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에는 흐름이 있다. 추리 소설도 마찬가지다. 지금부터 추리 소설의 역사를 따라가며 시대를 풍미했던 작가들과 그들의 대표작을 만나보자. 이번에는 고전 추리 문학 황금기의 두 번째 기둥, 엘러리 퀸이다.
애거서 크리스티가 영국에서 추리 소설의 황금기를 꽃피우고 있을 때, 바다 건너 미국에서도 추리 소설의 꽃은 피어나고 있었다. 엘러리 퀸으로 대표되는 미국 추리 소설의 양식이 정립된 것이다. 엘러리 퀸은 실은 실존 인물이 아니다. 사촌지간인 프레더릭 더네이와 맨프레드 리가 공동 작업한 후 엘러리 퀸이라는 필명을 이용한 것이다. 엘러리 퀸은 독특한 캐릭터와 논리적인 트릭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는 애거서 크리스티와 함께 고전 추리 소설의 양식을 완성하게 된다.
엘러리 퀸 작품의 특징은 ‘작가와 독자 간의 공정한 대결’에 있다. 이는 엘러리 퀸이 미국의 추리 소설 작가인 S.S.반 다인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반 다인은 애거서 크리스티의 추리 소설이나 셜록 홈즈와 같은 탐정물이 공정하지 않다며 비판했다. 독자에게 충분한 증거를 주지 않고 탐정만이 결정적인 증거를 알고 있다는 것이다. 반 다인은 ‘추리소설 작법 20칙’을 제창하며 작가는 독자에게 모든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독자가 모든 증거를 수집하고 결말을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엘러리 퀸 역시 반 다인의 이런 사상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고, 여러 걸작을 통해 논리적인 트릭을 중요시하는 미국 추리 소설의 양식을 확립한다.
이런 엘러리 퀸의 스타일을 가장 잘 표현해주는 것은 독자에게 보내는 도전장이다. 엘러리 퀸의 책을 읽다 보면, ‘지금까지 사건 해결을 위한 모든 정보를 공개했다. 이제 책을 잠시 덮고 독자들이 범인을 알아맞혀 보시기를!’이라는 페이지가 나온다. 이는 엘러리 퀸의 독특한 요소다. 독자는 마치 잘 만들어진 논리 문제를 풀 듯 소설을 읽을 수 있다. 홈즈의 대성공 이후 비슷한 스타일의 탐정 소설이 쏟아져 나오던 때에 이런 엘러리 퀸의 스타일은 독자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이는 다른 소설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쳐, 논리적으로 트릭을 중시하는 추리 소설의 한 파벌로써 자라나게 된다.
하지만 엘러리 퀸에게도 단점은 존재한다. 그의 소설은 현대의 추리 소설 독자가 읽기에 지루할 수 있다. 그의 트릭이나 전개 방식이 진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엘러리 퀸의 의의는 추리 소설의 양식을 만들고 그것을 극한까지 끌어올렸다는 점이다. 그래서 현재의 관점에서도 놀라운 트릭을 제시하는 애거서 크리스티나 탐정의 캐릭터가 아주 뛰어난 셜록 홈즈 시리즈와 다르게 엘러리 퀸은 진부한 느낌을 줄 수 있다. 그의 트릭은 논리적이고 끌어다 쓰기 쉬웠기 때문에 많은 작품에서 사용됐다. 작품의 진행 방식은 이제 추리 소설의 클리셰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정석적이다. 이런 엘러리 퀸의 특성은 현대의 추리 소설을 재미있게 읽은 사람이 보기에는 지루하다고 느껴질 수 있다. 작품이 나올 당시엔 혁신적이었지만 2019년도 독자들이 보기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그럼에도 엘러리 퀸은 읽을 가치가 있는 작가로 평가받는다. 특히 그의 대표작인 <Y의 비극>은 세계 3대 추리소설로 꼽힐 정도로 그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다. 물론 위에서 언급했듯 진부할 수는 있다. 많이 사용된 트릭이라 추리소설 좀 읽었던 독자라면 시시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극의 서사와 문체, 그리고 트릭이 밝혀지는 과정 등은 매우 매력적이다. 전형적인 추리소설 양식이라도 그 완성도가 아주 높기 때문에, 그야말로 고전으로 평가받는 것이다. 살짝 지루하더라도 끝까지 읽어본다면 왜 엘러리 퀸이 고전 추리소설의 황금기라고 불리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엘러리 퀸과 애거서 크리스티를 끝으로 추리소설의 황금기는 끝나게 된다. 이후 추리 소설은 하나의 장르로써 완전히 자리 잡는다. 추리소설의 양식은 정형화되어 이후 큰 변화는 없었으나,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추리 소설은 새로운 꽃을 피우게 된다. 다음 글에서는 추리 문학이 일본에서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알아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