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이전의 심리학자들’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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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최 원 일 교수 (기초교육학부, 심리학)

인류 최초의 실험심리학자, 프삼티크 1세

음악의 아버지가 J.S. 바흐이듯이, ‘심리학의 아버지가 누구일까?’ 라는 질문에 많은 사람들은 ‘프로이트’라는 답을 떠올릴는지 모르겠다. 혹시 인마행1을 수강한 GIST 학부생이라면 ‘빌헬름 분트’나 ‘윌리엄 제임스’라는 이름을 떠올리며 ‘수업 들은 보람이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심리학은 비교적 역사가 짧은 학문이다. 일반적으로 19세기 중반이나 후반에 과학적 심리학이 시작되었다고 많은 학자들이 생각하고 있으며 심지어 심리학(psychology)이라는 단어는 16세기가 돼서야 비로소 문헌에서 관찰되기 시작한다.

하지만 심리학이라는 학문에서 던지는 근본적인 연구 문제들의 역사는 이보다 훨씬 길다. 본인이 심리학의 조상이 될 것이라는 것도 모른 채 열심히 심리학의 역사에 주춧돌을 놓았던 사람들은 누구일까? 앞으로 몇 회에 걸쳐서 심리학이라는 학문이 만들어지는데 큰 역할을 했지만, 별로 알려지지 않은, ‘심리학자로 불리지 않았던 심리학자’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인류 최초의 실험심리학자는 과연 누구일까? 미국의 심리학자이자 작가인 모튼 헌트(Morton Hunt)는 주저 없이 이집트의 파라오 프삼티크(Psamtik) 1세라고 말한다. 도대체 프삼티크 1세는 누구이고 어떤 연구를 했기에 이런 영예를 얻었을까? 헤로도토스의『페르시아 전쟁사』한 꼭지에서 이 연구를 찾아볼 수 있으며, 모튼 헌트의『The Story of Psychology』에도 이 내용이 나와 있다.

그는 이집트의 제26왕조의 첫 번째 파라오이며 BC 7세기에 무려 54년간 이집트를 통치하였다. 이 기간 동안 그는 아시리아를 몰아내고 이집트의 번영을 이끌었다. 그는 국왕으로서의 훌륭한 업적과 더불어 심리학자로서 역시 흥미로운 연구를 수행하였다. 그가 수행한 연구를 짧게 소개하겠다.

이집트인들은 자신의 민족이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민족이라는 믿음이 있었고 이 믿음은 프삼티크 1세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이러한 믿음을 실제로 검증해보고 싶었다. 그가 세운 가설은 이렇다. 만약 아이들이 언어를 배울 기회가 없다면 이들은 인간이 가진 타고난 언어를 말할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다.

가설을 세웠으니 이제 실험을 수행할 차례이다. 하류층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 두 명을 목동에게 보내어 격리된 오두막에서 키우도록 했다. 이 때, 이 아이들에게 어떤 말도 해서는 안 되었다. 먹을 것을 잘 주고 잘 돌보는 것은 가능했지만, 아이들에게 언어 자극을 주는 것은 금지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이 옹알이를 끝내고 처음 말하는 ‘단어’는 무엇일까?

실험은 계획대로 진행되었고, 이 아이들이 두 살쯤 되었을 때 목동이 문을 열고 아이들이 있는 공간에 들어가자, “베코스(Becos)!”라고 외치기 시작했다. 이 목동은 이 단어의 뜻을 몰라 처음에는 그냥 지나쳤지만, 이 말을 계속 반복하는 것을 듣자, 이를 파라오 프삼티크 1세에게 알렸다.

프삼티크 1세는 면밀한 조사 끝에 이 단어의 의미를 알아냈고, 이 단어는 이집트어가 아닌, 옆 나라 프리지아(Phrygia)의 언어이며 빵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실험은 끝이 났고, 안타깝게도 실험을 통해서 프삼티크 1세는, 자신이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프리지아어가 이집트어에 비해 인류의 언어의 기원에 더 가깝다고 결론을 내렸다.

지금의 기준에서 프삼티크 1세의 연구를 본다면 여러 문제들이 존재한다. 기본 가정이나 실험의 절차, 결과의 해석까지 못마땅한 부분들이 여럿 보인다. 하지만 언어라는 인간의 능력이 인간의 내적인 정보처리과정(물론 지금 학자들이 생각하는 정보처리과정은 아니겠지만)을 통해 발현된다는 생각, 그리고 이 생각을 검증하기 위해 실제로 경험적인 연구를 수행했다는 점은 2700여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도 정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당시 이집트의 문명이 상당히 발달했다는 증거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당대를 살던 사람들은 인간의 인지가 어떻게 기능하는지에 대해 이해하려는 시도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시대적 배경을 고려한다면 프삼티크 1세의 실험은 정말 놀랍다. 이러한 이유로 모튼 헌트는 프삼티크 1세를 최초의 실험심리학자라 주장했을 것이고, 본고의 필자 역시 모튼 헌트의 견해에 특별한 이견이 없다. 다음 글에서는 고대 이집트와 다른 시공간에 살며 심리학이라는 건축물을 세우는데 기여한 인물들을 알아볼 것이다.

최 원 일 교수 (기초교육학부, 심리학)
최 원 일 교수
(기초교육학부, 심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