 책임져 주지도 않으면서 매체가 다 베려놨어. 완벽한 짝, 애초에 그런 건 없어. 그 순간에 그렇게 믿는 것뿐이지”
“병신, 그럼 그렇게 말이라도 해보지 그랬어.” 정현은 한 개비를 마저 피워 물었다.
“어떻게 하냐 거기서? 마지막 한 마디만 남겨놓은 애한테. 조금이라도 그런 뉘앙스로 말했다간 그 자리에서 바로 방아쇠를 당겼을걸.” 명석은 지영이 수트를 쫙 빼입고 자신의 가슴팍에 총구를 겨누고 있는 모습을 상상했다. 어떤 변명으로도 마음을 돌릴 수 없는 냉철한 킬러. 이런 상상 속에서도 지영은 예뻤다.
“소설을 읽는데 주인공이 이렇게 말하더라. ‘귀찮아서 끊었어. 밤중에 담배가 떨어졌을 때 괴로운 거, 뭐 그런 것들 때문에. 어떤 것이든 그렇게 사로잡히는 걸 좋아하지 않거든.’ 느낌이 빡 오더라고. 내가 필요한 게 바로 이런 거다. 밤에 자다가도 뛰쳐나갈 만큼 간절한 게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그렇게 사로잡혀 있는 동안에는 생각이 없어지잖아. 지금에야 넌 군대로 도망갔지만, 알잖아, 혼자 기숙사 생활하면 생각이 많아지는 거. 도서관, 기숙사만 오가고 기껏 하는 일탈이라고 해봐야 늘 가는 술집에 가는 게 다야. 친구들 만나서 웃고 떠들고 해봤자 그때뿐이고 말이야. 그렇게 2년을 보내고 나니까 여기서 대학원까지 졸업할 내 모습이 훤히 그려져. 앞으로의 5년도 지금과 별 다를 바 없겠지. 그게 참 숨 막히더라. 밍밍한 미래가 뻔히 그려지니까. 다들 이렇게 늙어가는구나 싶기도 하고.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 보면 시간이 너무 무겁고 길어. 어쨌든 감당해야 하는 거잖아. 다들 이런 감정을 잠시나마 모른척하려고 필요 이상으로 무엇에 의존하는 게 아닐까. 연약한 게 아니라 어쩌면 당연한 거지. 그렇게라도 의미를 부여해야 버틸 만해지니까. 나도 담배라도 피워 볼까? 매일 술에 절어 있을 수는 없잖아.” 명석은 호박색 액체를 입에 털어 넣었다. 이젠 맛도 잘 느껴지지 않아 상표만 없었다면 술인지도 몰랐을 것이다.
“담배 연기도 못 맡는 게 무슨.” 정현도 자신의 잔을 들었다. 아니, 명석이 정현의 잔을 비우려 했다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어쨌든 정현은 여기에 있지 않으니까. 그때 허벅지 부근이 차가워져 명석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높은 도수의 술이 결국 종이컵에 구멍을 낸 것이다. 명석은 자신의 장도 이렇게 구멍이 나진 않았을까 내심 걱정됐다.

‘21년 10월 입영(21-7회차) 공군병 모집 안내’
가장 빨리 가면 10월에 갈 수 있었다. 그래, 혼자 이게 무슨 청승이냐. 여자 친구랑 헤어졌다고 혼자 1인 2역을 하며 헛소리하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군대로 가자. 명석은 군대든 어디든 학교에서 도망쳐야겠다 싶었다. 20대의 초반이 이렇게 무미건조해진 건 분명 지리적 요건 때문이다. 혈기 왕성한 나이에 한적한 곳에 틀어박혀 있으니 머리가 어떻게 되는 것이다. 무료할 정도의 여유, 산책하기 좋은 공원, 특별한 이벤트 없이 흘러가는 평온한 일상. 은퇴 후에 이런 삶을 살면 성공한 건데. 이 조건을 그대로 킵해두었다가 노후에 꺼내서 쓰면….
지영과 연락을 주고받던 초기에도 이런 생각을 자주 했었다. 시간을 떼어다 원할 때 붙여 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평소엔 가는 줄도 모르고 있는 듯 없는 듯 흐르던 시간들이 답장을 기다리는 동안엔 지독히도 썼다. 실제로 연락하는 데 드는 시간은 몇 분 남짓이지만 그 사이 텀, 짧게는 15분에서 길게는 3시간까지 이어지는 기다림이 명석의 혼을 빼놨었다. 공부는커녕 핸드폰에서 손을 떼기 힘들어 웹툰만 보며 시간을 때우는 심정이란. 사랑은 시간을 텁텁하고 씁쓸하게 만들었다, 꼭 커피처럼. 명석은 이런 인내의 시간을 싹둑 잘라다 마음이 평안하고 행복할 때 붙여 쓰고 싶었다. 이를테면 사귀고 난 후에 데이트할 때라든지 말이다. 그게 얼마나 배부른 생각이었나 명석은 실감했다. 이제는 그때마저 그리워진 것이다.
그 어떤 기다림도 없어진 지금, 시간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무겁게 짓누를 뿐이다. 시간이 흘러도, 멈춰도 달라지는 것 없으니 구태여 시계를 보지도 않는다. 맹물의 밍밍함이 구역질 난다는 지영의 말이 이해가 간다. 억지로 삼켜야만 하는 물 500cc. 술자리에서 술이 약한 친구는 벌주 대신에 속칭 ‘물고문’이라 해서 맥주잔을 물로 가득 채워 마셔야 했다. 물을 자주 마시던 명석은 그게 왜 벌칙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커피와 술을 즐겨 마시기 시작한 후에야 맹물의 이질감을 알게 되었으니까. 어떤 목적도 없이 흘러가는 시간은 맹물같이 심심했다. 명석은 지영과의 씁쓸했던 밀당마저도 그리워졌다. 각성한 상태이나 기다리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못 하던 그때와는 상황이 반대다. 어떤 흥분도 일지 않고, 커피를 마시고 난 후의 입안처럼 말라만 가는 지금, 명석은 그때의 기다림이라도 간절했다.

술기운이 돌면 아무리 무거운 것도 무거운 줄 모르고 들 수 있다고, 머리가 반쯤 벗겨지신 외삼촌이 그랬다. 그 대가로 머리카락을 가져가는 건가요? 묻고 싶었지만 삼촌은 한 번도 지각한 적 없는 사실인 듯하여 입을 꾹 다물었다. 삼촌은 외가에서 유일하게 힘을 쓰는 직업을 가지셨고, 또 유일하게 모근이 힘을 다한 인물이었다. 머리만 풍성했으면 결혼하기가 더 쉬울 텐데, 중얼거리며 거울 앞에서 부드러운 브러쉬로 번들거리는 정수리를 자극하는 장면을 어머니께서 발견한 이후로 외가에서 탈모는 금기어가 되었다. 술이 힘을 빌려주는 좋은 친구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배로 이자를 쳐서 뜯어가는 사채업자였다는 것을 삼촌이 깨닫는 것은원치 않았다. 이미 머리카락이란 오랜 친구를 잃었는데 술까지 잃을 이유가 있으랴. 적으로 시작했든 동지로 시작했든 끝엔 오래 볼 놈이 동지인 법이다.
술김인지 죽음도 한결 가벼웠다. 핸들이 이렇게 가벼운데 사고가 날 수 있을까, 더 무거운 술병을 들고도 운전을 했는데 말이다. 첫 데이트 때 3차가 끝나갈 무렵, 지영은 명석을 붙잡고 울어댔다. 너는 절대로 술을 마시고 자전거를 타지 말라고. 스무 살이 되어 같이 처음 술을 마신 친구가 자전거를 타고 돌아가다 크게 사고가 났다면서. 알겠다, 절대 그럴 일 없을거라 몇 번이나 확언한 뒤에야 풀려날 수 있었는데 그 후로 술을 마시면 그녀가 붙잡고 늘어졌던 오른팔이 유독 무거워 자전거를 탈 수가 없었다. 그러나 지영은 이제 어느 팔에도 매달리지 않는다. 아무렴 어떠랴. 페달을 양발 가득 밟으며 아스팔트 백색 점선을 요리조리 오갔다. 학교에 둔덕이라 할 것은 지영의 가슴밖에 없었고 그 외엔 모두 평평하여 바퀴만 조금 굵다면 내리지 않고 어디든 달릴 수 있었다. 입을 크게 벌려 바람을 마셨다. 송진 가루가 연신 점막을 때려 혀와 입천장이 텁텁했다. 뭐든 입안 가득 채우는 바디감을 느끼고 싶었다. 세포벽을 지지는 강한 도수의 주정이든, 떫어서 온 혀가 말리는 에스프레소든. 빈 입에선 엿같이 악취만 났다.
의존할 곳 없는 시간은 역하다. 줄줄 흘러가긴 하지만 어떠한 향도 없는 것이 불쾌하기만 하다. 맹물보다 씁쓸하지만 분명히 향을 지닌 커피를 찾게 되는 것처럼 떫은 긴장감이라도 느끼고 싶다. 약간의 기대감이 동반된다면 더할 나위 없고. 향이 그러하듯 이내 흩어져버린다 해도 말이다. 커피와 술, 둘 다 맛만 따지면 결코 맛있다고 할 수 없다. 쓰고 떫고, 어찌 보면 고통에 가까운 것을 준다. 대신 합당한 흔적도 같이 남는다. 시간을 이겨낸 것에 대한 보상이랄까.

오전 7시. 피시방에서 돌아오면 학교는 평온했다, 명석이 밤을 새운 것과는 별개로. 산뜻한 공기를 마시며 산책하는 사람들과 학식을 먹으러 향하는 대학원생들이 아침을 분주하게 채우고 있었다. 27인치 네모 속 화려한 색감의 세상에서 헤엄치다 한순간에 캠퍼스로 건져 올려진 기분이란. 급격한 온도 차에 명석은 어지러웠다. 바다에서 막 끌어올려진 물고기처럼 당황스러웠다.
“이럴 때 아니면 언제 해보겠냐?” 민재는 명석을 꼬셨다. 때는 1학년 1학기, 아직 학교생활에 대한 로망이 다 죽지 않을 때였다. 민재와 명석은 마침 목요일 영어 교양만 들으면 그 주의 수업이 끝이라 시간이 남아돌았다. 이대로 기숙사에 돌아가 봤자 유튜브를 보며 킬킬대는 게 다였기에 명석은 구미가 당겼다. 피시방에서 게임을 주구장창하는 것과 밤을 새운다는 두 특별한 경험이 합쳐져 딴에는 둘이서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일탈이었다. 밤은 단순히 어두워진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품고 있고 그때 잠에 들지 않는다는 것은 특별한 일처럼 느껴지니까. 그런데 다음날 마주한 것은 지독할 정도로 평범히 흘러가는 일상이었다. 허무했다. 일탈에서 오는 쾌감은커녕 으레 뒤따라오는 죄책감마저 들지 없었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바란 것은 아니지만 어떻게 변하기라도 하겠지 기대했던 것이 무색하게 어제와 다름없는 하루였다. 어떻게 해도 벗어날 수가 없구나. 명석은 피시방에서 밤을 새운 첫날부터 부질없음을 느꼈다.
그렇다고 그 이후로 피시방을 안 간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한 번 밤을 새우고 나니 그보다 적게 게임을 해서는 만족할 수 없었다. 매주 목요일 오전 수업이 끝나면 부리나케 자전거를 끌고 피시방으로 향했다. 부대찌개 라면에 꼬마김밥을 시켜서 국물까지 마시면 다음 날 아침까지 배도 고프지 않았다. 게임을 하는 건지 잠을 자는 건지 그 경계가 애매해질 때쯤 국밥을 먹고 돌아오는 게 명석과 민재의 루틴이었다. 게임에서 지면 죽는다는 마음가짐으로 전투를 벌이고 침대에 누워서도 잠이 들기 전까지 게임 영상을 보았다. 물론 모니터나 핸드폰 액정에 퀭한 눈이 비칠 때면 자괴감이 들었다. 그런데 어떻게 하나. 마땅히 할 것이 없는데.
끝물엔 하기 싫어도 피시방에서 밤을 새울 수 밖에 없었다. 일요일에 ‘이번 주까지만 가자’며 으름장을 놓아도 다음날이면 ‘일주일은 화요일 기준으로 새는 거지’하고 또 피시방으로 향하는 명석과 민재였다. 놀랍게도 둘 다 알고 있었다, 끊어야 한다는 것을. 소모적이고 게임으로 먹고 살 것도 아니니까. 그러나 당장의 공백감을 막는 게 더 급했다. 게임에 빠져있는 동안에는 닥친 순간순간에 급급해 딴생각이 들 틈이 없었고 기숙사에 돌아와선 따가운 눈과 뭉친 목 근육을 느끼며 바로 잠에 들었다. 몸과 정신이 피곤하면 무어라도 했다는 착각이 드니까. 적어도 미래에 대해 고민할 할 여백의 시간은 없어진다는 게 좋았다.
잠시라도 멈추면, 삶에 아무 이유가 없다고 인정하는 것으로 생각이 이어졌고 이는 너무 괴로웠다. 아무런 뒤끝이 없는 맹물은 마시면서도 의문이 든다. 맹물은 단순히 견디는 것이다. 오래 살려면 커피나 술이 아닌 건강에 좋은 물을 마셔야 한다. 그러나 그래봤자 연장되는 것은 견뎌야 하는 또 다른 여백일 뿐이다. 이 시간이 끝나고 무엇이 남을지를 생각하면 숨이 막힌다.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커피와 술을 마시면 그나마 향과 각성, 진정이 머무는 동안은 이후에 대한 생각을 비울 수 있다.
결국, 피시방을 끊게 된 건 둘의 의지 때문은 아니었다. 민재가 연구실에 들어가 인턴을 시작하고 명석도 지영을 알게 되면서 흐지부지된 것이다. 지영은 명석이 망각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피시방이 그랬듯…. 그러고 보니 지영도 명석의 의지로 끊긴 것이 아니었다.
생각이 계속되는 걸 보니 덜 마셨네. 화끈거리던 몸이 어렴풋이 식은 것이 느껴졌다. 초조함과 행복. 이완과 긴장. 취기와 똘기.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말만 많아지는 게 생각이 새나. 누수가 있는 세탁기처럼 물이 하염없이 입으로 들어오는 것만 같다. 누구에게 전해지지 않고 혼잣말로 새는지도 모르고.

툭. 360도가 돈 이후에도 – 기하학적으론 당연한 일이지만 – 명석은 아직 살아있었다. 초등학교 때 배운 낙법은 어디 가지 않았다. 찌그러진 채 페달이 두어 바퀴 더 돌다 이내 조용해진 자전거와 달리 명석의 심장은 쌕쌕거리며 방금까지의 RPM을 유지했다. 보행로 사이 무릎 높이로 박힌 돌덩이에 앞바퀴를 박고 몸과 함께 술기운이 훅 날랐다. 다행히 옆 잔디밭에 착지해 다친 곳은 없었다. 눈 앞엔 야밤의 소란으로 뾰족뾰족 성난 바위가 보였다. 명석은 다른 어디도 아니라 바로 눈앞에 있음에 감사했다. 조금만 앞으로 날아갔으면 성질 사나운 바위가 가랑이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으리라. 지영이 좋아하는 아보카도처럼 무른 그곳이 근 3초 사이 과카몰리가 될 뻔했다. 죽음은 상상했어도 가는 길목의 일부였을지 모를 불구를 떠올리진 못했다. 주머니를 뒤졌다. 짜그라진 말보로 갑과 별개로 예닐곱 개비의 담배들도 무사했다. 명석은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얼른 한 개비를 꺼내어 뽀뽀했다. 담배를 줄곧 피우시면서도 58세의 나이에 득남했던 할아버지를 떠올리며.

명석은 60대가 된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기 힘들었다. 연금과 노후 대비, 이런 키워드들은 아직 형태는 잡히지 않았지만 가끔 명석을 두렵게 했다. 이렇게 살다가 굶어 죽지는 않겠지? 21세기 한국인데 말이야. 명석은 고개를 휘저었다. 일단 군대나 해결하자. 이때 가면 공군은 21개월이니까 23년 7월에 나오겠네. 손가락으로 두 번 꼽아도 다 세지 못하는 개월 수가 실감 나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갇혀 있는 걸 못 견뎌 하는데 그 긴 시간을 버틸 수 있을까? 전역하고 나서도 문제다. 24살에 3학년을 마저 다녀야 한다. 가까운 미래도 먼 미래도 뿌옇긴 마찬가지였다. 그 어느 곳에도 머리를 들이밀고 싶진 않았다. ‘입영 신청’ 마지막 버튼만을 남겨 놓고 손가락이 쉬이 움직이지 않았다. 안개가 자욱이 핀 길이 펼쳐졌다. 저 멀리 누가 있는지도 모를 정도다. 옆 편으론 막 취직했는지 머리를 곱게 묶고 출근하는 지영의 모습이 비쳤다. 명석이 머뭇거리는 사이, 매캐한 연기 너머로 꿈틀거리는 형체가 보였다. 머리를 민 정현이었다. 명석의 이름을 정겹게 부르며 어서 와, 손짓하고 있었다. 훠이훠이, 저리 가 군바리야 부정 탄다. 명석은 병무청 앱을 꺼버리고 꺼먼 핸드폰 화면을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민머리의 자신이 비친듯했지만, 다행히 찰랑거리는 앞머리는 그대로였다.
이렇게 미루다 보면 대학원에 가게 될 텐데. 명석은 대학원에 가는 것도 자신이 없었다. 단순히 군대가 싫어서 대학원에 오면 결국 군대로 돌아가게 된다고 들었다. “대학원은 개미지옥이야. 군대를 미룬 연수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빠져나가기 힘들어지는 개미지옥.” 차라리 자신도 빨리 군대에 다녀올 걸 하는 대학원 선배도 있었다. 물리 실험 리포트도 쓰기 싫어 드랍한 명석은 자신이 나이를 먹는다고 그 긴 논문들을 써낼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게다가 이 지긋지긋한 학교에 몇 년 더 머물러 있어야 한다니. 도서관 뒤로 솟아 나온 건물엔 알알이 불빛이 박혀있었다. 저 10층 남짓한 신소재 연구동도 높은 건물이 없는 캠퍼스에선 빌딩처럼 보였다. 저 밝게 빛나는 연구실 중 한 알에는 민재도 들어 있을 테다. 1학년 때만 해도 명석과 피시방에서 살았는데 연구실 인턴을 시작한 후로는 얼굴도 보기 힘들었다. 엊그제 지영과 서먹해져 혼자 학식을 먹으러 간 명석은 그와 우연히 마주쳤었다. 민재는 밥을 다 먹고 랩실 사람들과 돌아가는 길 같았다.
“근데, 내가 지금 좀 바빠서 미안해 명석아….” 무척 반가웠지만 몇 마디 채 나누기도 전에 민재는 먼저 가고 있는 랩실 사람들을 급히 따라갔다. 명석은 돌아가는 민재의 뒷모습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피시방 가자는 말은 꺼내지도 못하고. 반바지 아래로 드러난 앙상한 두 종아리. 웬만한 여자보다 허리가 얇아 개미허리라 불리던 민재는 못 본 사이 더 말랐다. 개미허리에 이어 개미 다리가 된 것이다. 창백한 피부 한 꺼풀 아래로 푸른 혈관이 몇 줄 쉭쉭 지나간다. 그 파란 정맥이 개미와 민재의 유일한 차이였다. 꼭 피가 쪽 빨린 개미 같았다. 더 시간이 지나면 말라비틀어진 개미가 되는 것은 아닐까 걱정되었다.
명석은 대학원생이 된 민재와 군인이 된 정현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넣어보며 이리저리 가늠해 보았다. 단순하게는 헝클어진 더벅머리냐 빡빡이냐, 더 깊게는 개미지옥에서 헤엄칠 것인가 아니면 연병장에서 구보를 뛸 것인가의 문제였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명쾌해지기는커녕 끈적이는 것들이 목 밑에서부터 차올랐다.

이럴 바엔 담배를 피우자.

확실히 담배는 피우기 위한 것이었다. 불을 붙이고 지켜보기만 할 때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밝게 타올랐다. 거뭇해진 흡연자의 폐사진이 잠시 스쳐 지나갔다. 연기가 착 달라붙는 듯한 폐의 이미지와 달리 머리는 맑아졌다. 껌껌했던 앞날들은 반투명해졌고 입김 한 번에 송송 구멍이 나 사라져 버렸다. 군대에 있는 정현이도, 랩실에 다니는 민재도 명석과는 동떨어진 이야기가 되었다. 손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열기는 몸 안으로 타고 들었고, 기분도 덩달아 들떴다. 그래 어떻게든 되겠지. 지영이는 이제 아예 끝났고. 19학번에 또 누가 있었지. 한 개비, 한 개비 피워나갈 때마다 이런저런 수업들에서 스쳐 지나갔던 동기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중에서 새로운 인연을 찾을 수 있으리란 희망도 차올랐다.
명석은 남은 담배들을 마저 태웠다. 주황색에 가까운 불꽃을, 눈이 아니라 입으로 그 열과 성을 느끼며. 마지막 개비는 특히 오래 물고 있었다. 꺼져가는 불빛 한 점마저도 다 삼키려는 듯 들이쉬곤, 몸 안의 후끈 차오른 열기를 길게 내쉬었다.

 

Life is egg (제4회 광주과기원 문학상 – 산문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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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is egg

박현서(생명,24)

 

삶은 달걀이다.

 

툭 소리를 내며 냉장고에서 무언가 떨어졌다. 어젯밤 삶은 달걀을 담아둔 봉지였다. 달걀은 현대인에게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다. 달걀흰자의 단백질 소화 흡수율(PDCAAS)은 최고점이다. 게다가 들고 다닐 수 있고, 냄새도 안 나고, 무엇보다 10분이면 삶은 달걀이 완성된다. 두어 개 챙겨 다니면 끼니 걱정도 없다.

허리를 숙여 달걀 봉지를 집어 들었다. 오늘 저녁으로 먹으려던 삶은 달걀들이 깨졌다. 봉지에서 조각난 껍질이 떨어졌다. 쪼그려 앉아 껍질 조각을 주워 모았다. 냉장고 밑으로 들어간 껍질을 주우려 애썼지만 뻗은 손은 닿지 않았다. 거뭇한 먼지만 묻어나왔다. 부엌 한쪽에 대강 기대어둔 빗자루를 집어다가 냉장고 밑을 쓸었다. 달걀 하나가 데굴데굴 굴러 나왔다.

 

*

 

어느 날 발등에서 혹이 자라났다.

 

되짚어보면 혹의 존재를 알아챈 건 그해 시월 즈음이었다. 시월은 가을 아니었던가. 시월이면 선선해질 법도 한데, 가을이 오는 건가, 하면 자꾸만 기온이 치솟았다. 그 주의 유독 더웠던 날 해가 붉은빛을 흩뿌릴 때쯤 어정쩡한 저녁을 먹으러 기숙사를 나섰다. 슬리퍼나 질질 끌며 걷는데 이상하게 그날따라 한쪽 발에 이질감이 느껴졌다. 원래 자기 슬리퍼라는 건 남들과 똑같은 삼선을 신어도 귀신같이 알아챌 수 있는 건데 그날따라 무언가 어색했다. 조금 끼는 것 같기도 하고, 발이 부었나 싶었다.

방으로 돌아와 컵라면에 물을 붓고 기다리다가 문득 발을 내려다보았다. 약간 붉은 것 같기도, 푸른 빛이 도는 것 같기도 했다. 내가 어디에 발등을 부딪쳤던가. 가만 바라보다 언뜻 검은 게 휙 지나갔던 것 같기도 하다.

 

혹은 점점 자라났다. 아니, 이걸 혹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것은 아주 서서히 자랐다. 크는 줄도 모르게, 조금씩 조금씩. 약간 부은 듯한 발등 위에 흐릿하고 검은 반점이 나타났다. 잠시 멈추어 바라보면 알아챌 수 있는 그런 흐릿한 반점이었다. 병원에 가야 하나, 잠시 고민했지만 병원에 가서 할 말도 병원에서 해줄 말도 없는 것 같아 그만두었다. 근처에 갈 만한 병원이라면 정형외과인데 발등이 부어서 왔다니 엑스레이 좀 찍고, 소염제 처방해주고, 몇천 원 주고 그게 끝이겠지. 더 심해지면 가지, 뭐. 그냥 그렇게 생각하고는 부은 듯한 발등과 흐릿한 반점 같은 건 어디 기억 저편에 구겨놓았다.

시월이 절반은 지나갔는데도 날이 더웠다. 여전히 반팔에 후드를 대충 걸치고, 슬리퍼를 질질 끌고 다녔다.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조별 과제를 하고, 도서관에서 중간고사 대체 레포트를 쓰고, 강의실에서 전공필수 시험을 봤다.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엎었고, 워드 파일을 pdf로 바꾸는 걸 잊었고, 삼십 분만에 흰 종이를 냈다. 여전히 반팔에, 후드에, 슬리퍼. 레포트가 하나 더 늘었고, 열람실은 발길을 끊었다. 7시 48분에 다시 울리는 알람, 두 시쯤 뜨는 인스타그램 알림, 저녁 먹기 직전이나, 직후, 혹은 종종 그 중간에 걸려 오는 전화벨 소리. 언제부터인가 그 모든 게 거슬렸다. 문제는 그 소리가 전부 내 소리는 아니었다는 거다. 하여튼 거슬리는 건 참을 수 없었고, 그걸 해결하는 방법은 간단했다.

 

*

 

서란 씨는 취미 없어요?

취미요? 음, 글쎄요…….

내가 이번에 독서 모임 시작했는데, 원래 인간관계론, 양자컴퓨터 이런 거나 읽다가 이야, 오랜만에 소설 하나 읽으니까 재밌더라고. 란이 씨는 책, 이런 거 좋아하는 거 없어요? 아니면 뭐, 어릴 때 음악 좀 했다든가.

책은 좀 읽는데, 음, 최근에는 이기적 유전자 읽기 시작했어요. 어릴 때 한 음악 같은 건 기억이 잘 안 나서…….

아, 책은 좋아해요? 소설은 관심 없고?

네에, 소설은 안 읽어요.

왜?

 

그러게요.

 

*

 

혹은 어느 날 한순간에 부풀어 오르더니 발에서 떨어져 나갔다. 그날은 룸메이트가 없는 방에 홀로 남아 종일 빈둥댄 날이었다. 침대에 엎드려 소설이나 읽으며 다리를 달랑거리고 있었다. 어깨가 아파 몸을 돌려 누운 채로 팔을 쭉 뻗어 소설책을 들었다. 그런데 그 사이로, 다리를 바닥으로, 팔을 기둥으로, 책을 지붕으로 한 그 틈으로 발이 보였다. 혹이 작은 달걀만 하게 부풀어있었다. 한창 흥미진진하던 소설을 내려놓을 정도로 충격적인 모습이었다. 상체를 일으켜 무릎을 끌어안고는 발을 가만 바라보았다. 혹은 그새 조금 더 부푼 것도 같았다. 건강한 달걀만 하게 부풀어 오른 그 혹은—여전히 이걸 혹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불투명했고 제법 단단해 보였다. 조심스레 손을 뻗었지만 손가락을 대면 펑, 하고 터질까 봐 아니면 어쩌면 영영 터지지 않을까 봐 무서웠다. 손은 차츰 가까워졌다. 그리고 손가락이 닿았을 때

데굴,

하고 굴러가 버렸다. 그대로 발등에서 떨어져나와 데굴데굴 굴러가 버렸다. 손끝에 닿은 촉감은 생각보다 단단했다. 고민 끝에 손에 쥐어보니 단단하고 미지근했다.

 

 

기숙사 짐을 빼는 건 생각보다 더 번거로운 일이었다. 그해 겨울 룸메이트는 나에게 이별을―다시는 너 같은 애랑 방 못 쓰겠다―고했다. 이삿짐 박스를 사서 짐을 욱여넣는 행위를 몇 번이고 반복해야만 했다. 그렇게 화장실을 비우고, 옷장을 비우고, 서랍을 비우자 책꽂이만 남았다. 책꽂이 한 칸을 가득 채운 소설을 몇 권 빼내는데 파열음이 들렸다. 잊고 있던 혹-달걀이 한순간에 데굴데굴 굴러떨어져 마침내 바닥과 조우한 것이다. 그리고 탄생.

 

깨진 달걀 껍데기를 가르고 태어난 것.

 

호문쿨루스는 플라스크 속 작은 인간. 그렇다면 달걀 속 작은 인간은 무어라 불러야 할까? 나와 같은 얼굴의 작은 인간은.

 

*

 

  1. 달걀을 세우는 방법은?
  2. 달걀 밑을 깬다.

 

오답

 

달걀을 깨지 않고도 세울 수 있습니다.

그냥 세우세요.

 

*

 

달걀에서 태어난 그 작은 인간―혹은 인간의 형태를 띤 무언가는 빠르게 자라났다. 가리는 것 없이 잘 먹고 잘 자랐다. 왠지 밥을 챙겨줘야 하나 싶어서 작은 종지에 밥을 조금 퍼주었더니 밥풀 몇 알을 양손으로 들고 먹었다. 물도 몇 방울 떨어뜨려 주니 갈증이 가신 듯했다. 그렇게 매일매일 끼니를 함께 했다. 내가 세 끼를 먹으면 그도 세 끼를 먹었고, 내가 두 끼만 먹으면 그도 두 끼를 먹었다.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 얼마 후에는 분홍색 플라스틱 스푼을 겨우 쓸 만한 크기가 되었다.

 

간장 좀 더 줄래?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된 건 한두 달쯤 지나서였다. 그의 일과는 묵묵히 밥을 먹고 자는 것 정도가 전부였기에 언제 말을 익힌 건지 신기했다. 말을 할 수 있다고 한들 그리 달라지는 건 없었다. 서먹한 가족이 오랜만에 저녁을 함께하듯 데면데면하게 굴었다. 저기 휴지 좀. 어 그래. 프라이 더 먹을래. 조금만 더. 잘 먹었습니다.

 

……유튜브 같이 볼래?

 

다만 그가 말을 시작하자 어쩐지 의식되기 시작했다. 식사를 끝내고 상을 치우면 그는 대개 가만히 앉아 어딘가를 응시했고, 나는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거나 소설책 몇 장을 뒤적였다. 전까지는 별생각 없었다지만 대화까지 나눌 수 있는데 하릴없이 가만있는 걸 두고 보자니 어딘가 불편했다. 베개에 적당히 휴대폰을 기대어두고 나란히 앉아 동영상을 시청했다. 그렇게 작은 혹-인간, 아니면 달걀-인간과 하루하루를 살아가게 되었다.

 

*

 

콜럼버스의 위대한 업적 중 하나: 콜럼버스는 달걀을 세웠다. 끝을 조금 깨뜨려 세우고는 의기양양하게 당신의 대단함을 말했다. 아무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하지 못한 것. 당신이 그걸 해냈다고. 사실 이 이야기는 거짓말이다. 진짜로 달걀을 깨서 세운 건 부르넬레스키다. 부르넬레스키의 위대한 업적 하나: 부르넬레스키는 달걀을 세웠다. 아주 거대한 달걀을 하나 피렌체에.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달걀은 깨져도 그 형태를 유지할 수 있다. 겉껍질이 깨져도 내막이 구조를 지지한다. 그래서 콜럼버스든 브루넬레스키든 달걀을 세우려고 달걀을 깨버린 거다. 달걀을 세우기 위해서는 딱 하고, 아니면 퍽 하고 달걀을 깨야 한다는 거다.

 

누군가 말했다: 알은 세계다.

 

중요한 건 그거다. 사실 이 이야기는 거짓말이다.

 

*

 

어느덧 삼월이었다. 그러니까 개강을 한다는 것이고, 학교에 가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기숙사에서 살 때보다 30분은 더 일찍 일어나 버스를 타고 등교해야 했다. 아침이면 눈을 뜨기 싫었고, 밤이면 눈을 감기 싫었다. 눈을 뜨든 눈을 감든 새로운 하루가 점점 다가왔으니까. 강의는 지루하기만 했다. 뭐라는 거야. 점심 뭐 먹지. 오늘은 비엔나소시지를 좀 사 가야지. 딴생각만 하다가 강의가 끝나는 날이 허다했다. 꾸벅꾸벅 졸기도 했고, 세워놓은 태블릿으로는 유튜브를 봤다. 이와 상관없이 제출해야 하는 과제는 꼬박꼬박 나왔고, 중간고사 날도 착실히 다가왔다.

 

돌연변이가 뭐야? 전사랑 활성은?

 

이제 보통 숟가락을 제법 능숙하게 쓸 수 있게 된 그가 물었다. 그는 닥치는 대로 정보를 탐닉했다. 머릿속 공백을 채우고 싶은 것 같았다. 책장을 빤히 쳐다보는 일이 잦았다. 종종 모르는 단어를 물어왔고, 영상 속 사람들은 왜 웃는지 물었다.

 

누구나 한 번쯤은 그런 생각을 하지 않나. 이거 누가 나 대신 안 해주나. 나는 매일 그 생각을 했다. 좁은 자습실 책상에서 그 생각을 하던 내게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다. 그거 대학 가면 괜찮아져. 대학 가면 실컷 놀아. 그거 대학 가면, 그 대학, 대학……. 그래서 대학을 갔다. 그리 높지도, 낮지도 않은 어중간한 성적. 네 성적이면 이 대학의 이 과가 안정인데 취업률이 이러하고, 저 대학의 저 과는 상향인데 저러하고……. 그래서 그 대학의 그 과에 입학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탁 트인 캠퍼스와 두 명짜리 기숙사 방에서 그런 생각을 했다. 이거 누가 나 대신 안 해주나. 과제도, 수업도 누가 나 대신 해줬으면. 적당히 성적 맞춰 온 적당한 대학의 적당한 과에 다니며 그 생각을 하던 내게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다. 그거 아직 낯설어서 그래. 그거 처음이라 그래. 그래서 일 년을 꼬박 다녔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거 누가 나 대신 안 해주나.

기숙사 짐을 빼던 날, 부모님이 차를 끌고 학교까지 왔었다. 나는 짐을 한 아름 들고 기숙사 방과 차를 몇 번 오갔다.

글쎄, 얘가 잘 적응을 못 하는 거 같네. 응, 응. 전에 그 대학의 그 과 다니지. 더 높은 데도 쓸 수는 있었는데 아무래도 거기는 좀 그렇잖아. 얘가 수학을 못 해서. 응, 응. 그래 책은 좋아하지. 근데 책 좋다고 문과를 보낼 순 없잖니, 요즘 같은 때에는. 어, 그래, 들어가고, 나중에 또 전화할게. 응, 응.

 

아마 그는 나와 같은 사람일 거다. 나와 똑같이 생겼고 명백히 나로부터 나온 존재이니까. 아마 유전자가 똑같지 않을까. 그렇다면 부모님보다도 가까운 거겠지.

 

그는 빨리 자란다. 아마 며칠 뒤면 한 뼘쯤 더 자라 있을 거다. 주먹만 한 달걀에서 태어난 지 몇 달 되지 않아 일 미터 정도가 되었으니까. 그는 얼마나 더 자랄까. 나랑 똑같을까, 아니면 더 크거나 작을까.

 

삼월이 된 후로는 그의 일과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른다. 내가 밥을 차려놓고 나가면 그걸 먹고, 무언가를 하며 시간을 보내고, 내가 돌아오면 다시 밥을 먹는다. 뭐, 하는 일이 특별히 없는 것 같다. 내가 학교에 가 있는 동안 하는 일이라곤 밥 먹는 것밖에 없는 듯하다.

 

그래서 그는, 달리 할 일 없는 그는 곧 내가 될 거다.

 

*

 

서란!

어느 날 서 씨가 외쳤다. 옆자리에 부른 배를 안고 앉아 있던 이 씨는 찌푸린 얼굴로 서 씨를 돌아봤다. 서 씨는 득의양양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 씨는 그 얼굴을 보곤 더욱 눈살을 찌푸렸다. 서 씨가 그런 표정을 지을 때면 좋을 게 없었다. 마지막으로 그 뺀질한 얼굴을 봤던 기억을 더듬던 이 씨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서 씨는 그런 이 씨의 시선 따윈 전혀 못 느꼈다는 듯 가속페달에 올린 발에 기분 좋게 힘을 주었다. 차장 밖 풍경이 한결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중요한 건 길(道)이 아니야. 물처럼 흘러가듯 사는 게 중요한 거지. 강처럼, 바다처럼. 사람도 흘러야 해. 길에 갇히면 안 되는 거라구.

 

徐道瀾 서도란

徐 瀾 서 란

 

작명소까지 가서 받아 온 이름의 절반을 홀라당 내다 버린 이유가 그것이었다. 도란, 도란, 하다가 란. 이 씨는 분노했다. 애써 손품 팔고 발품 팔아 작명소 찾아다 이름 받아오는 동안 가만있다가 인제 와서 말 같지도 않은 말 한다며 얼굴을 붉혔고, 삿대질하며 언성을 높였다. 이 씨는 체념했다. 침이 튀도록 화를 내도 서 씨는 빙글빙글 웃으며 란, 란, 서란, 하고 말았다. 아무 말 않고 두나, 열을 내나 서 씨는 여전했다. 그러다 일주일쯤 지나면 슬그머니 소파에 앉은 이 씨한테 엉덩이를 붙여왔다.

요즘 작명소 그거 별 의미 없다니까? 다 미신이고 부질없어. 제 배 불리겠다고 아무 이름이나 가져오는 건지 사흘 밤낮 머리 싸매고 지은 이름인지 어떻게 알겠어. 란이, 이거는 이 아빠가 다 생각해서 지은 거야. 저번에 말해줬듯이 길보다는 물이 중요한 거야.

 

물은 흐르고 흘러 강이 되고 호수가 되고 바다가 된다. 강과 호수와 바다는 수증기가 된다. 수증기는 다시 물이 된다. 얼음 알갱이와 만나 구름이 된다. 구름은 비가 된다. 비는 흐르고 흘러 강이 되고 호수가 되고 바다가 된다.

 

*

 

마음을 먹고 가장 먼저 한 일은 책상과 책장을 정리하는 것이었다. 좁은 방에 책장까지 둔 건 확실히 욕심이었다. 책상에도 자그마한 책꽂이 같은 것이 딸려왔지만 고집을 부려 큰 책장까지 하나 더 두었다. 덕분에 안 그래도 비좁은 자취방에 겨우 두 사람이 몸을 누일 만큼의 공간만 남았다. 책장을 두었지만 책상 위에는 온갖 책이 어지럽게 널려있었다. 빌려온 책, 새로 산 책, 갖고 있던 책 혹은 소설책과 시집, 전공서 따위가 제법 높은 더미를 이루고 있었고, 그렇지 않은 것들은 책상 여기저기에 흩어져있었다. 방에 있는 책을 전부 모아 바닥에 탑을 쌓고 나서 분류 작업에 들어갔다. 일단 문학과 문학이 아닌 책을 나누어 쌓았다. 후자는 차례로 책상 위 책꽂이에 꽂혔다. 그러나 아직도 책이 한 무더기 남아있었다. 아까와는 달리 심혈을 기울여 분류를 시작했다. 책을 한참 고르다가 전부 섞어버리고 다시 기준을 정하기도 했다. 겨우 책을 골라 책장에 꽂았다가도 이리저리 다른 칸으로 책을 옮겼다. 그렇게 한참을 책과 씨름해 삼 분의 이쯤 책을 정리하고 나니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그동안 그는 무릎을 안은 채로 침대에 앉아 나를 보았다. 그는 며칠 새 또 키가 자라 이제 눈높이가 거의 같은 정도였다. 나도 그를 마주 보았다.

너는 서란이야.

서란?

아니 서란이.

서란 2호라는 뜻으로 서란이. 여전히 눈에 띄는 이름이긴 마찬가지였지만 어딘가 만족스러웠다. 남들처럼 세 자리 차지할 수 있다는 게 무의식적인 안정감을 주는 듯했다.

 

이름까지 정해주었으니 이제 시작이었다. 란이를 제대로 교육해야만 했다. 나를 단순히 대신하는 게 아니었다. 더 잘 해내길 원했다. 다음 학기가 시작되기 전까진 모든 걸 끝내고 싶었다. 마음 같아선 하루빨리 란이를 대신 내보내고 싶었지만, 사회적으로든 학업적으로든 유치원생이나 마찬가지인 지금 같은 상태로는 무리였다. 먼저 중요한 교육부터 시작했다. 란이는 나와는 다른 길을 가야 했다.

 

읽으면 안 돼. 여기서부터 여기까지는 전부 안 돼.

응.

이것 말고도 소설은 절대 읽으면 안 돼. 단편이든 장편이든 뭐든 소설은 안 돼.

응.

아, 그냥 시 금지, 소설 금지, 희곡 금지. 문학은 전부 안 돼.

응.

 

읽으면 안 돼.

 

응.

 

다음으로는 대강 십 년 치 정도가 밀린 수학 과학 진도였다. 처음에는 초등학교 수준부터 가르쳤다. 간단한 덧셈과 뺄셈, 곱셈과 나눗셈은 금세 깨우쳤다. 란이는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안다는 말이 꼭 맞는 우수한 학생이었다. 다만 문제는 나는 우수하지 못한 선생이자 학생이었다는 것이다. 중학교 과정까지는 인내심을 가지고 가르쳤지만, 고등학교 과정부터는 슬슬 힘에 부쳤다. 결국 교과서나 참고서를 몇 개 구해다 주고 무료 인터넷 강의를 틀어주었다. 나중에는 전공서만 겨우 주었다. 란이는 아주 우수한 학생인지라 군말 없이 내 교육을 따랐고, 공부 중에 생기는 질문 같은 건 알아서 해결했다. 집에 돌아오면 늘 란이가 전공 책을 팔락이고 있었고, 그 옆에는 무언가 빼곡히 적힌 A4용지나 노트 따위가 여럿 놓여 있었다. 매일 같이 하루를 허비하고 돌아온 나는 그런 모습을 마주했다.

 

9월이 되자 개강이 찾아왔다. 처음으로 완전히 나를 대신할 란이를 내보냈다. 란이는 청바지에 검은 티를 입고 가방을 맨 모습으로 집을 나섰다. 두 달 전의 내가 집을 나설 때와 거의 똑같은 모습이었다. 감쪽같았다. 나와 같은 얼굴에 같은 키. 목소리도 같았다. 시험 삼아 노래를 부르면 아마 똑같은 목소리가 겹칠 거다.

란이는 내 역할을 아주 잘 수행했다. 매일 성실히 등교해 수업에 열중했다. 매주 빼곡한 필기가 쓰인 수업자료가 늘어만 갔다. 시험을 앞두고는 시키지도 않았는데 새벽까지 시험공부를 했다. 과제도 빼먹지 않았다. 매주 내야 하는 과제를 꼼꼼히 챙겼고, 레포트도 수준급으로 써냈다. 과제에 대한 코멘트는 칭찬 일색이었다. 풀이가 깔끔하네요. 훌륭합니다. 주제도 명확하고 근거들도 잘 제시했네요. 짜임새 있는 글이에요. 훌륭합니다. 나는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것들이었다. 학기 말 성적표에도 정말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것들이 찍혀있었다. 얼떨떨했지만 웃었다. 고개를 돌리니 란이도 같은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입꼬리가 수평을 이뤘다.

 

*

이건 뭐예요?

지난주 학회에서 받은 건데, 뒤에 씨앗이 들어있어서 심으면 꽃 같은 게 자라는 거래요.

 

안녕하세요. 여기 씨앗 연필 파나요?

씨앗 연필이요? 잠시만요. C1이라 써있는 곳 맨 아래 확인해보세요.

 

해바라기, 코스모스, 나팔꽃, 바질, 상추, 토마토, 당근, 그리고 랜덤.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

 

란이는 내 생활에 완벽히 적응했다. 란이 학교에 가 있는 동안 나는 새로운 생활을 꾸렸다. 책상과 책장, 침대로 꽉 찬 좁은 방에서, 자그마했던 란이가 종일 지냈던 그 좁은 방에서 하루를 보냈다. 핸드폰과 태블릿, 노트북은 전부 란이가 들고 나갔기에 할 수 있는 거라곤 책장에 꽂힌 책을 읽는 것뿐이었다. 사놓고, 혹은 빌려놓고 쌓아 두기만 했던 책을 한 권씩 차례로 읽기 시작했다. 한 달쯤 지나자 방에 있는 책을 전부 다 읽었다. 이 주쯤 더 지나자 모든 책을 한 번 더 읽었다. 서너 번 더 읽을까 하다가 란이에게 대출을 부탁했다. 읽고 싶던 책을 골라 란이에게 알려주면 그날 저녁에 빌려다 주었다. 늘 미루기만 했던 책들을 읽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토지 같은 것들이었다. 나중에는 문학 서가에서 아무거나 최대한 많이 빌려달라고 했다. 란이는 묵묵히 일, 이주마다 열 권 남짓한 책들을 빌려다 주었다. 아침보다는 지친 얼굴로 어깨에는 전공 책이 든 백팩을 메고, 한 손에는 소설을 담은 가방을 들고 작은 방으로 돌아왔다.

어느 날은 양손에 책을 들고 돌아왔다. 가방이 뜯어졌어, 하고 덤덤한 얼굴로 말했다. 란이는 책상에 책을 올려놓고는 말없이 씻고 자리에 누웠다. 그다음 주에는 빈손으로 돌아왔다. 그리곤 대출이 안 된대, 하고 입을 열었다. 지난번 가방이 뜯어졌을 때 오는 길에 책 한두 권을 흘린 것 같았다. 오는 길에 바닥을 유심히 보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고 란이는 말했다. 대출대 사서가 꼬박꼬박 대출 가능한 권수를 꽉 채워 빌리고 반납하던 란이가 모자란 권수를 반납하는 걸 보고는 의아하게 여겨 사정을 물었다. 사서는 연체라면 풀어주겠지마는 분실은 다르다며 눈썹으로 팔자를 그렸다고 했다. 그 후로는 직접 책을 읽으러 다녔다. 운동화에 모자를 눌러쓰고서 학교와 정반대 방향에 있는 공립 도서관을 향했다. 오랜만에 꽤 먼 거리를 걸으니 돌아올 때는 발바닥이 다 아팠다. 그래도 날이 밝으면 다시 운동화를 신고 모자를 썼다. 도서관에 들어서면 망설임 없이 800번 서가로 향해 되는 대로 열 권쯤 책을 골랐다. 그러고는 아무 빈자리에나 앉아 골라온 책으로 탑을 쌓고 읽기 시작했다. 아침을 먹고 집을 나서면 저녁때가 다 되어 돌아왔다.

 

어느 날 문득 맨 위 칸에 손을 뻗다가 이상함을 느꼈다. 손이 닿지 않았다. 손을 펼쳐 가만 들여다보자 소매가 손바닥을 반쯤 덮고 있었다. 빈 책상에 들고 있던 책을 아무렇게나 내려두고는 거울을 찾아 나섰다.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니 죄다 어딘가 품이 큰 듯한 차림이었다. 거울을 조금 더 바라보다가 다시 돌아왔다. 잠시 곰곰이 생각에 잠겼지만 이내 가져온 책을 펼쳐 읽기 시작했다. 늘 그랬듯 탑처럼 쌓은 책더미를 한 권씩 읽어나갔다.

날이 갈수록 키가 작아지는 게 느껴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몸 전체가 작아지고 있었다. 바지가 바닥에 질질 끌려 흙탕물로 축축해진 날, 옷장을 뒤져 아무렇게나 둔 작아서 입지 않던 옷을 찾아냈다. 그리고 다음 날 도서관으로 향했다. 하루는 도서관에서 신발이 벗겨지며 넘어졌다. 주문 실수로 한 치수 작아 발이 아프던 운동화를 찾아 신었다. 뒤꿈치에 손가락이 들어가고도 남았지만. 두 다리 멀쩡히 걸을 수만 있다면 아침에 나가 저녁때 돌아오는 생활을 반복했다. 그러나 몸은 계속해서 작아졌고 가는 데 걸리는 시간만 끊임없이 늘어났다. 결국 어린 학생이 어려운 책을 읽네, 학교는 쉬는 날인가 봐, 하는 말을 들은 날을 끝으로 다시 집안에 박혀 지내는 생활로 돌아갔다.

다시 돌아온 조그마한 방에서의 낮은 마땅히 할 일이 없었다. 방을 찬찬히 둘러보다가 책꽂이에 꽂혀있는 책 몇 권을 뽑아 몇 장 넘겨보았다. 옆으로 툭 튀어나온 인덱스도 손가락으로 훑었다. 인덱스를 붙여가며 책을 읽었던 게 꼭 전생 같기도 하고, 일주일 전 같기도 하고, 어제 일 같기도 했다. 가만 앉아 벽 한구석에나 시선을 두었다. 깊은 생각에 빠지기도 했고 그렇지 않기도 했다. 그렇게 있다 보면 해가 기울었다.

그러던 어느 날 펜을 들었다. 매끈하게 빛나는 검은 곡선의 펜 하나, 그리고 빈 노트를 집어 들었다.

 

*

 

4장 DNA와 생명 중심 원리

 

DNA는 서로 상보적인 가닥으로 이루어진 이중나선 형태이다. 이 두 가닥은 염기쌍 사이의 수소결합을 통해 안정화된다. 또한 한 가닥이 손상되더라도 다른 가닥의 서열을 이용해 보완할 수 있다.

DNA의 한 가닥 주형(template)으로 사용하여 상보적인 RNA를 합성할 수 있다. 이 과정은 ‘전사(transcription)’라고 불리며, 만들어진 RNA를 전령 RNA(messenger RNA), 즉 mRNA라고 한다.

mRNA의 염기서열은 3개씩 묶어 읽을 수 있다. 이를 ‘코돈(codon)’이라고 하며, 각 코돈은 하나의 아미노산을 지정한다. 코돈을 읽어 아미노산으로 단백질을 합성하는 과정을 ‘번역(translation)’이라고 한다. 예시를 한 번 살펴보자.

 

 

주형 가닥: 5′-ACCACCTTCAGAAATTTCAAAAATAAG-3′

mRNA: 5′-CUUAUUUUUGAAAUUUCUGAAGGUGGU-3′

아미노산: Leu-Ile-Phe-Glu-Ile-Ser-Glu-Gly-Gly

 

 

아미노산은 3문자 또는 1문자 약어로 나타낼 수 있다. 위 예시는 3문자 약어를 사용하여 나타낸 것이다. 1문자 약어를 사용하여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

 

텅 빈 종이가 형광등 아래서 하얗게 빛났다. 펜을 들었지만 막상 쓸 말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게 많은 책을 읽었는데도 내가 쓸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전부 남의 글이었다. 마지막으로 글을 쓴 게 언제였더라. 책상에 놓인 책을 아무렇게나 펼쳐 베끼기 시작했다. DNA, 단백질 따위나 세계사 이야기 같은 것들. 되는대로 책을 펼쳐서 나온 부분을 그대로 베끼기도 했고 중간에 하고 싶은 말을 끼워넣기도 했다. 누군가의 소설을 옮겨쓰다가 떠오른 기억 한 장면을 끄적였고, 어디서 읽었는지 모를 시 한 구절을 집어넣었다. 어느 날은 과거를 떠올렸고, 어느 날은 미래를 기록했다. 노트는 이런 두서없는 글로 점차 빼곡히 채워졌다. 길을 잃었다기보다는 길에 오른 적도 없는 그런 조각들로.

침대에서 일어나면 얼굴에 찬물을 대강 묻히곤 책상에 앉았다. 날이 갈수록 겨우 기어오른다는 말이 더 어울리긴 했다. 바지가 흘러내려 티셔츠 한 장만 걸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 티셔츠마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수건을 둘러 묶은 채로 방을 돌아다니는데 그게 꼭 철학책 삽화 속 그리스 철학자 같아 그날은 노트 한 구석에 삽화를 따라 그린 낙서를 조금 끼적였다. 며칠을 철학자처럼 지내다가 란이가 잠시 입었던 인형 옷을 찾아냈다. 금방 키가 커져 일주일도 채 입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걸 걸치고 책상에 앉아 연필을 들었다가 때로는 침대에 앉아 몇 시간이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란이가 돌아오면 간단한 끼니를 함께 했다. 주로 달걀프라이나 비엔나소시지 따위를 노릇하게 구워 흰 밥과 먹었다. 분홍색 스푼이 남아있어 다행이었다.

 

*

 

나를 알에 넣어줬으면 좋겠어. 어떤 사람은 알에서 태어났대. 나는 그러지 못했으니까 알에 넣어달라는 거야. 그리고 흙을 채운 화분에 넣고 흙을 덮어서 다독이는 거지. 언젠가 꼭 그래보고 싶었거든. 그리고, 그리고 또 어느 날엔 싹이 자라나면 좋겠어. 뭐가 좋을까. 이왕이면 열매가 달리는 게 좋을 텐데. 동그란 열매로 말이야.

 

*

 

얼마나 더 작아질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그 정도가 일정한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작아지고 있었다. 누군가 부지런히 깎는 몽당연필이 된 기분이었다. 이러다가 씨앗만 해질까? 이대로라면 복숭아씨나 자두씨랑 비슷해질 것 같은데. 수박씨만 해지면 어쩌지? 딸기씨는? 그리고 또 아주아주 작아지면 반점이나 온점만 해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노트에 점을 몇 개 찍어두었다. 여기를 펼쳐 두고 키를 재봐야겠다, 하고 종이 위에 드러누워 생각했다. 생각은 꼬리를 물었다. 하염없이 꼬릴 물고 물다가 오늘 저녁은 오랜만에 삶은 달걀을 먹고 싶다, 그런 생각을 했다.

기울어가는 해가 한 줄기 햇살을 뿜었고, 다소 따갑고 따듯하게 눈을 찔렀다. 역시 삶은 달걀은 저녁보다는 아침에 어울리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며 뉘었던 몸을 느릿느릿 일으켰다. 펜 대신 연필을 들어 올려 연필깎이에 꽂아 넣고 온몸으로 힘껏 돌렸다. 잠시 헛도는 듯하더니 심이 뾰족하게 갈렸다. 몽당연필이라 부를 만한 길이였다. 곧 씨앗을 뿌릴 때였다.

 

*

 

온점만 해져도 몸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을까.

분자를 부수고 조립하고 복제할까.

그러면 여전히 유기체겠구나.

여전히 삶이겠구나.

그런데 그건,

 

*

 

저녁이나 먹자.

 

*

 

깨진 달걀은 전부 껍데기를 깠다. 매끈해진 달걀은 오늘 먹을 양만 접시에 담고 나머지는 반찬통에 담았다. 껍데기만 남은 봉지로 손을 향했다. 껍데기는 안쪽에 붙은 얇은 막을 조심스레 떼어내어 모았다. 달걀 껍데기에는 식물에 필수적인 칼슘이 풍부하다. 막을 제거한 껍데기는 바짝 말린 후 부수어 비료로 쓸 수 있다. 이미 신문지 위에 이렇게 말리고 있는 껍데기들이 제법 있었다. 방금 나온 껍데기를 그 옆에 펼쳐 두고 잘 마른 껍데기를 한 움큼 집어 화분에 뿌렸다. 화분에서는 방울토마토가 제법 그럴듯하게 자라 열매를 맺고 있었다. 몇 개 달걀에 곁들이면 좋을 것 같아 동그란 토마토를 몇 알 땄다.

간단히 식사를 해결하고 나서 책장 앞에 섰다. 비좁은 자취방부터 지금의 집까지 한쪽 벽은 늘 책장으로 채워져 있었다. 이사를 할 때마다 꼭 같은 자리에 그대로 책들을 꽂았기에 책장 앞에 서면 비로소 내 집이라고 느껴졌다. 허리를 숙여 맨 아래 꽂힌 노트를 한 권 꺼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습관처럼 노트를 채웠고, 또 읽고 있었다. 어제 쓴 글을 살피다가 몇 글자에는 두 줄을 죽죽 그었다. 오늘 무얼 쓸까, 검은 펜을 톡, 톡, 톡 두드렸다. 무의미한 곡선과 직선 몇 줄, 찌그러진 방울토마토 하나도 그려 넣다가 문득, 아직 식탁에 놓인 달걀들을 보았고, 무엇을 쓸지 알았다. 펜을 고쳐잡고 손에 힘을 주어 눌러썼다.

 

삶은 달걀이다,

 

n시 n분, 널 만나러 가는 (제4회 광주과기원 문학상 – 운문 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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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 n , 널 만나러 가는

 

김현아(화학,석사과정)

‘행복은 멀리 있지 않아

행복은 n 시간 거리에 있어’

 

그 순간 난 참을 수 없이 불행해졌고

그래서 조금 눈물이 났고

 

그럼에도 감히 생각해 본다.

 

나의 행복은 n 시간 거리에 있어

작은 조각에 너무도 쉽게 압도당하고

 

나지막이 부르는 내 이름에

울렁거려 뒷걸음질 치면

 

사물은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어서

우리는 쾅 부딪히고 말 텐데.

 

내가 지은 사랑 시에 목을 매고 나면

남은 영혼은 어디로 가나

 

누군가가 행복이 되는 것

누군가가 행복이 되는 것

누군가가 행복이 되는 것

 

누군가의 사랑이 되는 것

누군가의 사랑이 되는 것

누군가의 사랑이 되는 것

 

나는 이 모든 게 두려워져 그저 입을 벌리고.

삼투 (제4회 광주과기원 문학상 – 운문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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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투

황다민(도전,25)

 

세상이 짜다

 

받는 돈은 같으나 물가는 올랐다

이웃 간 주고받던 정겨운 인사도

서로의 것을 기꺼이 나누던 정도

상대방을 생각했던 모든 배려도

값이 올랐다

 

주위의 모든 것이 짭짤하여

나는 그저 쭈그러들 뿐이다

조금 더 쪼그라들 뿐이다

 

이보다 더 짠 것이 있을까 하여

주위를 둘러보면

온몸이 부풀어 오른 이들이 눈에 띈다

 

그 부푼 배 안에는

누군가의 노력이

누군가의 희망이

누군가의 행복이

그득그득 차 있다

 

차마 내 배에는 담을 수 없어

고개를 돌렸다

다만 더 쪼그라들면

존재마저 사라질까 두려워

눈물로라도 간을 맞춰본다

 

하염없이 눈물을 흘려도

이미 생긴 기울기를 없애기엔 모자라서

 

언제까지 쪼그라들 것인가

바다라도 만들어야 할까

떠오르는 의문 위로

한 방울, 한 방울

제 4회 광주과기원 문학상 공모 수상자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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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광주과기원 문학상 공모에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번 공모에는 운문 47개의 작품, 산문 7개의 작품이 출품됐습니다.

 

보내주신 작품을 보면서 문학에 대한 GIST 구성원의 열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광주과기원 문학상 공모에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며, 수상하신 분들께 축하의 말씀을 전합니다.

 

제4회 광주과기원 문학상 공모 수상자

 

(1) 운문

 

– 당선작: 황다민 (도전, 25) 「삼투」

– 가작: 김현아 (화학, 석사과정) 「n시 n분, 널 만나러 가는」

 

(2) 산문

 

– 당선작: 박현서 (생명, 24) 「Life is egg」

– 가작: 신재룡 (전컴, 19) 「필요 이상」

 

작품 설명

 

(1) 운문

 

– 「삼투」 : 소금의 짠맛을 단순한 감각이 아닌 인색함을 드러내는 표현으로 사용하여 점점 사랑이 사라져가는 세상의 모습을 담고자 한 시.

– 「n시 n분, 널 만나러 가는」 : 사랑과 행복이 가까이 있음에서 비롯되는 불안함을 섬세하게 포착한 시.

 

(2) 산문

 

– 「Life is egg」 : 대학생인 ‘나‘의 발에서 생겨난 혹이 알의 형태로 떨어져 나오고, 그 알에서 자신과 같은 작은 인간이 탄생하며 벌어지는 이야기.

– 「필요 이상」 : 각기 다른 젊은이들이 무의미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만의 구원을 찾는 이야기.

 

수상 소감

 

(1) 운문

 

– 황다민

이번 광주과학기술원 문학상 운문 부문에 제 작품 「삼투」가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무척 기쁘고도 놀랐습니다.

시를 쓰는 과정에서 저는 일상의 작은 사물과 현상 속에서 세상을 비추어 보는 눈을 배우곤 합니다. 「삼투」 역시 ‘소금’이라는 주제에서 출발하였습니다. 소금의 짠맛을 단순한 감각이 아닌 인색함을 드러내는 표현으로 사용하여 점점 사랑이 사라져가는 세상의 모습을 담고자 했습니다. 세상의 각박함 속에서 몸부림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드러난다면, 세상의 간을 조금이나마 맞출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어봅니다.

작품을 완성하는 데 문예창작동아리 ‘사각사각’ 시문스터디에서 함께한 시간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매주 새로운 주제에 맞추어 시를 쓰고 서로 나누는 과정을 통해, 꾸준히 글을 쓰는 습관을 들일 수 있었습니다. 늘 곁에서 응원해 주신 부모님께도 깊이 감사드리며, 학생들의 글을 세상과 연결해 주고 귀한 상을 안겨주신 <지스트신문>에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번 수상은 저에게 큰 격려이자 앞으로 더 열심히 정진하라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시를 쓰며 제 언어로 세상을 기록하고, 작은 울림이나마 전할 수 있는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김현아

먼저 6년 간의 지스트 생활에 마침표를 찍는 시기에 문학상을 수상하게 되어 기쁩니다. 졸업 전에 좋은 추억을 하나 선물 받은 기분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시는 가끔 생각이 날 때마다 꺼내 읽게 되는 시입니다. 사랑을 하고 삶을 살아가는 내내 나의 행복은 오직 나만이 결정할 수 있으며, 그 주체가 결코 타인이 되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을 되새기곤 합니다. 이 시를 읽는 여러분들의 행복도 오직 여러분 자신의 것이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 산문

 

– 박현서

소설을 쓴 지는 일 년이 넘었지만 스스로를 소설 쓰는 사람이라고 부르기엔 어딘가 멋쩍었습니다. 이제는 조금 더 당당하게 소설을 쓴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좋은 기회를 마련해주신 <지스트신문>, 부족한 글을 평가해주신 심사위원분들께 감사합니다. 제 학교생활과 문학 생활에 큰 즐거움인 ‘사각사각’ 부원들에게도 감사를 전합니다.

 

– 신재룡

 

대화로 이야기하는 장르, 소설

필요 이상 : 무의미에서의 자맥질

 

구원자들은 언제나 이상하다

 

아름다운 것은 언제나 이상하다. 보들레르의 미학은 이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악의 꽃’, ‘파리의 우울’. 두 권의 책으로 보들레르는 현대 시의 지평을 열었다. 그는 왜 추하고 기묘한 것을 아름다운 것과 연결했을까? 그것도 언제나란 단어를 통해, 모든 시간대에서 아름다움과 이상함을 뗄 수 없는 것으로 만들었다. 답은 단순하다. 보들레르 자신이 이상했기 때문이다. 그는 마약, 여자, 도박 등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영역에서 스캔들을 일으켰다. 확실히 정상은 아니다. 그가 시를 통해 세계관을 구성하고 그 안에서 자신을 긍정하지 않았더라면 그저 정신 나간 사람 중 하나로 그쳤을 것이다.

 

미학은 고차원적이며 원론적인 자기 긍정이다. 단순히 ‘나’가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나’가 옳음에 포함되어 있는 시야를 제시하는 것이기에 고차원적이다. 또한 개인의 미에는 자신이 포함될 수밖에 없기에 원론적인 부분에서 세상을 건드린다. 이는 소통의 시작이다. 타자와 단절된 자폐적 세계를 구성하고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 있던 세상을 구부려 세계의 일부로 자신을 편입시키는 것이다. 친숙함을 바탕으로 개인은 세계를 자기 쪽으로 끌고 오고 세상은 보다 넓어진다. 보들레르는 자신뿐 아니라 비슷한 구석에 위치한 이상했던 모든 이들을 아름다움에 포함시켰다. 대범하게 이루어지는 개인의 구원은 주위 사람들까지 구원한다.

 

이상(異常), 다를 이異에 항상 상常을 쓴다. 편안한 자연상태가 아닌 모든 상태. 보들레르는 아름다움을 작위적이지 않은 이상함으로 한정했다. 작위적이지 않다면 사실 이미 또 다른 편안한 상태이다. 공공연하게 보고 되지 않았거나 무시된 평상일 뿐이다. 이상을 긍정하는 순간, 아름다움은 개인의 것이 된다. 각자가 자신을 긍정하는 주체가 되어 티 나지 않게 세상의 끝자락을 구부리면-낮은 곡률의 벽면은 가까이에서 평면으로 보이듯이 말이다- 평상의 범위는 넓어진다.

 

젊은 놈들은 언제나 이상했고, 이상하고, 이상할 것이다. 충분히 지치지 않았기에 만족과 거리가 멀고, 늘 이 상태에서 저 상태로 이동한다. 삶을 살아갈 이유가 어딘가에 숨어져 있을 것이라 믿으면서. 이유가 없는 것에 이유를 댈 때 세상은 비틀어진다. 그 모순이, 모순에 따른 왜곡이 너무 뻔히 보이지 않을 만큼 다듬어지면 보편성을 띠게 된다. 충분히 넓게 구부러져 있어 다수를 에두를 수 있을 때 자기 긍정은, 자폐적인 성격에서 벗어나 미학, 또 하나의 세계관이 된다.

 

젊고 이상한 사람들을 한 소설 안에 모아두고 이야기를 나누게 하는 이유는 세계를 긍정하기 위해서다. 젊은이들은 고정되어 있지 않기에 늘 변두리로 밀려난다. 세상의 끝자락은 비뚤다. 아마 끝끝내 정합한 형태로 그려지지 않을 테지만 살아남기 위해선 각자 서 있는 꼭짓점에서 맡은 세계의 끝을 구부려야 한다. 자신이 더 살 만한 곳으로, 또 테두리 밖으로 삐져나간 사람들까지도 포괄할 수 있는 곳으로. 그렇게 젊은이는 구원자가 된다. 젊은이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곳은 그게 어느 때이고, 어느 곳이든 보다 세상을 섹시하게-살고 싶게 만드는 세계의 끝이다.

 

필요 이상 평론

 

필요 이상은 각기 다른 젊은이들이 무의미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만의 구원을 찾는 이야기다. 의존은 자립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보이지만, 이들은 존재하기 위해서-자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위해서- 무엇에 의존한다. 개인과 세상은 이 집착과 중독으로 간신히 연결되어 있다. 이런 의존을 긍정하기 위해 22살에 필요 이상을 썼다. 지금은 단지, 이들의 의존이 파괴적이지 않고 소통으로 이어지기를 바랄 뿐이다.

나 또한 개인으로서, 완성된 형태의 이야기를 제시하면서 또 이야기의 일부가 되면서 쥔 붙여 살 한 평의 공간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심사평

 

(1) 운문

 

이 수 정 (인문사회과학부, 국문학)

 

제4회 GIST 문학상 공모전 운문 심사평

 

제4회 GIST 문학상 운문 분야에 응모된 47편의 작품을 읽었습니다. 수준과 기량은 다양하였지만 전체를 아우르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순간적인 감상이나 충동으로 쓰인 시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시 한 편마다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 고유한 논리적 구조를 완성하려는 의지가 충분히 드러나 있었으며, 이는 시를 자신과 세상을 탐구하고 연계하는 장르로 파고든 결과라는 점에서 인상 깊었습니다. 지스트의 젊은 시인들이 지닌 자세가 자랑스럽습니다.

 

황다민 씨의 「삼투」는 가장 돋보이는 작품이었습니다. 사회경제적 불평등 심화를 삼투현상에 비유한 과학시로, 과기원 구성원의 미덕과 개성을 잘 살린 작품입니다.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높은 염도라는 환경에서 용매를 잃어 ‘쭈그러드는 나’와 타인의 용매를 얻어 ‘부풀어 오르는 이들’을 시각화함으로써 오래된 착취 메커니즘에 대한 재치있는 해석을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이 시의 진정한 미덕은 주체의 윤리적 선택이라는 문제를 제기하는 데에 있습니다. ‘나’보다 더 농도가 낮은 타인을 착취하기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선택의 필연적인 결과인 ‘나’의 소멸에 저항하기 위해 눈물을 흘리기로 합니다. 눈물은 연약한 저항이며 실질적인 패배를 의미하기에 비극성을 더하지만, 시인은 눈물로 된 바다를 구상하며 계속 눈물방울을 보태는 것으로 시를 끝맺습니다. 현실의 절망을 직시하고 좌절하거나 거꾸로 섣부른 희망을 이야기하는 대신 고통을 껴안는 개인의 연약성을 언급함으로써 오히려 집단적 연대의 필요성을 환기시키고 있습니다. 불가능을 예감하면서도 이를 언급하는 성실성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념을 지키는 태도가 감동적입니다.

 

다음으로 눈에 띄었던 작품은 김현아 씨의 「n시 n분, 널 만나러 가는」이었습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연애(행복과 사랑)를 강박과 불안의 관점에서 다룬 점이 참신했습니다. 이 역시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오늘날 많은 사람이 겪는 문제이며 가치 있는 주제라고 봅니다. 이 시의 화자는 행복이 가까이 있다는 세간의 믿음 때문에 불행해 하면서 n시간 거리에 있는 행복을 시뮬레이션합니다. 이 가상의 연애에서 ‘우리’의 만남은 서로를 목표로 다가간 결과가 아니라 각자 불안 느끼고 뒷걸음질 치다가 충돌한 사고이며, ‘나’는 스스로 만들어낸 사랑의 환상에 몰입하다가 자신을 잃을까 극도로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비관주의는 범속한 연애에 대한 반성이자 인간관계와 삶에 대한 책임감 있는 자세의 산물이기에 오히려 사랑시로 읽힙니다.

 

황다민 씨의 「삼투」를 당선작, 김현아 씨의 「n시 n분, 널 만나러 가는」을 가작으로 선정합니다. 이번에 작품이 선정되지 못한 시인들께 위로의 말씀 드립니다. 시쓰기는 결국 세상에 건네는 말이기에 누군가 알아보고 알아들어 주기를 바라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시 쓰기는 콘테스트가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시를 쓰면 시인입니다. 하루 중 더 많은 시간을 시인으로서 존재하시기를, 그렇게 얻은 시상을 오래 품고 마침내 익은 열매가 떨어지듯이 시 쓰시기를 바라고 또 응원합니다.

 

 

(2) 산문

 

이 시 연 (인문사회과학부, 영문학)

 

올해 4회째를 맞은 지스트 문학상 단편소설 부문 당선작 「Life is egg」와 가작 「필요 이상」은 지원작이 6편에 그친 아쉬움을 보상하기에 충분히 매력적이다. 이공계 대학생인 주인공의 고민과 불안을 색다르게 파고든 점은 비슷하다. 그러면서도 단편소설의 대표 두 유형인 사건 중심(plot-driven)과 인물 중심(character-driven) 이야기로 각각 장점과 읽는 재미가 다르다.

 

「Life is egg」는 무엇보다 플롯이 독창적이고 흥미롭다. 읽기에 재미있는 소설은 일단 성공이다. 게다가 꼼꼼히 읽어보면 주제와 유기적으로 얽혀드는 플롯이 꽤나 ‘알’차다. 우선 “누군가 말했다: 알은 세계다”라는 구절에서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유독 한국 독자들 사이에 많이 회자되어 성장소설의 상투 인용구가 되어버린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는 구절에 저항하듯, 「Life is egg」는 호문클루스가 되어 알 속으로 되돌아가려는 반성장 또는 퇴행 욕망을 상상하는 심상찮은 플롯이다. 주인공 란(瀾)과 바깥 세상에서 그의 대역을 수행하는 란이(瀾 2호)의 관계는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그리고 방 안에 틀어박혀 점점 호문클루스로 쪼그라드는 란의 모습은 카프카의 「변신」을 연상시키기는 면이 있다. 마지막엔 씨앗만큼 작은 알에 넣어 화분에 심어 달라는, 그래서 나중에 방울토마토 같은 동그란 열매를 맺었으면 좋겠다는 란의 소망은 인간, 동물, 식물의 경계를 흐리는 점에서 잠시 「채식주의자」를 떠올리게도 한다. 거기에 각종 난생설화(卵生說話)와의 겸손한 거리두기까지. (“어떤 사람은 알에서 태어났대. 나는 그러지 못했으니까 알에 넣어달라는 거야.”) 작가가 이 모두를 의식했는지와는 무관하게, 「Life is egg」의 최대 강점이자 매력은 이처럼 다양한 동서고금의 모티프들을 연상시키는 응축된 상상력이 주제와 플롯을 솜씨있게 견인해 내는 점이다. 여기에 란과 호문클루스 란이의 관계를 “상보적 RNA를 합성하는 … 전사” 과정처럼 상상하는 것은 지스트 학생 작가다운 또다른 독창성이다. 그래서 군데군데 서사와 언어의 완성도가 조금씩 아쉬울 때조차도 이 소설은 여전히 흥미롭다. 제목은 굳이 영어가 아니라 「삶은 달걀」이라고 했어도 동음이의(pun)가 성립했을 테다.

 

「필요 이상」은 「Life is egg」와 달리 전형적인 인물 중심 이야기이다. 여자친구에게 이별통보 받은 주인공 명석의 혼란스런 몇시간을 서술하는 이 이야기에 사건이라곤 마지막에 술 취해 자전거 타고 기숙사 방으로 돌아가던 그가 잔디밭에 나동그라지는 것밖에 없다. 그럼에도 이 이야기를 계속 읽게 만드는 것은 아무런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 소설 속 “여백의 시간”을 “필요 이상”으로 풍부하고 생생한 디테일로 채워 넣은 스토리텔링의 힘이다. 이날 밤 명석의 “여백의 시간”은 연애, 학업, 진로, 노후 대책까지 무엇하나 고민하기조차 엄두가 안 나는 20대의, 역설적으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길고긴 “맹물”같은 시간의 축소판이다. 연애도 결국은 “다이소에서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는 거랑 똑같”아서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매장에서 그나마 가장 나은 거로 대충 때우는 거”라는 명석의 말은 연애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닐 듯하다. 자칫 식상할 수 있는 주제와 상황에도 진솔하고 탄탄한 스토리텔링은 여전히 새 힘을 불어넣고 독자의 공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심사를 마치며 이번 지원자들뿐 아니라 소설 쓰기에 관심이 많은 학생들에게 한가지 당부하자면, 아무리 짧은 단편이라 해도 소설은 결국 누군가의 삶과 그 삶이 속한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어서 작가는 그에 합당한 수고를 치러야 하리라는 것이다. 인물이든 사건이든 처음이야 기발한 아이디어 하나로 시작할 수 있지만 치열한 연구와 고민이 뒤따르지 않으면 그것을 개연성 있는 하나의 삶과 세계로 독자 앞에 내놓기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학생들의 관심이 높은 SF나 판타지 소설은 그런 점에서 더욱 어렵다. 주제 ‘의식’이나 실험 정신만 너무 앞서서는 대체로 뻔한 서사와 결말로 이어지기 일쑤고, 그런 소설은 설령 완성된다 해도 재미도 힘도 없다. 모든 게 다 그렇지만 소설에서는 특히 더 “악마는 디테일에,” 그것도 아주 풍부한 디테일에 있고, 그 풍부한 디테일은 치열한 상상력을 요한다.

 

 

유의사항

1) 수상작은 타 공모에 응모할 수 없습니다. 응모가 확인되면 수상을 취소합니다.

2) 수상자는 상금 수령을 위해 editor@gist.ac.kr로 지스트신문 홈페이지 공지사항 글에 첨부된 서류와 통장 사본을 10월 20일(월)까지 송부해주시길 바랍니다.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 동의서 (학번_이름)

Korea-U.S. Tariff Negotiations Concluded: Agreement on Tariff Reduction and Expanded Invest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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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July 31 (KST), Korea and the United States concluded tariff negotiations. Korea agreed to expand investment in the U.S. in exchange for lowered mutual tariffs from the original 25% to 15%. It was also decided that the contentious rice and beef markets would not be further opened.

Tariffs lowered from 25% → 15%, investment and cooperation funds set

On July 30 (local time), the Korean government delegation visited the White House to attend a meeting with President Donald Trump which ended with an agreement on tariff negotiations. The delegation consisted of Koo Yun-cheol (Deputy Prime Minister and Minister of Economy and Finance), Kim Jung-kwan (Minister of Trade, Industry and Energy), and Yeo Han-koo (Head of Trade Negotiations). Under the negotiations, the U.S. agreed to lower the mutual tariffs on Korean products from 25% to 15%. The 25% tariff rate, originally announced on aApril 2 (local time), was applied to all products produced in Korea and imported into the U.S. As Korea faced higher tariffs than Japan (24%) and the European Union (20%), concerns on competitiveness in the U.S. market were raised. However, with this deal, Korea will now be subject to the same tariff rate as Japan and the EU. Additionally, tariffs on automobiles, one of Korea’s key exports, were also lowered from 25% to 15%. Although tariffs on semiconductors and pharmaceuticals have not yet been finalized, they are expected to be no less favorable than those for other countries. U.S. Secretary of Commerce Howard Lutnick has stated, Future tariffs anticipated for semiconductors and pharmaceuticals will be set in a way that ensures Korea is not treated unfavorably compared to other countries.

A total of 350 billion USD for investment and cooperation funds will also be established. Additionally, a USD 200 billion fund will be created for U.S. investments in fields where Korea has competitive strengths, such as semiconductors, nuclear power, rechargeable batteries, and biotechnology. Additionally, the “MASGA” project (“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will launch a USD 150 billion Korea-U.S. shipbuilding cooperation fund. This project includes building new shipyards in the U.S., workforce training, supply chain reconstruction, and “Maintenance, Repair, and Overhaul (MRO)” services. Deputy Prime Minister Koo has emphasized that the MASGA project was the “greatest contribution” to this agreement, explaining that “it will effectively proceed as a Korean-led project, tailored to the needs of our companies.” He added, “President Donald Trump has also highly praised Korea’s shipbuilding capabilities and requested that shipbuilding in the U.S. move forward as quickly as possible.”

Furthermore, both sides have agreed not to open more agricultural markets. Although the U.S. had requested that Korea open its rice and beef markets, due to food security and sensitivities, Korea has declined additional openings.

Public largely approves, but concerns remain in certain industries

The public’s response to the outcome of the tariff negotiations is mixed. More than six in ten citizens have rated the negotiations positively. According to Realmeter’s survey conducted on August 1, out of 1,016 adults nationwide, 63.9% of the participants said the negotiations were “well handled,” while 32.3% disagreed. Key achievements cited were the tariff reduction and the decision not to open the rice and beef markets. However, concerns remain in the automobile and steel sectors. Before the Trump administration’s tariff increase, Korean cars had been exempt from tariffs under the Korea-U.S. Free Trade Agreement (FTA), whereas Japan and the EU faced a 2.5% tariff. Following the tariff negotiations, Korea, Japan, and the EU are all subject to a 15% tariff, which eliminates Korea’s 2.5% competitive advantage. Initially, Korea’s negotiators argued for a 12.5% rate based on the FTA but were rejected. Additionally, steel tariffs remain at 50%, raising fears of significant impact on the steel industry.

Overall, the negotiations were accomplished abruptly after President Trump announced plans for a 25% mutual tariff. On August 25 (local time), President Lee Jae-myung visited the White House for a Korea-U.S. summit, where economic trade issues were discussed broadly. However, no joint statement was released afterward, suggesting that the detailed agreements were not finalized. The key points of this contention are expected to be announced following future negotiations.

Translated by Yoonseo Huh

Persistent Course Registration Errors Spark Student Complai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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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August 12, the Fall semester course registration for GIST took place. During this period, however, many students experienced difficulties when accessing the server. Consequently, this left many students with struggles such as being unable to register for their desired courses.

Difficulties During Course Registration

At exactly 2:00 p.m. on August 12, students attempted to log onto the registration site to enroll in their desired classes. However, some students were unable to reach the registration webpage and were left waiting on the loading screen for extended periods. Given that class sizes are limited, the affected students expressed frustration at being unable to secure their planned courses.

Following the incident, the GIST Student Council conducted a survey to measure the range of impact, where a total of 225 GIST undergraduates participated. It was reported that most students used PC bangs (internet cafes) for faster connection (68%), while others registered from home (16.9%) or on campus (7.6%). Nearly all students opted for desktops with wired internet connections to ensure stability (80.4%). However, some preferred to use laptops (17.3%) or smartphones (1.33%). Among the 255 students who reported difficulties, 197 (87.6%) faced server access issues where the page was inaccessible for over a minute. Other problems included error pop-ups (labeled as “Failed”) that prevented course enrollment when clicking the registration button (63.1%) and malfunctioning “registration” buttons (47.1%).

The disruptions were most common within the first five minutes after registration started (54.7%) but persisted for up to 30 minutes or more in some cases (23.6%). This indicated that heavy simultaneous access had overloaded the server, where such issues persisted for extended durations. Consequently, students were unable to register for irreplaceable courses (such as those required for graduation or those related to your major), where it was reported that each respondent had missed about 0~4 courses of such nature. Due to these difficulties, some were even forced to enroll in courses outside their major or in upper-level classes, while others even considered taking a leave of absence or extending their studies. Eventually, students demanded for the school to issue an apology and take steps to prevent recurrence (52.9%). Other demands included “roll-backing” the registration process and rerunning it for fairness (24%), and even partial tuition refunds (12.4%). 

Confusion persisted until the school issued an official announcement 1 hour and 40 minutes after registration began. With 255 reports of such issues (and possibly even more), it was impossible to dismiss the course registration errors as small-scale incidents.

The School’s Response

Later on, the Student Council held a meeting with the heads of the Information Operations, Academic Affairs, and Information Security teams. They emphasized students’ concerns based on the survey results and requested measures such as introducing a “basket” system, live server status updates, strengthening the server, and preparing contingency manuals.

The school explained that the issue originated with the Information Security Team. It was explained that the registration server is protected by a web firewall designed to block external attacks and ensure stability. However, the same firewall had been in place for 10 years due to budget constraints, where although it had functioned without issue for the past three years, it failed during this semester’s registration. Especially, the sudden surge of student logins was misinterpreted as an attack, where the firewall started to block access. Fortunately, this firewall is now scheduled to be replaced. The Information Security Team leader stated, “the university budget office has contacted us immediately after the incident. We sincerely apologize, and with the budget now approved, we are proceeding with equipment replacement. The new firewall should be installed within two months.” It was further commented, “the errors over the past three semesters were each caused by different issues. Due to the complexity of large servers, fixing one problem can unexpectedly trigger another. We are currently monitoring the server in four separate parts to prevent recurrence.” With self-reflection and sincerity, the leader also explained that server upgrades will now proceed in the form of replacing outdated equipment, where the most urgent priority is upgrading the outdated internet line. It was noted that the current transmission bandwidth of 10G is scheduled to increase to 40G during next year’s infrastructure improvement project.

Regarding the proposed basket system, the Academic Affairs Team leader stated, “we are aware of the basket system used at other universities and view it positively. In fact, we have already discussed it with the Information Security Team and are considering implementation. However, budget issues still remain, where it is hard to make any confirmations.” They added that since the basket system would rely on the same procedures as the current server, it could place additional strain on the system, making careful consideration necessary. Nevertheless, the school has acknowledged the recurring errors of the past three semesters and expressed regret, while also pledging to rebuild a stable registration system. In addition to the basket system, the Information Team is also positively reviewing revisions to the server’s UI (user interface) and increasing course enrollment caps to reduce inconvenience.

Finally, on September 1, the director of the Academic Information Office issued an official apology, acknowledging the incident and affirming the school’s commitment to improvements. The school stated that it accepts responsibility and will work to restore trust by resolving these issues. Students now hope that they will be able to register for their desired courses without further errors.

Translated by Yoonseo Huh

지스트신문 21기 기자단 모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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