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곳 잃은 20대 청년들 “제도 개선해야”
* 이 기사는 4월 14일 온라인으로 발행된 20대 청년, 총선을 말하다 ②~③ 기사를 지면 발행에 맞춰 요약한 기사입니다.
앞서 <지스트신문>과 광주지역 4개 학보, 무등일보는 ‘20대 청년 정치 인식’ 설문조사를 통해 청년들이 정치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에 대해 질문했다. 20대 청년은 정치의 중요성에 공감했지만, 정치 활동 참여에는 소극적인 반응이었다.
기성 정치에서 소외된 20대
20대 청년들이 정치 참여에 소극적으로 반응하는 이유는 이들이 국내 정치 내에서 소외되고 이용되는 현실과도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이번 21대 총선 결과, 20대 당선자는 단 두 명뿐이다. 전체 유권자 중 20대(19세 미만 포함)가 795만 285명(18.1%)인 것을 고려하면 800만 명이 달하는 국민을 두 명(0.7%)이 대표하고 있다는 뜻이다.
미래당 등 2040세대를 주축으로 청년 정책을 위해 정당을 구성하거나 총선을 준비하는 등 새로운 시도도 있었다. 그러나 거대 양당이 대립하는 구도 안에서 청년들이 주축이 된 소수 정당은 국회 의석을 확보하지 못했다.
막대한 정치 비용…청년에겐 넘을 수 없는 벽
현재 청년들의 정치 도전이 가로막힌 이유는 감당하기 힘든 정치 비용이라는 진입 장벽 때문이다.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내디딘 청년들이 막대한 정치 비용을 감당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후보자 기탁금, 각종 여론조사, 현수막과 명함, 사무실 임차부터 선거운동을 위한 차량과 앰프 사용료까지, 총선에 드는 비용은 이미 청년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훨씬 상회한다. 20대 총선에서 지역구 선거에 출마했던 오창석(33) 씨는 선거를 위해 사용한 금액이 1억 8천만 원을 훌쩍 뛰어넘었다고 밝혔다. 돈 없이는 선거하기 어려운 현실을 꼬집었다.
후보자 기탁금만 해도 총선 예비후보자는 1,500만 원(지역구 후보자 등록자)이라는 거금을 내야 한다. 최근 공직선거법 제56조(기탁금)의 개정으로 비례대표 총선 기탁금은 500만 원으로 하향 조정되기는 했으나, 청년에게는 여전히 큰돈이다.
‘일회용 정치’에 희생되는 청년들
그동안 각 정당은 선거 때마다 경쟁적으로 20대 청년을 영입하며 청년 친화 정책을 통한 ‘이미지 쇄신’에만 집중했다. 그러나 선거 후 제대로 된 역할을 맡은 청년 정치인은 찾기 힘들다. 선거용으로 영입할 때만 잠깐 주목받을 뿐이다. 기존 정당이 20대 청년을 일회용으로 소비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현 국회의원 선거제도가 청년의 정치 참여를 어렵게 만든다는 의견도 나온다. 지금의 정당 정치에서는 조직력이나 표심을 잡을만한 능력을 갖춘 이들이 유리하지만, 청년은 그러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20대라고 하면, ‘미성숙함’을 떠올리는 인식이 강하게 남아 있어 유권자에게 표를 얻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상황이 이러니 젊은 국회의원의 공천은 대중의 이목을 끌기 위한 행사성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총선 때만 되면 ‘청년 정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담론이 형성되지만, 그때마다 기성 정치권은 청년의 도전, 열정을 선거전략 아래 소비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대로 광주지역 구의회에 입성한 한 의원은 “매번 청년 대표자가 나와야 한다면서 청년들을 데리고 행사에 동원하거나 소모성으로 쓰는 게 다반사였다”며 “반면에 정작 우리의 의견은 제대로 들으려 하지 않아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20대 정치인이 해법 될 수 있나
전문가들은 과감한 선거 구조의 개편을 통해 청년 정치인을 배출하고, 이를 통해 청년 정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21대 총선을 앞두고 청년들은 ‘청년 할당제’와 같은 강도 높은 대책을 주문했다. 그러나 청년 국회의원을 배출하는 것만으로는 청년이 일회용 정치에 이용되는 걸 막기에 부족하다는 주장도 있다.
전 전남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이의정 교수는 20대 청년들이 정치적 상호작용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20대 정치인의 등장을 꼽았다. 이 교수는 “20대 정치인을 배출하게 되면, 미디어에서 20대가 가지고 있는 의제에 대해 자연스러운 보도가 이어지게 되면서 사회적 관심으로 떠오를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편, 조선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공진성 교수는 20대 정치인 배출의 현실성 문제를 꼬집었다. 공 교수는 “특정 지역을 범위로 하는 지역구 선거는 기득 권력의 이권 투쟁이자 패권 싸움으로, 소수의 20대가 세대를 이익집단화해서 끼어들 수 있는 선거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청년들은 선거제도 개편으로 청년 국회의원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2월 6일 민주당 전국청년당과 전국대학생위원회는 기자회견을 열고 청년 공천 비율 대폭 증가와 비례대표·전략 공천 지역에 2030세대 30% 할당을 촉구했으나 이뤄지지 않았다.
한편, 정의당 서울대학교 학생위원회 이재현 위원장은 “몇몇 청년 정치인을 선발하는 것만으로는 청년의 정치 참여를 활성화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청년 정치인 개인이 의회로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기성 세대의 정치 문법 속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소외되거나 기성 권력에 포섭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공 교수도 “같은 세대의 정치인이라고 해서 반드시 그들을 대변하거나 또 20대들이 이들 또래 정치인에 동질감을 가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당들 또한 표를 얻기 위한 단순 ‘장식용 비례’는 자칫 20대들에게 또 다른 측면의 불공정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치 참여의 디딤돌, 청년 육성 시스템 마련돼야”
청년을 위한 정책은 ‘청년의 관점’에서 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지금의 한국 사회는 이러한 정책을 제대로 논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돼 있지 않다고 지적한다. 특히 청년 정치인을 체계적으로 양성하지 못하는 뒤떨어진 정당 시스템도 개선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청년들을 조기부터 예비 정치인으로 육성해 정치 현장에 투입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청년정치크루 이동수 대표는 “청년들이 경험과 능력을 쌓을 수 있는 정치권 내 양질의 일자리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미래당 우인철 대변인은 “사연이 있는 청년을 영입하는 방식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청년들에게 기회와 권한을 주는 당내 구조를 만들어 육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재현 위원장도 “청년의 정치세력화는 기본적으로 개개인 청년 정치인을 선발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청년 정치 활동가층의 역량을 강화하고 이들에게 정치적 권한을 부여하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말했다. 청년 정치 단위가 실질적인 권한과 책임, 예산을 갖고 독자적인 사업을 진행하는 기회를 얻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망하고 등 돌리면 정치는 더 멀어져”
20대는 정치를 향한 관심을 꾸준히 높여왔다. 18대 총선에서 28.1%에 불과했던 20대 유권자 투표율은 20대 총선에서 52.7%까지 상승했다. 그러나 여전히 타 연령층에 비해 적극 투표 의향층이 적다.
공진성 교수는 22일 “정치인이 표를 얻기 위해 청년 친화적인 이미지를 만들고, 청년들에게 요식적으로 구애한다는 것을 20대는 알고 있다”면서 “어쩌면 이용되고 싶지도, 동원되고 싶지 않다는 것을 저조한 투표율로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선 안정된 경제적 기반을 갖추기 이전인 20대의 삶에 맞닿은 정책을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이 꾸준하다. 20대 청년들도 정치로부터 등 돌리기보다는 투표처럼 그들이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전문가는 조언한다.
이의정 교수는 “정치를 통해 결실을 보는 과정은 쉽지 않으며, 오랜 시간 많은 갈등과 타협을 통해 열매를 맺기 때문에 단기간에 실망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면서 “지난 선거 때보다 어떻게 조금이라도 사회를 바꿔볼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