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처형 제도의 부활
1757년 3월 2일, 파리의 그레브 광장에서 사람 한 명이 도륙 당한다. <암스테르담 신문>은 당시의 사건을 이렇게 보도하였다.
“드디어 그는 네 갈래로 찢겨졌다. 이 마지막 작업은 시간이 많이 걸렸다… 그래서 네 마리 대신에 여섯 마리의 말을 동원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러나 그것도 불충분해서 죄수의 넓적다리를 잘라내기 위해 할 수 없이 근육을 자르고 관절을 여러 토막으로 절단해야 했다.”
이 모든 과정은 사형수 다미엥(Damiens)이 살아있는 상태에서 진행되었다. 당시 치안담당 관리였던 부통(Bouton)은, 팔 관절이 뜯겨 나가 널부러진 상태로 “입을 맞추어 주십시오, 신부님”이라고 애원하는 다미엥의 모습을 기록했다. 부통 뿐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축제라도 치르는 듯 그 광경을 함께 보았다. 다행히 이와 같은 가혹한 공개 처형은 19세기 전반에 걸쳐 서서히 사라졌다. 그러나 안심하긴 이르다.
2020년 9월 3일, 한국에서 대학생 한 명이 숨 진 채 발견된다. <한국일보>는 이 사건을 다음과 같이 보도하였다.
“A씨는 숨지기 전인 올해 7월 디지털 교도소에 신상이 공개됐다. 디지털 교도소는 당시 A씨의 얼굴 사진과 학교, 전공, 학번, 전화번호 등의 신상정보를 올렸다… A씨 지인들에 따르면 그는 디지털 교도소에 자신의 신상이 공개된 이후 악플과 협박 전화, 문자 등으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온 것으로 전해졌다.”
디지털교도소는 하루 평균 방문자가 2만 명 가량 되는 사이트이다. 2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마치 축제행사라도 치르는 듯 지켜보았다. 무려 263년의 시간과 8,960km의 거리를 뛰어넘어, 공개처형 제도가 부활하고 만 것이다.
우리는 모두 수감인이다
공개처형 제도가 우리 사회에 다시 돌아왔다는 것은 무엇을 함의하는가? <서울경제>는 일련의 사건을 바라보며 ‘현재 법 집행 과정과 판결이 신뢰할만하지 않다’는 사실이 디지털교도소 논란의 핵심이라고 설명한다. 즉, ‘디지털교도소 사태’가 현대 사법체계의 비윤리적인 부분을 조명한다는 말이다. 얼핏 일리가 있는 말처럼 들린다. 그러나 자세히 들어다보면 온통 허점투성이다. 사회의 모든 체계가 긴밀히 연동한다는 것은 피에르 부르디외의 설명이었다. 따라서 사법체계에 윤리적 결함이 있다면, 그것은 권력 기구와 국민 전반에 윤리적 결함이 있다고 말하는 것과 다름 아니다. 이 와중에 사법체계의 비윤리성만을 똑 떼어내 비판하는 일이 어떻게 가능하다는 말인가?
디지털교도소 사태는 법을 조금 고친다고 해결되는 사소한 윤리적 결함 이상의 무언가를 말하고 있다. 디지털 교도소는 크게 두 가지 중요한 특성을 가진다. 하나는 누구나 볼 수 있다는 가시성이다. 이 가시성은 수감자들을 불특정 다수로부터 영구적으로 공격받도록 만든다. 이는 곧 사회로부터 완전한 격리 생활을 의미한다. 다른 하나는 누구나 밀고할 수 있다는 접근성이다. 디지털 교도소는 친구, 가족, 심지어는 길을 가던 사람조차 간단하게 밀고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이 접근성이 항상 자신이 감시받는다고 느끼고 스스로를 통제하게 만든다. 혹여 밀고를 당했다가는 사회로부터 영영 추방당할 따름이다. 그렇기에 디지털 교도소의 출현은 사법체계의 문제를 넘어, 이 사회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감옥, 판옵티콘으로 변해버렸음을 증명한다.
“사회 전체가 수용소로 변해버렸다.” 아감벤이 한 말이다. 디지털교도소 사건을 보고 난 후, 아감벤에게 격한 동의를 표할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이 감방 생활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어떻게 해야 자유로워질 수 있는지 등 대답을 찾을 수 없는 질문이 너무 많다. 식견이 좁은 게 때론 한스러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