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일 배송’, ‘배송비 3000원’ 뒤에 가려진 그들.
가을 학기가 끝나고 방학에 접어든지 벌써 오래다. 많은 대학생들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을 시즌이다. 편의점 알바부터 카페, pc방, 음식점 등 여러 알바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고된 일로 꼽히는 것은 단연 ‘택배 상하차’ 알바이다. 실제로 지난 1월 7일 알바몬에서 101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전체 응답자 중 22.6%가 겨울철 극한알바로 ‘택배 상하차’를 꼽았다. 온라인상에도 “일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 씻으려고 했는데, 옷을 벗다가 잠이 들었다”, “온 몸이 찢어지는 줄 알았다”, “지옥을 체험해보고 싶다면 한번쯤은 나쁘지 않다” 등 상하차 알바의 고됨을 토로하는 글들이 가득하다.
지난 1월 13일, 본 기자가 ‘극한알바’라고 불리는 택배 상하차 알바에 도전해보았다. 일자리를 구하는 것이 우선. 절차는 생각보다도 간단했다. 구인구직 사이트인 알바천국에 들어가면, ‘최고 대우–일당당일지급’, ‘초보자 환영’, ‘하루만 근무 가능’ 등의 화려한 어구들로 인력을 구하는 물류센터가 가득하다. 그 중 한 곳을 골라 이름과 나이를 문자로 보내니, 곧바로 담당 팀장에게 전화가 온다. 오늘은 자리도 있고, 마침 화물도 적으니 걱정 말고 오후 5시 반까지 물류센터 앞으로 오란다.
물류센터가 위치한 곳으로 가니 아까 통화했던 팀장님께서 반겨주신다. 이름, 신분증을 확인하고 일당이 지급될 계좌번호를 적은 후, 일이 시작할 때까지 잠깐 대기실에서 기다린다. 방에는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로 가득하다. 고등학생쯤으로 보이는 앳된 소년도, 가장으로 보이는 30, 40대 아저씨도, 나이 지긋한 50대도 있다. 각자 저마다의 사연을 품고 여기까지 왔을 터이다.
6시 20분이 되어 모두들 몸을 이끌고 2층 작업장으로 이동한다. 컨베이어 벨트와 이곳저곳에 2층 높이로 쌓여있는 화물들, 짐을 기다리는 트럭들. 담당 팀장이 이름을 불러 3인 1조로 팀을 구성해준다. 파트너는 건장한 청년 둘. 나이를 물어보니 한 명은 18살이라고 한다. 일에는 잔뼈가 굵은 듯, 두꺼운 팔과 허벅지가 그를 말해준다.
묵직한 소음과 함께 컨베이어 벨트가 돌아가기 시작한다. 기자에게 주어진 업무는 상차작업이었다. 기숙사 방의 4배는 되어 보이는 트럭의 컨테이너 속을, 컨베이어 벨트에서 쉼 없이 쏟아지는 상자들로 쌓는 일이다. 트럭에 최대한 많은 화물을 싣기 위해서는 테트리스를 하듯 비슷한 크기의 상자끼리 쌓아야 한다. 크고 무게가 나가는 것들을 사람키만큼 쌓으면, 이후에는 가볍고 조그마한 상자들을 위로 던져 올린다.
<사진 : 교통신문)
그렇게 트럭 한 대를 꽉꽉 채워 보낸 뒤에, 기자는 하차 작업장으로 보내졌다. 이번에는 트럭 속 상자들을 컨베이어 벨트로 내리는 일이다. 해남에서 온 트럭은 고구마로 가득했다. 최소 10kg에서 20~30kg까지. 처음에는 하나하나 정성껏 옮기던 것을, 몸에 힘이 빠지니 자연스레 던지게 된다. 시계를 보니 한참 지난 것 같은데도 겨우 1시간 30분이 지났을 뿐이다. 이를 악물고 일을 계속한다. 일은 무식하리만큼 단순하고, 또 고되다. 조금이라도 쉬면 상자가 잔뜩 쌓인다. 화물을 가득 실은 트럭이 나가고 새로운 트럭이 들어오는 사이가 유일한 쉬는 시간이다. 다들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담배를 꺼내 문다. 잠깐의 담배연기가 고통을 덜어준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 오후 11시, 식사시간이다. 모두들 기쁜 마음으로 식당으로 향한다. 메뉴는 낙지젓갈, 어묵볶음 그리고 해물순두부찌개이다. 많이 담았다고 생각했는데도 양이 모자랐다. 물도, 밥도, 국도 너무나 달다.
식사시간도 잠시. 12시가 되니 작업장으로 또 이끌려간다. 제주도에서 온 이번 트럭 안에는 고구마 대신 귤 상자가 가득하다. 다시 시작되는 하차작업. 순간순간 손에서 힘이 빠지고 입에서는 험한 말들이 튀어나온다. 잠깐 손에 힘이 풀려 실수를 했더니 동년배로 보이는 선배에게 된통 욕을 먹었다. 이곳에서는 나이가 없다. 고등학생들도 경력이 많다면 선배고 상사이다. 파트너에겐 미안한 마음이 가득이다.
새벽 3시가 접어들자 중간 점검을 한다. 인원이 이탈하지는 않았는지, 물류가 얼마나 남았는지 확인한다. 원래는 7시에 끝날 것을, 오늘은 다행히 6시 20분이면 끝난다고 한다. 기자는 다시 물건 분류하는 곳으로 배치되었다. 다른 사람들이 트럭에서 내린 상자들은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분류하는 곳으로 이동하는데, 기자는 그 컨베이어 벨트가 정체되지 않도록 한 줄로 정리하는 작업을 맡았다. 힘은 조금 덜 쓸지 모르나, 물량은 쉴 새 없이 들어오고 실수하면 트레일러 전체가 멈추고 사이렌이 울리게 된다. 영화 모던타임즈가 떠오른다. 공장 노동자 찰리는 컨베이어 벨트에서 부품의 나사 조이는 일을 반복해, 일을 하지 않을 때도 나사 조이는 감각이 몸에 남아 모든 사물을 조이고자 하는 강박을 갖게 된다. 어느 순간 기자도 영화 속 채플린처럼 사람이 아닌 공장의 부속품이 되어있었다.
어느덧 동 틀 시간이 다가오고, 끊임없이 들어오던 화물차도 이젠 더 이상 오질 않는다. 10시간이 넘게 귀를 울렸던 컨베이어 벨트 소리도 멈추고, 사람들은 피로한 몸을 이끌고 각자 흩어진다.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니 오늘도 사람들은 제 갈 길을 찾아 부산하게 움직인다. 그렇게 11시간 일해서 손에 쥔 돈은 65,000원. 고생한 것에 비하면 큰 금액은 아니다. 택배 상하차. 어떤 이에게는 소중한 직업이 되고, 또 어떤 이들에게는 3D직종이 된다. ‘당일 배송’과 ‘배송비 3000원’ 뒤에는 이들이 있다.
백승혁 기자. bsh3681024@gi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