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Blog Page 89

우리는 정말 연구가 하고 싶을까

0

8면 김동욱 사진올해 5월 초, 한미 연합 한반도의 대기질 측정 캠페인 KORUS-AQ를 위해 환경과학원(NIER), 미항공우주국(NASA) 및 여러 대학교 등으로부터 100여명의 대기연구자들이 경기도 오산 공군기지에 모였다. 각자 팀별 제작한 장비를 항공기에 탑재해 한반도 상공을 비행하며 대기 중 다양한 종류의 기체와 에어로졸을 측정했고 6월 중순까지 이어졌다. 나는 환경공학부 ATMOS Lab 소속으로 이 캠페인에 참여하여 같이 일하면서 그들을 관찰할 수 있었다.

 

오산 공군기지 활주로 옆 한 격납고에는 대기과학자들을 위한 실험실이 마련되어 있었다. 보통 새벽 5시부터 회의가 시작되었다. 당일 비행경로와 기상예보, 오염물질 예보 등을 발표 등이 진행됐다. 각자 장비를 점검하고 오전 8시에 비행기가 이륙하면 26대의 장비에서 뿜어내는 열기로 비행기 내부는 굉장히 더웠다. 비행 목적에 따라 고도를 급격하게 바꾸면서 멀미를 하는 사람도 많았고 승무원이 구토를 하기 도 했다. 8시간동안 이어진 비행동안 과학자들은 헤드셋으로 끊임없이 이벤트를 보고했고 미션 디렉터는 인천 관제탑과 통신하며 비행경로를 체크했다.

 

비행이 끝나자마자 격납고에서 비행 브리핑 회의가 이어졌다. 회의 도중에 전투기의 이륙 굉음이 들릴 때 마다 일제히 귀를 막았다. 오후 5시 반 쯤 회의가 끝나면 퇴근하고 숙소로 돌아가 자료를 손보고 업로드하고 나면 아무런 기력도 남아있지 않았다. 비행이 없는 날에도 렌치와 드라이버를 들고 장비를 분해해 광학기기를 보정 하거나 캘리브레이션 가스를 교체하기 위해 알루미늄 실린더를 들고 바쁘게 움직였다. NASA의 한 연구원은 필드 캠페인이 많을 때는 1년 중 절반을 필드에서 보낸다고 한다. 그들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여유가 없을 텐데도 웃음을 잃지 않고 친절 했으며, 절대 힘든 내색을 보이지 않았다. 프로답기 위해서 보여야 하는 성실함은 상상 이상이었다.

 

그들을 그토록 열심히 연구하게 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자신이 속한 위치에서 맡은 역할을 문제없이 수행하는 것이 프로다운 것이라는 정신일 것이다. 필드에서 보여주는 퍼포먼스와 책임감은 동료들로부터 좋은 평판을 이끌어 내고 이후 일자리, 프로젝트 수주, 연구비 지원과도 연결될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왜 그들은 더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연구비를 얻어 연구를 지속하려 할 까? 그들이 연구 활동 자체로부터 얻는 정신적 가치가 없다면 그들의 활동은 생계수단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유명한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은 “우리는 아이들에게 놀라움을 가르치고 지식의 목적은 그 놀라움의 근원을 더 잘 이해하게 하는 데 있다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인간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자연의 놀라움을 느끼는 데 에서 지식탐구의 가치를 찾은 것이다. 아마도 연구자의 길을 택한 대부분의 사람들도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그 길을 선택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사뭇 독특한 환경에서 공부하고 있다. 연구자를 꿈꾸는 혹은 적어도 관심이 있는 학생들이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서 이학, 공학을 공부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모였다. 그리고 주목할 점은 졸업생의 절대 다수가 대학원에 진학한다는 다소 기이한(?) 통계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넌 대학원 안 갈 거야?” 라던가, “군대 가려고?”라는 물음은 다른 대학교에선 낯선 질문이지만 우리에겐 매우 친숙하다. 우리 학교의 특수성을 고려한다 하더라도 적잖은 학생들이 분위기에 이끌려, 혹은 다른 뚜렷한 대안을 찾지 못하여 대학원에 진학하게 된다는 점은 부인하기 힘들어 보인다.

 

여기서 우리는 대학원 진학을 당연시 여기는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 볼 때가 아닌가 싶다. 자신의 인생관에 대해서 충분히 생각해 보지 않았다면 말이다. 우리 대학의 Liberal Arts 교육이 지향하는바 또한 이공계 학생들에게 자신이 원하는 삶의 모습을 꾸려 나가는데 필요한 고민의 기회를 제공하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과학자들이 자연으로부터 새로운 것을 발견하면서 행복을 찾을 수 있겠지만 우리가 과학기술원에 진학했다는 이유로 우리 또한 그래야만 할 필요는 없다. 연구는 힘들고 때로는 지루한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흥미 있는 것을 연구해야 한다. 혹은 연구 자체에 흥미가 없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흥미를 주는 다른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 행복은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방식에서 나오는 것이지, 고등학교시절 특정 과목의 성적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GIST College 물리학 전공 김동욱

 

편집장에서 물러나며

0

백승혁이번 호를 마지막으로 편집장이라는 직함을 내려놓고 정들었던 신문사실을 떠납니다. 신문창간준비위를 꾸렸을 때가 벌써 2년 전입니다. 그새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대학 독립언론인 <지스캐치>가 창간됐었고, 올 4월에는 <지스트신문>으로 거듭나 학교의 공식언론이 되었습니다. LG도서관 1층에는 신문사실이 문을 열어 10명 남짓한 기자들이 다섯 번째 지면을 펴냈습니다.

초대편집장으로서 가장 심혈을 기울였던 것은 공정보도의 원칙을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기본에 충실해 사실관계가 옳은지 이중 확인을 거쳤습니다. 또한, 학교의 공식언론으로서 객관성을 잃지 않으려 했습니다. 신생 언론인만큼 독자들의 신뢰를 얻는 것이 가장 중요했습니다.

‘안전하고 쉬운’ 기사는 지양했습니다. 시간은 부족하고 객관·사실 보도 원칙은 지켜야 하니 자칫하면 민감한 사안들에 대해 얕게 다루기 쉽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사실만을 전달하는 기사보다는, 심층 보도를 통해 학교와 학생사회가 올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하려고 했습니다. 기자의 사유가 담겨 있고 독자들에게도 생각 거리를 던져주는 기사를 써내고 싶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열심히 준비한 아이템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기사화되지 못한 적도 많았고, 바쁜 학업에 치여 신문사실에서 밤을 꼴딱 새우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지스트신문>의 첫 학기를 별 탈 없이 이끌어온 것 같아 마음이 놓입니다.

아쉬운 점도 많이 남습니다. <지스캐치> 시절에 비하면 지금은 제법 구색을 갖췄지만, 다른 대학언론과 비교했을 때 조직의 체계나 지면의 구성, 독자와의 소통 등에 있어서 엉성한 부분들이 있습니다.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 후배들에게 무거운 짐을 넘기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입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기자로서 맡은 일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고민을 계속 이어나간다면 어떤 일이라도 잘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돌이켜보면 정말 많은 분께서 도와주시고, 읽어주셨습니다. 감사드립니다. 부족한 점이 많았는데 말이죠. <지스트신문>이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독자분들의 관심과 도움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사 잘 봤다는 격려도 해주셨고, 때로는 문제점에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관심 가지고 <지스트신문>을 지켜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신문은 읽는 이들이 있어야 그 가치를 발하니까요.

그동안 신문을 제작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신 여러 교수님과 행정 직원분, 조판 담당자분께도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편집장으로서 부족한 점이 많았지만, 믿고 따라와 준 기자들도 정말 고맙습니다.

<지스트신문>이 지스트의 역사와 함께 학교의 눈과 입으로써 제 역할을 다하길 빕니다.

 

초대편집장 백승혁(기계공학전공 14학번)

 

대학원기숙사, 학생 수용인원 늘고 편의시설 줄어든다.

0

휴게실 등 대학원기숙사의 편의시설 일부가 학생들의 거주공간으로 바뀌게 된다.

교학팀은 대학원기숙사 부족 현상에 대한 해결방안으로 기숙사 호실 증설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5월 23일 대학원기숙사 1동~7동의 2층과 3층 공사가 완료됐고, 11월 말까지 대학원기숙사 7동 영어공부방·9동 공사와 가구 배치가 완료된다.

학생들이 거주하는 호실로 바뀌는 곳은 기숙사 공용 공간인 로비, 휴게실, 회의실, 공부방 등 이다. 27개 실이 증설돼 총 88명을 추가로 수용할 수 있다. 휴게실이나 회의실 같은 편의시설은 기존 호실보다 넓기 때문에 3~4인실로 바뀐다. 교학팀은 앞으로는 기숙사 호실이 남아도 연구원들을 수용하지 않고 인턴과 신입생 모집을 대비해 일정부분 여유호실로 비워둘 예정이다. 기숙사 개조 공사비로는 4억여 원, 가구 배치비로는 1억여 원이 쓰였다.

현재 지스트 대학원기숙사는 다른 과학기술원과 달리 석사·박사과정의 연차 초과자와 박사후연구원들을 모두 수용하고 있다. 이는 지난 3월 발생했던 대학원 기숙사 부족 사태의 원인이 됐다. (관련 기사 본지 2호. <기숙사 이사 문제, 관리강화 필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4월 초 교학팀은 ▲대학원 기숙사 호실 증설 공사 ▲7월 말까지 연구원들의 퇴실 ▲12월까지 3~4년차 연차 초과자의 퇴실을 결정했다.

교학팀은 공사에 앞서 대학원생들에게 안내 메일을 보냈다. 교학팀 관계자는 “안내 메일을 두어 차례 보낸 후 항의도 많이 받았지만, 대화를 통해 대학원생들의 양해를 구했다”고 말했다. 대학원 기숙사자치회 측은 “학생 수 증가로 인한 주거 공간 부족에 따른 기숙사 증축에는 공감한다”면서도 “감당할 수 없는 학생 수 증가로 인한 내부복지의 저하는 결국 학생들의 삶의 만족도를 떨어뜨려 학교경쟁력 저하로 이루어질 것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연차 초과자의 퇴실에 대해 대학원 기숙사자치회 측은“연차초과자에 대한 아무런 보상 없이 추가적인 불이익을 감수하라는 것은 연차초과자 학생들의 불만을 일으키는데, 이에 대한 학교의 적절한 조치가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에 교학팀은 일정 기간 내에 퇴실해야 하는 연구원과 석사·박사과정의 연차 초과자들을 위한 ‘부동산 추천’서비스를 도입했다. 학생상담·경력개발센터에 접수하면 시중 수수료의 절반만 내고 부동산 중개업자에게 주택을 소개받을 수 있다. 교학팀 관계자는 이를 통해 “연차초과자 학생들이 여러 번 부동산을 찾아다니는 수고를 덜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홍현준 기자 myblue610@gist.ac.kr

폭력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세상에서 완전한 결백을 말할 수 있는가.

0

  어떻게 내가 알게 됐는지 알아? 꿈에 말이야. 내가 물구나무서 있었는데…… 내 몸에서 잎사귀가 자라고, 내 손에서 뿌리가 돋아서…… 땅속으로 파고들었어. 끝없이, 끝없이…… 사타구니에서 꽃이 피어나려고 해서 다리를 벌렸는데, 활짝 벌렸는데…… 『채식주의자』 중

사진  모두가 예스라고 할 때, 혼자 노라고 하는 사람.’ 15년 전, 한 증권회사의 TV 광고에 등장해 아직도 많은 사람에게 언급되는 말이다. 우리는 아닐 때 아님을 말할 수 있는 당당함을 가지라고 말한다. 그러나 실제 우리 사회는 이러한 행동을 하는 소수를 어떻게 대하고 있을까. 불편함의 시선뿐만 아니라 비난, 심지어는 물리적인 폭력으로까지 이어진다. 그런데도 당신은 많은 이들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에 대한 부조리함을 느꼈을 때, 당당하게 그 상황을 거부할 수 있을까?

한강 작가는 소설 『채식주의자』를 통해 폭력과 아름다움이 뒤섞인 세상 속 인간에 대한 끈질긴 질문을 던진다.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과 폭력’, 그리고 이를 벗어나 결백하고자 하는 ‘아름다움’ 사이에서 인간은 과연 어떤 존재로 살아가야 하는가.

 

세계를 집어삼킨 채식주의자

『채식주의자』는 지난 5월 16일 노벨 문학상과 더불어 세계 3대 문학상이라 불리는 맨부커인터네셔널상의 올해의 수상작으로 호명돼 세계적인 관심을 받았다. 맨부커상 선정위원회는 “아름다움과 공포의 기묘한 조화, 불안하고 난감하면서도 아름다운 작품 『채식주의자』는 현대 한국에 대한 소설이자 수치와 욕망, 그리고 타인을 이해하고자 하는, 갇힌 한 육체가 다른 갇힌 육체를 이해하려는 우리 모두의 불안정한 시도들에 대한 소설이다”며 선정이유를 밝혔다. 『채식주의자』에 대한 해외의 평가는 작품의 충격성과 불안정함에 주목한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감각적이고 도발적이다. 한 문장 한 문장이 놀라운 경험”이라고 평했다.

『채식주의자』는 한강 작가의 세 번째 소설이다. 표제작인 「채식주의자」, 2005년 이상문학상 수상작 「몽고반점」 그리고 「나무 불꽃」 총 3편의 중편들을 엮은 연작 소설이다. “따로 있을 때는 저마다의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합해지면 그중 어느 것도 아닌 다른 이야기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 가 담기는 장편 소설이다”고 작가는 말한다.

  인간에 대한 질문을 문학으로 승화시키는 작가

한강 작가는 1970년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났다. 1993년 《문학과 사회》 계간지에 「서울의 겨울」 등 시 4편이 당선되면서 시인으로 먼저 등단했다. 이듬해 서울신문 신춘문예에서 「붉은 닻」이 당선되며 소설가로도 등단한 그녀는 올해 만 46세, 작가 생활 23년을 맞은 중견작가다.

한국 여성작가들은 인간의 내면에 관심을 섬세한 문장으로 풀어간다. 특히 한강 작가는 인간의 상처와 고통에 대한 관심을 탐구해왔다. 한강 작가는 책을 쓰는 것을 자신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존재의 깊고 어두운 심연은 어떤 모습인가’를 다룬 작가의 초기작 『검은 사슴』부터, ‘우리는 삶을 살아내야 하는가, 그것이 가능한가’를 묻는 『바람이 분다, 가라』, ‘정말 우리가 살아내야 한다면, 인간의 어떤 지점을 바라보면서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 『희랍어 시간』, 가장 최근에 발간된 『흰』까지 인간의 내면과 광기에 대한 질문을 소설들 전체에서 치밀한 문장과 서사를 통해 제기한다.

  폭력을 거부하는 개인에게 폭력을 가하는 세계

  거적때기를 걷고 들어간 순간 봤어. 수백 개의, 커다랗고 시뻘건 고깃덩어리들이 기다란 대막대들에 매달려 있는 걸. 어떤 덩어리에선 아직 마르지 않은 붉은 피가 떨어져 내리고 있었어 입고 있던 흰옷이 온통 피에 젖었어. (중략) 갑자기 숲이 환해지고, 봄날의 나무들이 초록빛으로 우거졌어. 어린아이들이 우글거리고, 맛있는 냄새가 났어. 수많은 가족이 소풍 중이었어. 그 광경은, 말할 수 없이 찬란했어 하지만 난 무서웠어. 아직 내 옷에 피가 묻어 있었어 내 손에 피가 묻어있었어. 내 입에 피가 묻어 있었어. 그 헛간에서, 나는 떨어진 고깃덩어리를 주워 먹었거든. 내 잇몸과 입천장에 물컹한 날고기를 문질러 붉은 피를 발랐거든. 헛간 바닥, 피 웅덩이에 비친 내 눈이 번쩍였어. – 「채식주의자」 중 영혜의 꿈 일부분

어느 새벽, 소설의 주인공인 영혜는 충격적인 꿈을 꾼다. 이후 영혜는 고기를 거부하고 ‘채식주의자’가 된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은 그녀의 그런 모습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영혜는 억지로 고기를 먹이려는 가족들에게 자신의 손목을 그으며 저항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영혜의 이런 모습을 ‘정신병’으로 치부해 정신병원으로 들여보낸다. 반복된 꿈과 주위의 압박에 지쳐가는 영혜는 결국 모든 음식을 거부하며 아무것도 해치지 않는 식물이 되고자 한다. 광합성을 하는 듯 나체 상태로 햇볕을 쬐고, 병원을 탈출해 비 오는 숲에 서서 가만히 죽음을 기다리는 등 자기 파괴의 길을 걷는다.

영혜는 주어진 일상의 조건에서 답답함과 옥죄임을 예민하게 느끼는 존재이다. 현실을 바꾼 것은 꿈이었지만 꿈의 기저엔 폭력에 대한 트라우마가 짙게 깔려있다. 영혜의 기억 속에 있던 어린 시절 자신을 물었던 개의 비윤리적 죽음, 아버지의 폭력, 남편에게서 얻게 된 공포심과 두려움. 넓게는 세상의 폭력이 영혜의 무의식 속 큰 충격으로 새겨지다 이런 불안정함이 어느 날의 꿈에서 육식으로 나타난다. 그녀는 육식으로 상징되는 ‘폭력성’을 토해내는 방법으로 채식을 택한다. 세상의 폭력성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영혜는 홀로 결백을 실현하려 한 것이다.

그러나 극단적인 채식주의는 영혜와 그 주변 사람들에게 충격을 일으킨다. 영혜가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을 바라보는 사람들, 특히 누구보다 그녀를 이해해줘야 하는 그녀의 가족들은 영혜를 묶고 억지로 고기를 입에 쑤셔 넣는다. 이후 가족들에 의해 정신 병원에 수용됐을 땐 의사와 간호사들이 호스로 미음을 넣고 그녀가 뱉어내지 못하게 진정제로 재워버리는 등 영혜의 ‘육식 거부’를 인정하지 않는다. 세상의 폭력성을 토해내기 위해 채식을 선택한 영혜에게, 아무것도 해치고 싶어 하지 않았던 그녀에게 세상은 자신의 신념을 관철하려 폭력을 행사한다.

인간의 욕망과 폭력을 거부하고 근원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려 했던 영혜, 소설 『채식주의자』에서 작가는 영혜를 통해 독자들에게 어떤 질문을 던지고 싶었을까. “저는 인간의 선함을 간절하게 믿고자 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인간의 존엄성을 굳게 믿고, 인간을 사랑하기 때문에 아름다움과 폭력이 공존하는 세계에 고통과 슬픔을 느낍니다”고 작가는 한 국내언론 인터뷰에서 말했다.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은 우리의 인식은 성장했고, 다양성을 받아들이고, 나와 다름을 인정한다고 말한다. 혹은, 그렇다고 믿는다. 그러나 아직도 누군가는 자신의 성 정체성을 드러내지 못하고, 누군가는 왼손이 아닌 오른손을 써야하고, 누군가는 다수에 반대되는 자신의 신념을 밝히지 못한다. ‘모두가 예스라고 할 때, 혼자 노라고 하는 사람’, 우리는 이렇게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려는 사람들에게 ‘폭력’을 쓰지 않는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가.

양지희 기자  zzzwlgml159@gist.ac.kr

대체복무제도 폐지와 ‘신뢰받는 혁신강군’

0

지난 5월 16일, 국방부는 병역자원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대체복무 제도를 단계적으로 축소하고, 결과적으로 폐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전문연구요원제도의 경우 불과 3년 뒤인 2019년부터 완전히 없애겠다고 하였다. 당연히 전방위적인 반발에 부딪혔다. 전국 이공계 및 의과 대학생들은 물론, 미래창조과학부, 행정자치부 같은 정부 기관에다가 중소기업중앙회를 위시한 민간기관까지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그야말로 국방부 홀로 외롭게 외치고 있다.

‘인구구조의 변화로 병역자원이 부족해질 것’이라는 이야기는 갑자기 등장한 게 아니다. 심지어 1982년 9월 27일자 <동아일보> 2면에도 비슷한 취지의 기사가 실려 있을 정도로, 오래되다 못해 박물관에라도 모셔둬야 할 법한 문제인 것이다. 이 문제에 대비할 수 있었던 지난 30년의 긴 세월 동안 국방부는 진정 최선을 다했는가?

물론 국방력 유지를 위해서 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병역자원을 더 확보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 ‘일환’으로 전문연구요원까지 일반 병력으로 활용하겠다면? 얻는 것에 비해 잃는 게 너무도 큰 나머지, 국방부가 ‘지능적 종북’으로까지 불리지 않을까하는 걱정마저 든다.

전문연구요원들과 그 제도는 개인, 대학은 물론 기업과 국가에까지 막대한 편익을 제공해왔다. 중소/중견기업들의 경우 주로 전문연구요원 제도를 통해 연구개발 인력을 충당해 왔는데,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의 2012년 보고서에 따르면, 그들이 제공하는 경제적 가치는 연간 수조 원에 이른다. 한편 국내 이공계 대학원은 전문연구요원 제도를 통해 원래라면 해외로 나가버렸을 인재들을 유치해왔다. 국방부 스스로조차 과학기술인으로 하여금 일반적인 병사로 복무토록 하기보다는 ‘과학기술 전문사관’ 등의 제도를 통해 국방과학기술의 발전에 기여하도록 유도해왔다.

따라서 이 제도가 폐지된다면 단기적으로는 기업과 국내 이공계 대학원에, 장기적으로는 우리나라의 산업 경쟁력과 국방과학기술 수준에 크나큰 악영향을 끼칠 것이며, 이 모든 ‘쇠퇴’를 북한은 가만히 앉아 빙긋이 지켜볼 것이다. 그럼에도 이 제도를 폐지하여 사병을 무려 ‘1%’나 늘리려 한다면, 이는 그야말로 ‘지능적 종북’이나 할 법한 자해인 셈이다.

사실 전문연구요원 제도는 ‘특혜’라는 비판이 있었고, 국방부는 그것을 입장에 반영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 제도를 마냥 특혜라고 보기는 어렵다. 특혜라고 칭하기 위해서는 전문연구요원 본인들만 이익을 보고 전체 사회 모두가 손해를 보거나 해야 하는데, 앞서 언급하였듯 해당 제도는 무엇보다 기업과 국가에 유익한 제도이지 않은가?

물론 전문연구요원 제도가, ‘개인의 학업’에 대한 혜택이라는 주장 또한 큰 오해이다. 국가 전반에 유익하기에 다른 누구도 아닌 ‘정부’가 연구비를 지급하는 것이고, 그 유익함이 매우 크니 장학금까지 지급해서라도 육성하고자 하는 것이다. 즉, 단순한 ‘개인’의 ‘학업’이라기보다는 ‘국민 생활 향상’을 위한 ‘투자’인 것이다.

국방력 저하는 반드시 막아야 한다. 그러나 ‘전문연구요원 제도 폐지’는 소탐대실이다. 심지어 ‘개인 학업에 대한 특혜’인 것도 아니다. 국방부는 병력이 부족하다며 전문연구요원 제도 폐지를 검토하는 대신 실질적인 해법을 찾아야 한다.  국방부 공식 페이스북 계정의 ‘신뢰받는 혁신강군’이라는 슬로건이 더욱 실감있게 되길 바란다.

유재덕 (지스트대학 기초교육학부·14학번)

과학기술이 이렇게 중요한 적이 없었다?

0

 

며칠 전에 접한 갑작스러운 뉴스, 이공계 병역특례를 단계적으로 폐지하려 한다는 국방부의 검토 내용을 앵커가 전한다. 이건 무슨 소리? 사회적 반응을 한번 보려고 국방부에서 언론에 흘렸나 보다 하고 생각했는데, 다음날 학교에 와보니 당장 학생들의 동요가 매우 크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저성장 시대. 2010년대 들어서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이 3%대로 접어들었고, 올해는 2%대의 성장률을 전망하고 있다. 국가가 돈을 못벌고 있다는 이야기다. 성장의 시대인 1960-1980년대에는 10% 안팎의 높은 성장률을 누려 왔었다. 경제학자 타일러 코웬 교수는 『거대한 침체』란 책에서 쉽게 따는 과일(low-hanging fruit, 쉽게 얻을 수 있는 경제 성장 동력)은 지금 모두 없어졌다고 이야기 한다. 과거 경제 성장의 원동력이 되었던 무상의 토지는 지금 없고, 노동력은 더 이상 끌어 올 곳이 마땅치 않다. 의무교육, 맞벌이, 이민자 수용 등 노동력 확대를 통한 성장은 한계에 달한 것이다. 자동차, 전화기, 의약품, 비료, 그리고 인터넷과 같은 과학기술 발전이 토지와 노동력 다음으로 꼽히는 과거의 성장 동력이었고, 이 성장 동력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믿음이 있다. 스마트폰, 전기자동차, 바이오신약 등이 최근 과학기술을 통한 경제 성장 동력이었고, 그럼 다음은 무엇일까 모두들 생각을 한다. 동시에 국가의 미래를 위한 과학기술 정책 비전과 과학기술 인재 양성의 중요성을 자연스럽게 떠올린다.

바로 지난주에 대통령이 직접 주재한 제1회 과학기술전략회의에서 “성장 동력을 잃은 우리 경제의 유일한 대안은 창의적 아이디어와 과학기술에 있다”고 하였다. 언론에서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가 빠르게 도래하고 있다고 이야기 한다. 인공지능로봇, 사물인터넷, 무인자동차, 바이오테크놀로지와 의약품, 에너지, 광기술, 그리고 이들 사이의 융합을 통한 새로운 과학기술 패러다임의 창출을 이야기 하지만, 아무도 4차 산업혁명을 정확하게 정의내리기 어렵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만들어 나갈 주역인 학생들, 특히 미래 이공계 연구실, 기업 연구소, 벤처 회사에서 연구개발에 열정을 쏟을 이들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정의하게 될 주인공들이다. 이들은 대한민국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주도할지 따라갈지를 결정할 소중한 사람들이다.

지금 우리 사회가 절실하게 요구하는 것은 혁신적 과학기술에서 출발한 새로운 성장 동력이다. 남북분단이라는 특수 상황으로 인해 국가 안보가 최우선 가치가 되어 왔지만, 그 가치를 위해서 과학기술특성화대학에 진학하여 미래 과학기술에 인생을 건 인재들에 대한 국가의 투자를 포기하는 것에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2016년 현재 63만인 대한민국 국군, 그리고 그 중 52만명의 대군을 거느린 대한민국 육군에서 한해 겨우 3천명의 병력을 더 확보하고자 하는 움직임이라면 더욱 그렇다. 해군과 공군이 중심이 된 미국이나 일본 군대를 보면서, 인구 절벽을 과거에 예측하면서 우리도 병력 숫자에 의존한 육군 보다는 해군과 공군을 중심으로 한 군 현대화가 필요하다는 요구가 많이 있어 왔다. 국가 안보의 중요성에 동감하지만, 그와 동시에 국가 과학기술의 경쟁력 확보를 위한 투자에 중요한 가치가 있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더 확산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혁신적 과학기술을 이야기 한다. 요즘은 ‘innovative’란 말 보다, ‘disruptive’란 단어가 좀 더 와 닿는다. 쉽게 딸 수 있는 과일들이 없어졌기에 기존의 틀을 깨는 ‘disruptive’한 아이디어가 절실하게 필요한 세상이다. 새로운 시도와 접목, 과감한 아이디어는 한 살이라도 더 젊은 나이에 유연한 사고에서 나올 가능성이 높다. 숙련된 손발의 노동력보다는 젊은이들의 열정과 창의적 아이디어가 과거 어느 때보다 필요한 세상이다.

타일러 코웬 교수는 대중들의 “과학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필요”하고, “과학분야의 일이 사회적으로 존중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과학기술이 이렇게 중요한 적이 없었다”고 하며 책을 끝맺는다. 젊은이들에게 신나게 과학기술의 판에서 새로운 도전을 해 보라고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미국이나 중국. 그 나라들의 젊은이들은 자신의 인생을 과학기술에 걸고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미래 과학기술에 인생을 건 우리 학생들에게 한국 사회는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

과학기술이 이렇게 중요한 적이 없었다_서지원

 

지스트 대학원 화학과 서지원 교수

만평