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된 원내 외국인 대학원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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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 = 이윤지 기자

Bilingual Campus 갈 길 멀어

삽화 = 이윤지 기자
삽화 = 이윤지 기자

지난 22호에 실린 ‘2018년 GIST 대학원생 근무 환경 실태조사’를 통해 외국인 대학원생의 어려움이 다수 파악됐다. ‘Bilingual Campus’를 지향하는 원내 방침과 달리 한국어로만 제공하는 강의와 행정서비스 등 예상치 못한 언어 장벽에 좌절한 사례가 상당하다. 현재 GIST 대학원에는 23개국에서 온 105명의 외국인 학생이 재학 중이다. 원내 대학원생의 10%가 외국인인 만큼 이들의 언어 문제에 대한 관심과 대책 마련이 필요해 보인다.

전공 수업 한국어로
학습권 침해 논란

GIST를 포함한 국내 5개 이공계 특성화 대학(DGIST, GIST, KAIST, POSTECH, UNIST)의 경우 외국인 입학 전형에 한국어 능력 조항이 없다. 학교에서 영어 강의 및 2개 국어(한국어, 영어) 행정 서비스 제공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라키불 호샌(전전컴,박사과정) 원내 외국인유학생협회(GIST International Students’ Association, 이하 GISA) 대표는 “GIST가 Bilingual Campus라고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며 GIST 외국인 학생들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GIST 예규 중 ‘영어사용에 관한 지침’ 제2조 1항에 따르면 ‘원내 모든 강의는 영어로 한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호샌 대표는 “일부 전공 수업은 한국어로만 진행한다. 몇몇 수업에서는 교수가 외국인 학생들에게 수강 취소를 권고했다. 준비한 자료가 한국어로 돼 있어 영어 수업이 불가능하다는 이유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인 학생들은 필수 학점을 채우기 위해 부당한 대우를 감수하며 강의를 수강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이에 민경숙 학생팀장은 효율적인 강의 전달을 위해 교수가 외국인 학생에게 양해를 구하고 강의의 일부 또는 전부를 한국어로 하는 경우가 있다며 한국어로 강의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한국인 학생들의 이해도를 고려한다면 수업 전체를 영어로 진행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랩 미팅, 세미나도 한국어로
학문적 토론 한계 있어

외국인 학생은 전공 수업뿐만 아니라 랩 미팅과 세미나에서도 소외되는 경우가 잦다. 호샌 GISA 대표는 “3~4시간의 랩 미팅에서 외국인 학생이 발표하는 20~30분 동안에만 영어를 사용하기도 한다”며 그 이유를 설명했다. 또한 외국인 학생도 반드시 참석해야 하는 학과 세미나의 대부분이 한국어로 진행되고 있다며 학문적 토론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는 “한국인 학생들이 한국어로 발표하는 이유는 이해하지만, 외국인 학생들을 위해 짧게라도 영어를 사용해 주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발표의 전달력을 위해 발표자의 모국어를 쓸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있다. 개인 연구 또는 연구실 과제에 대한 내용을 정확하게 전달하고 피드백을 받으려면 한국인 학생의 경우 한국어를 써야 한다는 것이다. 최준호(기계,박사과정) 대학원 대표자회 부대표는 “랩 미팅을 모두 영어로 진행하는 연구실도 있다. 그러나 랩 미팅에서 발표의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한국인 학생은 한국어로 외국인 학생은 영어로 발표하고 피드백은 발표자의 언어로 진행되는 연구실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GIST는 앞서 말한 ‘영어사용에 관한 지침’이 있다. 규정에 비추어 볼 때 한국어로 진행되는 전공 강의나 랩 미팅, 학과 세미나 등은 학습자의 학습권 침해일 수 있으므로 학교의 적극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해 보인다.

학내공지, 홍보물도 한글로
중요 정보 놓치기 일쑤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이메일로 학사 업무뿐만 아니라 각종 생활 관련 안내를 보낸다. 이는 외국인 학생도 예외가 아니다. 호샌 GISA 대표는 “학교나 학과에서 보내온 이메일이 한글로 돼 있는 경우가 잦아 때때로 중요한 마감 일자를 지키지 못한다. 또한 GIST 포털, 실험동물자원센터와 같은 교내 웹사이트와 홍보물이 전부 한글로 돼 있다. 처음엔 사전이나 번역기를 이용했지만, 이는 한계가 있다. 한국인 동료들에게 계속 묻는 것도 곤란하다. 많은 외국인 학생들이 학교 측에 영문을 함께 적어 줄 것을 여러 번 요청했지만,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최수인 국제협력팀장은 “모든 행정부서에서 국·영문을 함께 적거나 제목이라도 영어로 표기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각 행정부서와 학부 사무실에서 학생들에게 안내 메일을 보낼 때 영문 병기를 하도록 지속해서 안내할 것을 약속했다.

이 문제에 대해 최준호 대학원 대표자회 부대표는 “외국인 학생에게 필요하거나 외국인 학생이 관심 가질만한 내용의 문서가 한글로 된 경우, 이를 실험실 동료인 한국인 학생들이 외국인 학생들에게 적극적으로 전달하는 등 한국인 학생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실험실 동료들의 협조를 당부했다.

식단의 다양성 부족
영문 병기된 식단표 없어

외국인 학생들의 건의에 힘입어 올해 5월부터 매주 2회(월, 목 11:30~12:30) 할랄 푸드트럭이 운영되고 있다. 현재 무슬림과 채식주의자를 포함한 많은 학생이 푸드 트럭을 이용하고 있다.

할랄 푸드트럭 운영에 많은 학생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운영 횟수가 적다는 아쉬움 또한 있다. 호샌 GISA 대표는 “푸드 트럭이 오지 않을 때 조리실에서 요리해 먹으려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 푸드트럭 운영 횟수를 늘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학교 측은 할랄 푸드트럭 운영 횟수 확대가 어렵다는 입장이다. 최영수 총무팀장은 “현재 적자인 교내 학생 식당이 외국인 식단을 별도로 제공하기는 어렵다. 대안으로 할랄 푸드트럭 운영을 허가했지만, 교내 식당의 영업권 침해와 위생 문제 등으로 푸드트럭의 주 운영 횟수를 늘리는 것은 무리다”고 설명했다.

교내 학생 식당의 식단표가 한글로만 돼 있다는 문제도 언급됐다. 이에 최영수 총무팀장은 “제한된 화면에 영문 병기 시 글자 크기가 작아져 시행이 곤란하다. 단, 주요 육류 및 알레르기성 제품은 영문을 함께 적어 게시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것이 지켜지고 있는 곳은 제1학생식당 한 곳뿐이다. 이를 제외한 원내 모든 식당에서는 식단표에 영문을 표기하지 않고 있다.

언어 교환 활동으로
한국 생활 적응 도울 수 있어

외국인 학생의 어려움을 덜어줄 방안으로 호샌 GISA대표는 언어 교환(language exchange) 활동을 꼽았다.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를 비롯한 대다수 종합대 언어교육원에서는 언어 교환 활동을 지원한다. 이는 외국인 학생과 한국인 학생을 1:1로 연결해주는 활동이다. 한국인 학생은 외국인 학생의 한국어 공부를 도와주고 함께 다양한 문화 활동을 하며 외국인 학생의 한국 생활 적응을 돕는다.

언어교육센터 이소림 한국어 강사는 “학교에서 외국인 학생과 한국인 학생을 1:1로 짝지어주고 정기적으로 관리한다면 외국인 학생이 한국 생활에 적응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한국인 학생도 언어 교환을 통해 사고를 확장하는 등 긍정적인 영향을 받을 것이라며 기대를 드러냈다. 최준호 대학원 대표자회 부대표도 “언어 교환 활동이 회화 연습과 인적 네트워킹 구축 차원에서 한국인 학생과 외국인 학생 서로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GIST 예규 중 ‘영어사용에 관한 지침’ 제3조에 따르면 ‘본원의 모든 구성원은 제2조 각 항의 구분에도 불구하고 자기 주도적 학습을 통하여 영어의 사용을 생활화함으로써 구성원 각자의 사고와 생활영역의 개방화, 광역화 및 본원의 국제화에 노력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다. 현재 상황에 대한 재고가 필요하다.

정다인 기자 dainj981@gist.ac.kr

The English version, http://gistnews.co.kr/?p=37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