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소년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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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병 연 (신소재공학부,16)

축구를 좋아하는 한 평범한 소년이 있었다. 그는 대학을 들어가서도 축구동아리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밥을 사주겠다던 선배의 손에 이끌려 당도한 곳은 춤 동아리라는 전혀 생소한 동아리였다. 그리고 2년이 넘는 시간이 흐른 지금, 그는 춤 동아리 회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축구의 ㅊ자는 알아도 춤의 ㅊ자는 모르던 한 소년이 동아리를 대표하는 자리까지 오른 것이다. 나름 청소년 성장 드라마의 일부 같은 이 이야기는 바로 필자의 이야기이다.

고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춤에 대한 기본 상식도, 관심도 없는 이방인이었다. 대학에 들어오고 나서 신입생 시절에 선배가 다가와 밥을 사주며 전혀 생소한 춤의 세계로 안내하려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선배가 잘해주어 고마운 마음 절반, 거절하면 미안해질 것 같다는 마음 절반의 심정으로 춤 동아리에 지원하게 되었다. 친했던 친구와 같이 지원했었는데, 그 친구와 매일 방에서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고등학교 때 경험이 있던 친구와 달리 몸은 마음먹은 대로 따라 주질 않았다. 포기할까 생각하면서도 이 정도도 못하면 안 된다는 오기가 생겼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을까. 노래에 맞춰 춤을 출 수 있는 정도까지 오게 되고 실수 없이 연습한 모든 것을 쏟아부었을 때, 속에서 무언가가 꿈틀하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마치 축구공을 처음 차기 시작했을 때의 그것과도 같았다. 그렇게 춤의 세계에 입문하게 되었다.

이렇게 춤에 문외한이었지만, 놀랍게도 동아리에 들어온 지 2년 뒤에 동아리 회장에 선출되었다. 사실 처음에는 동아리 회장직을 꺼렸었다. 춤 경험이 많고 훨씬 더 춤을 잘 추는 사람들이 허다한데 감히 회장을 해도 되는지, 회장이라 함은 그 동아리를 대표하는 사람인데 과연 그 자격이 있는지 매우 걱정이 되었다. 회장직이 바쁠 것이라 회피하고 싶은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하지만, 회장으로 선출되려는 추세였고, 그렇게 된 이상 그 책임을 다 해보자고 다짐하며 받아들였다.

회장의 길은 생각만큼 순탄치 않았다. 전체적인 일을 관리해야 하며 모든 동아리원의 말을 최대한 반영하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대학교에 처음 들어와 저학년일 때를 생각하며 그들의 입장에서 최대한 생각을 해 보려 했다. 그러나 학번의 벽은 생각보다 높았고, 결국, 계속된 의견대립에 지쳐 그에 편승해버렸다. 회장직을 이제 내려놓아야 할 지금, 이 순간에도 조금 더 그들의 입장에서 합리적인 방향을 추구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를 하고 있다.

하지만 누군가 동아리 회장직을 수행한 것을 후회하느냐고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고 답할 것이다. 그 누구보다 동아리에 자부심을 가지고 동아리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 이름에 누가 되지 않도록 노력했다고 말할 수 있다. 22년 인생 중에 이보다 더한 열정을 가지고 노력한 일이 있을까. 필자에게 있어 춤 동아리는 자신의 또 다른 취미를 찾아주고, 정신적으로 성숙해지는 계기가 되는, 인생에 있어 중요한 것이라 느끼고, 감사하고 있다.

김 병 연 (신소재공학부,16)
김 병 연
(신소재공학부,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