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Social Network Service)는 익명을 보장하는 인터넷과 달리 개인의 이름을 사용하는 개방적인 공간이다. 이 공간에서는 개인정보의 노출에도 단순히 얼굴을 마주 보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과격하고 무례하게 행동하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악성 댓글에 대한 그들의 경각심은 많이 무뎌져 보인다. 유명인사의 사소한 행동이나 국내외의 크고 작은 사건에도 악의적인 댓글들이 항상 함께한다. 댓글 하나에서 시작된 다툼이 현실 속 범죄로 이어져 사회 문제로 거론되기도 한다. 영화 ‘소셜포비아’는 그 어두운 면을 잘 보여준다.
영화는 한 탈영병의 자살 사건에 ‘레나’라는 여성이 악성 댓글을 남기며 시작된다. 이에 분노한 사람들과 레나는 서로를 비난하며 키보드 전쟁까지 벌인다. 사건이 과열되면서 레나를 위협했던 사람들은 레나 집 앞까지 찾아가고, BJ ‘양계’는 인터넷 방송으로 이를 생중계한다. 하지만 집 안엔 레나의 시체만 남아있었고, 방송에는 남겼던 댓글을 급히 지우는 사람들의 모습만 생중계된다. 암묵적 살인자로 지목된 그들은 그녀의 죽음이 타살이라 주장하며 진실을 좇는다.
“에고(ego)는 강한데, 그 에고(ego)를 지탱할 알맹이가 없는 거. 요즘 애들 다 그래요. 다 똑같죠. 뭐”
현대인 중 상당수는 타인의 부정적인 시선을 두려워하는 질병인 ‘사회공포증(Socialphobia)’을 앓고 있다. 남의 글은 신랄하게 비난하면서도 자신은 글을 공개하지 않는 레나에게, 영화는 그녀의 대학 동기의 대사를 빌려 일침을 날린다. ‘에고(ego)’란 자아를 뜻하는 용어로, 감독은 강한 자아를 품기엔 너무나도 나약한 현실의 레나를 ‘알맹이가 없다’고 표현한다. SNS 사회는 남의 비난을 회피하려는 현대인들에게 ‘댓글’이라는 새로운 발언권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하지만 SNS의 벽 뒤에만 숨으려는 그들의 행동은 이 질병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임시방편일 뿐이다.
사회공포증(Socialphobia)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은 타인을 범인으로 몰아가려는 심리를 가진다. 그 대상이 저질렀다고 생각되는 잘못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용민’은 과거 게임 블로그에서 학력을 위조했다는 이유로 레나에 의해 매장당한 피해자였다. 이 때문에 자살사건 당일 사람들과 레나 집 앞으로 찾아간 사실만으로 보복 살인자로 낙인찍혀 마녀사냥의 대상이 된다. 사람들은 자살이라는 진실보다 지금 당장의 안줏거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추측으로 시작된 정보에 과장과 거짓을 더해 더 먹음직한 안줏거리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홍석재 감독은 “세상은 공격할 대상이 필요하고 적을 만들어낸다. 문제가 있어서 공격받는 게 아니라 공격받기 때문에 문제가 있을 거라 믿어버리는 이상한 풍경. 지금, 이 순간 동시대에 벌어지고 있는 일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영화는 “아직도 레나의 타살을 믿는 사람이 있다”는 말과 함께 또 다른 마녀사냥을 암시하며 마무리된다.
우리는 과거에 없던 유형의 사람들과 살아가고 있으며, 그들 중 일부는 바람직하지 못한 방향으로 온라인 사회를 이끈다. 높은 조회 수를 위해 자극적인 소재로 관심을 끄는 BJ 양계, 거짓 정보로 자신을 위장하는 용민, SNS 속 허구의 자신 뒤에 숨어 타인을 비난하는 레나. 모두 낯설지 않은 현대인들의 모습이다. 공격받길 두려워하면서도 자신의 이름으로 타인에게 악성 댓글을 남기는 이런 아이러니한 현상은 의도치 않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도 있는 세상을 보여준다. 거짓과 과장의 안개로 가득 찬 SNS 속, 그들을 현실로 안내할 등대가 필요하다.
남유성 기자 dbtjd6511@gi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